입력 : 2022.12.08 16:25 | 수정 : 2022.12.09 11:02
[땅집고] 아파트 재건축의 최대 걸림돌이던 안전진단 기준이 내년부터 크게 완화되면 그동안 안전진단에 발목이 잡혔던 노후단지들의 재건축 사업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공급 확대 측면에서 안전진단 규제 완화를 크게 환영하는 분위기다. 다만 이번 조치 또한 고금리와 집값 하락으로 침체된 시장을 활성화하기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국토교통부는 8일 안전진단 통과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구조안정성 비중을 기존 50%에서 30%로 낮추고, 조건부재건축 점수 하향 조정, 2차 안전진단의 권한을 지자체에 일임하는 내용의 ‘재건축 안전진단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표적인 재건축 규제 대못을 빼기로 한 것이다. 안전진단은 재건축 절차 상 첫 관문에 해당한다. 그동안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해 사업을 접어야했던 노후 단지가 부지기수다. 이번 조치로 서울 목동과 경기 성남시 분당 등 1기 신도시 노후 단지의 재건축이 활기를 띨 것으로 보인다.
안전진단 규제 완화안 발표에 앞서 노후 단지 상당수가 예비안전진단 신청에 발 빠르게 나섰다. 이는 정밀안전진단보다 문턱이 낮은 예비안전진단을 먼저 통과하기 위해서다. 특히 수도권에서는 안전진단 통과 순서에 따라 재건축 사업 순서가 결정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면서 노후 단지들이 안전진단 신청을 서둘렀다. 서울 강남구 수서1단지와 영등포구 양평현대2차가 예비안전진단 접수를 완료했고, 동대문구 전농우성과 금천구 독산주공14단지가 지난 10월 관할 구청에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한 상태다.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하고 1차 정밀안전진단을 앞둔 단지로는 도봉구 창동주공2단지, 노원구 상계주공, 송파구 올림픽선수촌, 서대문구 DMC한양아파트 등이 있다. 지난해 예비안전진단을 통과한 도봉구 창동주공2단지는 동의서 징구에 속도를 내 내년 초까진 1차 정밀안전진단에 나설 방침이다. 노원구 상계주공13단지도 정밀안전진단 추진을 위한 소유주 동의서를 걷고 있다.
문제가 되는 건 1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지만 2차 정밀안전진단 절차인 적정성 검토 단계를 넘지 못한 곳이다. 현지조사를 거쳐 1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음에도 해당 결과에 대해 소급적용을 받지 못하면 수개월에 걸쳐 1차 정밀안전진단 절차를 다시 밟아야 한다. 이렇게 되면 수억원의 비용을 다시 들여야 한다. 앞서 강동구 고덕주공9단지와 노원구 태릉 우성, 광진구 광장 극동의 경우 적정성 검토 단계를 넘지 못해 재건축에 착수하지 못했다. 고덕주공9단지의 경우 이미 지난 1일 강동구청에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했고, 노원구 태릉 우성과 광진구 광장극동도 지난달에 예비안전진단을 신청해놓고 적정성 검토를 기다리는 상태다.
지난해 6월 2차 정밀안전진단에서 탈락했던 고덕주공 9단지 재건축 추진준비위원회 관계자는 "2차 정밀안전진단 절차가 사실상 생략된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미 1차 정밀안전진단을 통과했는데도 2차 정밀안전진단에서 탈락했다는 이유로 소유주에게 안전진단 비용을 걷는 등 처음부터 절차를 다시 진행해야 하는 것은 상당히 비효율적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공급 확대라는 측면에서 이번 완화안이 장기적으로는 시장에 필요한 조치라고 평가하면서도 침체된 부동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기에는 제한적이라고 봤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이번 완화안은 장기적으로 분명히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고금리가 유지되는 한 이번 완화안으로 시장 활성화를 곧바로 이끌어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김제경 투미부동산컨설팅 소장은 “최근 PF대출이 경직된 만큼 지금부터 재건축을 준비하는 단지는 앞으로 3~4년간 주택 공급 부족 시기에 빛을 볼 것"이라며 "하지만 재건축 자체가 완료까지 소요되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즉시 거래를 활성화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이번 완화안에 대해 일부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내놨다. 김효선 NH농협은행 부동산수석전문위원은 "조건부 재건축 판정 단지에 대해 시·군·구청장이 건축시기를 조정하는 방안이 발표됐는데 이는 재건축이 진행되면서 이주나 입주 시기에 단기적으로 주택 가격이 급등하거나 급락하는 현상을 방지하고자 만든 것이라고 해석된다"며 "이는 1기 신도시에서 벌어진 특정 현상인데 지자체에 너무 큰 권한을 준 것이 아닌가 싶다. 단지간 형평성 문제가 나올 수 있어 기준을 합리적으로 규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박합수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겸임교수는 "구조 안전성 비율을 30%로 조정했지만 20%로 더 낮춰 종전 수준으로 환원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본다"며 "주거 환경 비중이 30%로 올랐기 때문에 일부 개선 효과는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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