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12.07 07:41
[땅집고] "전세계약 연장 함부로 하면 큰일납니다. 세입자가 나간다고 해서 정신줄을 놓아버릴 지경이에요. 돌려줄 보증금을 당장 어디서 구합니까."
세입자의 갑작스러운 퇴거 통보를 받은 A씨는 '정신줄을 놓아버릴' 지경이라고 했다. 전세계약을 갱신한 세입자가 계약을 해지하겠다고 하는데 당장 보증금을 돌려줘야 하는데 자금 여력이 없어 막막하다는 것이다. A씨는 "2년 동안 돈이 묶일 줄 알았는데 갑자기 퇴거 통보를 받으니 전세보증금 반환대출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며 "세입자가 귀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세입자를 구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다"라고 토로했다.
A씨처럼 세입자의 갑작스러운 퇴거 통보로 난처한 상황에 빠진 집주인들이 늘고 있다. 임차인 보호와 임대차 시장 안정을 위해 만들어진 계약갱신요구권을 세입자가 남용해 난감하다는 것이다. 전셋값 하락이 이어지자 임대차 계약 갱신 이후 인근에 더 저렴하고 좋은 전세 매물이 나오면 퇴거 통보를 하고 나가는 임차인이 늘어나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실제로 신규 단지 입주가 시작된 지역에서 이런 사례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 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 B씨는 "새 아파트 입주가 시작되고 전세가가 낮아지면서 기존 단지 세입자들이 계약을 중도 해지하고 더 저렴한 가격에 새 계약을 맺는 사례가 있다"며 "전세가가 급격하게 내려가는 상황이다 보니 그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대형 부동산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계약갱신청구권으로 피해를 보고 있다는 집주인들의 하소연이 올라오고 있다.
한 네티즌은 “이제 더는 집주인이 갑이고 세입자가 을인 시기는 지나갔다”며 울분을 토했다. 해당 네티즌은 "좋은 게 좋다고 해서 전세계약을 연장해줬다가 임차인이 일방적으로 계약을 깨고 나가버렸는데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며 "보증금도 돌려줘야 하고 새로운 임차인을 찾아야 하는데, 여기에다 새 임차인과의 계약 시 수수료까지 물어야 하는데 그야말로 ‘호구’가 됐다"고 했다.
그러면서 "갱신청구를 거절할 방법이 없긴 하지만 세입자가 강력하게 연장을 원하지 않는 상황에서도 굳이 연장하는 걸 권하지 않는다”며 “최악의 상황으로는 보증금 반환 못 해주고 매매로 싸게 집을 내놓거나 보증금 지연이자까지 내줘야 하는 결과가 올 수도 있다"고 계약갱신청구권에 대한 불만을 제기했다.
임대차법에 따르면 세입자가 계약 갱신 이후 중도에 계약을 해지하게 되면 집주인은 3개월 내에 보증금을 돌려줘야 한다. 2020년 주택임대차보호법 개정으로 세입자는 1회의 계약갱신요구권을 사용할 수 있는데, 현행법에 의하면 갱신된 임대차의 해지에 있어서 임차인은 언제든지 임대인에게 계약 해지를 통보할 수 있고 그 효력은 3개월이 지나면 발생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세입자의 계약 해지 통보에 보증금 지급을 거부하다간 집이 경매로 넘어갈 가능성도 있다. 계약 해지를 통보하고 3개월이 지났는데도 집주인이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으면 세입자가 전세금 반환소송으로 대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입자가 소송을 통해 승소하면 집주인은 보증금에 지연 이자까지 줘야 한다. 만약 세입자가 소송에서 승소했는데도 집주인이 보증금 지급을 거부하면 강제 경매 집행까지 이어질 수 있다. 엄연히 상호 합의 하에 계약을 맺었음에도 임차인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나온 법의 맹점을 임차인이 남용해 오히려 집주인이 피해를 입는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이다.
여경희 부동산 R114 연구원은 “일반적이지는 않지만 신규단지가 입주하는 곳이나 지방과 같이 공급이 많은 지역에서는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라면서 "수도권에서도 검단, 동탄, 화성 쪽에서는 전세가격이 크게 떨어지면서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을 취소하고 새 계약을 맺는 사례들이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전세시장 침체가 이어지면서 세입자 우위의 시장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상황이다. 가파른 임대료 인상으로 임차인의 주거가 불안해지자 계약 갱신권을 사용해 안정적 주거를 유지했던 과거와는 확연히 뒤바뀐 모습이다. 실제로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의 자료를 보면 계약 갱신 때 임대료를 낮추거나 동결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서울 아파트 전·월세 갱신계약의 갱신권 사용 비중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되는 한 전세시장 약세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배민주 땅집고 기자 mjba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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