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12.01 07:31 | 수정 : 2022.12.01 15:10
[땅집고] “편의점 아르바이트 출근했는데 출입구가 사라졌어요.”
최근 온라인 커뮤니티에 편의점 근무자 A씨가 올린 글이 화제가 됐다. A씨가 글과 함께 올린 사진을 보면 당초 대로변 쪽으로 나 있어 가시성과 접근성이 좋았던 편의점 정문 주변으로 인부들이 벽돌을 쌓아 올려 화단을 만들었다. 화단에는 모래를 깔고, 키가 낮은 나무가 여럿 심어져있다. 누가 봐도 편의점 이용을 막으려는 조치로 보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A씨는 “건물주가 편의점 빼라고 정문 앞에다가 벽돌을 쳐놨다고 한다. 법에 안 걸리려고 화단인 척 만들었나본데, 이상한 플라스틱 위에 흙만 살짝 뿌려놓은거라 밟으면 밑으로 쑥 빠진다”라며 “(편의점) 점장님 사람 좋으신 분인데 안타깝다”고 전했다.
땅집고 취재 결과 문제의 건물은 전남 여수시 중앙로 일대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등기부등본에 따르면 지하 1층~지상 5층 규모인 이 건물은 2021년 9월 62억원에 매매거래됐다. 새 건물주는 서울에 본사를 둔 와이원피에프브이주식회사다.
이 건물에는 편의점을 비롯해 병원·약국 등이 임차해 있었다. 건물주가 바뀌기 전 임차인들은 2020년 11월부터 2023년 2월까지 점포를 이용하는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그런데 새 건물주가 이 건물을 매수한 뒤 전면 리모델링하기 위해 임차인들에게 퇴거를 요구했다. 하지만 임차인들은 영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데다, 점포 내부에 설치한 시설이나 인테리어 등에 들인 비용을 아직 회수하지 못했다며 임대차계약 조기 종료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맞섰다.
이에 건물주는 기존 임차인들을 퇴거시키려는 목적으로 각종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 먼저 편의점 문 앞에는 고객들의 진입을 막기 위해 화단을 설치했다. 건물 외벽과 담장에는 ‘내부 철거 리모델링 예정’ 이라는 문구를 빨간 래커로 빼곡히 적어둬, 마치 건물 내 매장들이 문을 닫고 모두 철수한 듯한 분위기를 조성했다. 임차인들은 건물주의 의뢰를 받은 용역업자가 그동안 무료로 이용해오던 건물 내 주차장을 올해 6월부터 유료로 전환해, 10분당 2000원 가량 주차비를 걷으면서 건물 이용이 크게 불편해졌다는 주장을 펴기도 했다.
이런 경우 법적으로 새 건물주와 임차인 중 누구에게 잘못이 있는 걸까. 부동산 전문 변호사들은 만약 건물주가 상가 임대차계약 당시 건물 재건축·리모델링 계획을 미리 알려준 경우였더라면, 건물주가 새 세입자와의 계약을 거부할 수 있다고 말한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제10조 제1항 제7호에는 ‘임대차계약 체결 당시 공사 시기 및 소요 기간 등을 포함한 철거 또는 재건축 계획을 임차인(세입자)에게 구체적으로 고지하고 그 계획에 따르는 경우’, 건물주는 세입자의 갱신요구권을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 사례처럼 건물주가 갑작스럽게 재건축·리모델링을 통보하는 경우는 얘기가 다르다. 만약 세입자가 재건축 계획에 대해 미리 알았다면 임대차계약을 체결하지 않는 등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 건물주가 세입자와 합의해 위로금 명목의 비용을 지급하고 퇴거를 이끌어내는 것이 원만한 갈등 해결 방법으로 꼽히지만, 협상이 결렬되는 일이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사진 속 편의점 운영자를 비롯해 다른 임차인인 의사·약사 등 4명은 건물주를 업무방해죄와 권리행사방해죄 명목을 들어 경찰에 고소했다. 한 고소인은 “임대차 계약이 아직 종료되지 않은 데다가,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의해 최대 10년까지 계약 갱신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즉 새 건물주가 건물의 인도를 요구할 권한이 없는 데도 위세를 과시하는 방법으로 범행을 저지른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건물주는 “주차장 통제나 리모델링 공사는 건물 관리인으로서 행사하는 정당한 행위”라며 “고소인들을 퇴거시킬 목적이나 업무를 방해할 의도는 전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지은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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