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8.18 07:14
[땅집고]윤석열 정부의 첫 부동산 공급 계획을 담은 ‘8·16 대책’이 발표되자 1기 신도시인 일산과 분당 등을 중심으로 지역민들의 원성이 쏟아졌다. 정부 대책에 담긴 1기 신도시 재정비 대책이 사실상 2년 뒤에나 가시화 될 것으로 예상되면서다. 지난 대선을 거치면서 재건축 기대감이 컸던 만큼 일산과 분당 등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큰 반발이 예상된다. 재건축 추진단지 주민들은 단체 행동에 나서겠다고 했다.
정부는 지난 8.16 공급 대책에서 1기 신도시의 경우 연구용역을 거쳐 도시 재창조 수준의 재정비 마스터플랜을 2024년 중 수립하기로 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약속한 ‘1기 신도시 특별법’ 제정이 2024년 이후로 연기된 것을 시사한다. 특별법 제정으로 재건축 규제 완화를 기대했던 1기 신도시 주민들은 "공약을 파기한 것과 다름없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원희룡 국토부 장관이 “2024년으로 가급적 속도를 내보겠다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일정을 정하는 것은 제한이 있다”면서 “2024년까지 마스터플랜을 마련하겠으나 일정을 앞당기도록 노력하고, 중간 진행 상황은 주민과 공유할 계획이다”고 밝혔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주민들은 많지 않은 듯 했다.
■ ‘희망고문’…1기 신도시 주민들 “허탈하다”
지난해 일산과 분당 등 1기 신도시에서는 집단행동을 통해 특별법 제정을 촉구했다. 지은 지 30년이 된 아파트의 재건축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내용이다. 이에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시절 1기 신도시 재정비를 통해 양질의 주택 10만가구 이상을 공급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8·16대책에는 이를 위한 기본 계획인 마스터 플랜을 2024년에야 내놓겠다고 발표하면서 주민들은 큰 혼란에 빠졌다.
1기 신도시 재건축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뒤통수 맞았다", "대통령 선거 공약을 내놓을 당시엔 당장 1기 신도시를 재건축해줄 것처럼 이야기하더니 2년이나 늦췄다", "선거용으로 내놓은 대책 같다"는 이야기가 올라왔다.
최우식 분당재건축연합 위원장은 "주민들이 기대했던 것보다 훨신 후퇴한 대책이 나왔다"고 했다. 그는 "분당을 비롯한 1기 신도시 주민들이 바란 것은 기본 계획을 세워달란 것"이라며 "정비구역 지정과 기본 계획을 세운 이후에도 재건축 완공까지는 또 시간이 걸리지 않나. 기본 계획에 속하는 마스터플랜을 2년 더 늦췄다는 것은 주민들에게 기약 없이 기다리라는 말과 같다"고 했다.
일산재건축연합 관계자는 "새 정부 들어선 이후 뭘 한 것인지 궁금하다"며 "정부의 시간표를 따라 재건축 사업을 할 수밖에 없는데, 정부가 얼마나 의지가 있는지 믿기 어렵다"고 했다.
분당과 일산신도시 재건축 단체는 향후 주민 서명 등 단체 행동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 분당·일산 재건축단체, 단체행동 나설 듯…전문가 “속도조절 이해하지만 약속은 지켜야”
이번 대책에서 안전진단 완화 방안은 비교적 구체적으로 담겨, 개별 단지의 재건축 장벽이 다소 사라졌다는 평가도 나온다. 정부는 재건축 안전진단 항목 중 구조 안전성 비중을 30~40%로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또 평가항목 배점도 시장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 권한을 줬다. 반드시 의무적으로 받아야 했던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도 지자체가 요청하는 경우에만 시행할 수 있게 했다. 공공기관 적정성 검토가 도입된 2018년을 기점으로 이전 3년간 56곳이 안전진단을 통과한 반면 도입 이후 3년 동안에는 6곳에 불과했던 점을 고려하면 강제성을 없앤 것만으로도 안전진단 통과율이 크게 높아질 전망이다.
안전진단 규제를 완화하는 것은 시행령 변경만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에 추진하는데 큰 걸림돌도 없다. 하지만 정부는 안전진단 완화 방안의 적용 범위와 시행 시기를 연말에 제시한다고 했다. 사실상 연말까지 재건축 규제가 유지되는 것과 다름없는 셈이다.
일각에선 일산 등에서 추진 중인 리모델링 사업이 더 탄력을 것이란 전망도 있다. 일산서구 후곡동 전철 3호선 주엽역 앞 대단지 아파트 '문촌마을16단지뉴삼익'과 강선마을14단지 아파트는 지난 5월 나란히 조합설립인가를 받아 사업을 본격화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1기 신도시는 비슷한 시기에 대량으로 공급된 아파트가 많기 때문에 재정비사업을 위해서는 마스터플랜이 꼭 필요하다"며 "시기를 늦췄다면 그만큼 준비된 정책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1기 신도시는 지역간 개발 형평성, 이주 대책, 투기 우려 등의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많아 정부 입장에서 개발 속도를 높이기 부담스러워 속도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대선 공약 사항인만큼 정부가 야당과 국민을 설득해서 부작용을 완화하는 노력을 기울이면서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고 했다./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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