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8.17 11:40
[땅집고] 우리나라 욕실마다 ‘타일 마감’이 너무나 당연하다. 멋진 이탈리아산 타일로 장식하고, 유럽에서 수입한 위생 도기를 설치한 욕실은 주(主) 생활의 격을 결정짓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타일로 마감한 욕실에선 하자도 많이 발생해, 옆나라 일본의 욕실 마감을 슬쩍 엿보게 된다.
일본의 만숀(mansion·일본식 아파트)에선 ‘조립식’으로 지은 욕실이 많다. 바닥·벽·천정이 각각 한 판씩, 6개 판으로 미리 제작돼 현장에서 문짝 욕조로 조립하는 형식이다. 이런 조립식 욕실은 각 부재의 수가 적기 때문에 기본 방수만 하면 하자 요인이 적을 뿐 아니라, 공정·공사기간·공사비 모두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 대부분 주택은 임대나 분양을 가리지 않고 욕실을 조립식으로 건축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시도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20여년 전 삼성 계열 건설사들이 이 같은 조립식 욕실을 도입하려고 시도했다. 다른 건설사들 역시 조립식 욕실 적용을 수차례 시도하고 관련 회사도 만들었지만 모두 폐업하고 말았다. 이유가 뭘까.
그 원인을 따라가보면 우리나라 건설 업계의 아픈 곳이 보인다. 조립식 욕실 업체가 설계대로 자재를 준비하더라도, 현장상황이 도저히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안됐던 것. 아파트 단지 내 수백에서 수천개에 달하는 욕실이 당초 설계와 다 달라서다. 욕실의 기본적인 사이즈 뿐 아니라 수전의 높이, 배수구의 위치 등이 설계대로 딱딱 맞아야 조립식을 적용하는 의미가 있는데, 자재를 현장 상황에 맞추려 하다보면 제조 공장에서보다 현장에서 해결해야 하는 일이 더 많아지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른바 ‘가네’, 즉 골조의 직각이 잘 맞지 않는 경우가 특히 문제다. 직각이 조금이라도 안 맞으면 서로 마주보는 벽판의 사이즈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바닥판과 천정판이 네모 반듯하지 않고 사다리꼴이나 마름모꼴이 되어버리니 현장에선 큰 문제가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벽판을 만들어 현장에 방문했는데 10cm가 틀리면 쪼가리 판이라도 붙이는 식으로 그나마 문제를 해결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직각이 맞지 않아 한 쪽은 2cm가 모자라고 다른 한 쪽은 1cm가 모자라니 자르고, 붙이고, 판을 다시 만들어오고, 돌아와서도 판이 욕조와 맞지 않고, 세면기 수전 높이와도 안 맞고, 변기 하수 구멍과도 어긋나니 시공자 입장에선 그야말로 ‘미치고 환장하는’ 것이다.
이에 하도급을 받은 조립식 욕실 전문 업체가 원도급인 현장 사무실에 “선(先) 공정이 도면대로 시공이 안돼 효율에 문제가 있다”는 취지로 문제를 제기해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장 사무실 답변은 “그건 당신들이 현장 실측을 제대로 하고 맞춰 오셔야지~”란 식의 핀잔으로 돌아온다. 이 때문에 하도급이 욕실 500개를 수주하더라도 3000개(욕실 500개X 바닥·벽·천정 6개 판)에 달하는 판을 모두 다른 치수로 제작하다시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다보니 “그냥 타일로 마감하자”는 식으로 되어버린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건설 현장에선 선 공정의 잘못을 후 공정이 그대로 받아 군말 없이 끝내고, 또 그로 인해 생긴 하자를 다음 공정으로 미루는 악습이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 이런 악습은 결국 아파트 준공 후 몇 만건에 달하는 하자 민원을 불러와 끝 없는 갈등만 양산해내고 있다. 일본처럼 약속대로 판 몇 개를 들고가 현장에서 뚝딱 조립하고, 조인트만 몰딩이나 실리콘으로 작업하면 일도 쉬울 뿐더러 나중에 방수와 관련한 하자도 적지 않을까.
타일로 마감하는 것은 습식 공법으로, 선진 공법과는 거리가 멀다. 손바닥만한 욕실도 조립식으로 못 짓고 있으니, 일본의 대형 건축물에서는 외장으로 흔하게 쓰는 프리캐스트 콘크리트 타일·그래닛(Precast Concrete tile·granite, 공장에서 만든 콘크리트에 타일이나 석재를 붙여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도 1970~80년대까지 시도하다가 결국 포기하게 된 것이다. 옛 삼성사옥 한국은행 신관이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조립식 욕실보다는 이태리산 타일을 붙인 욕실이 더 고급이니, 소비자 입장에선 불만일 것은 없다. 하지만 최근 건설 현장 인건비가 일본을 추월해 타일 시공자 일당이 40만원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같은 수준의 아파트를 일본보다 더 저렴하게 짓고 싶어도 현장 생산성을 높일 수 없으니 곤란한 셈이다.
이는 한국의 아파트가 낫다, 일본의 만숀이 낫다를 따지는 문제가 아니다. 건설 현장에서 서로의 기본 약속을 잘 지켜 효율을 높인 것이 일본 건축 시스템의 장점이라면, 기꺼이 배워서 쓰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언제까지 한국인의 주특기인 임기응변에 따라 ‘싸우며 일하자’ 의식에 의존할 것인가. /글=남택 건축사, 편집=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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