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8.11 07:42 | 수정 : 2022.08.11 16:31
[땅집고] “세상에 어떻게 이런 ‘멍청한 계단’이 있나 했는데, 이젠 계단에게 고마워해야겠네요!”
이번 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집중 호우가 쏟아지면서 주택은 물론이고 상가·지하철역·도로 등을 가릴 것 없이 곳곳에서 심각한 침수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특히 지대가 낮은 강남권에선 빗물이 쏠리면서 ‘수도권 시민들의 발’로 불리는 지하철역마다 물에 푹 잠겨 열차가 운행을 중단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이런 가운데 서울 동작구에 있는 지하철 7호선 상도역에 설치된 ‘멍청한 계단’의 용도가 재조명을 받고 있다. 상도역 2번 출구에 있는 이 계단은 지하철역과 바로 앞 보도블럭을 연결한다. 그런데 계단이 굳이 필요 없어보이는 곳에 설치된 점이 논란이 됐다. 통상 높은 곳과 낮은 곳을 편하게 오르내리도록 하는 공간에 계단을 설치하는데, 상도역 2번 출구와 도로 간 높낮이가 얼마 되지 않아 따로 돈을 들여 계단을 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다.
이 때문에 계단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퍼지면서 ‘멍청한 계단이다. 무쓸모 존재가 따로 없다’는 조롱을 받았다. 일각에서는 혈세 낭비 아니냐는 의혹까지도 제기됐다.
하지만 최근 집중호우 때 상도역 2번 출구 계단의 진짜 용도가 밝혀지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이 계단은 단순히 지하철역을 오르내리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빗물이 지하철역으로 유입되는 것을 막는 차수판(遮水板)을 설치할 때 쓰는 보조계단이었던 것.
상도역 2번 출구는 저지대에 있는 터라 비가 많이 올 때마다 이 곳으로 빗물이 흘러들어와, 번번히 상도역 침수 피해를 불러오곤 했다. 이에 서울교통공사가 2번 출구에 50cm 정도 높이의 차수판을 설치해 빗물을 차단하기 시작했다. 누구나 차수판을 쉽게 넘어갈 수 있지만, 노약자나 어린이, 짧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차수판을 넘어다니기 힘들 수 있다. 이 점을 고려해 서울교통공사가 차수판 왼쪽에 보조계단을 설치해, 사람들이 쉽게 지하철역으로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이에 올해 수도권 집중호우 기간에 침수를 겪거나 무정차운행하는 강남권 지하철역이 적지 않았는데, 상도역은 침수 피해를 입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교통공사 관계자는 땅집고와의 통화에서 “아무래도 비가 너무 많이 오다보니 상도역에도 약간의 누수는 발생했지만, 역 전체가 잠기는 침수 피해는 다행히 없었다”고 했다.
네티즌들은 상도역의 ‘멍청한 계단’에 고마움을 표시하고 있는 분위기다. “저 계단은 매일매일 폭우가 내리길 기다렸을듯. 계단아 그동안 오해해서 미안해”, “이번처럼 80년만에 폭우가 내리면 방법이 없지. 잘 싸웠다”는 등의 반응이 눈길을 끌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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