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7.20 08:00

[땅집고] “안양 ‘범계 모비우스’ 앞이 ‘폭풍지대’ 된 것 느껴지시지 않나요? 바람 좀 부는 날이면 유난히 이 건물 앞에서만 엄청나게 강한 폭풍이 불어닥치더라고요.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최근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 이 같은 내용의 글이 올라와 눈길을 끌고 있다. 경기 안양시 호계동 소재 오피스텔인 ‘힐스테이트 범계역 모비우스’ 앞을 지날 때 마다 유독 강한 바람이 느껴진다는 것. 지난해 7월 입주한 이 단지는 최고 43층으로 안양시에서 가장 높은 주거용 건물이면서, 총 622가구 규모로 오피스텔 중에서는 대단지에 속한다.

건축업계에선 이런 현상을 ‘빌딩풍’으로 설명하고 있다. 빌딩풍이란 고층빌딩 사이에서 일어나는 풍해(風害)로, 고지대에서 부는 바람이 도심 고층 빌딩에 부딪혀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거나 지상으로 내려오는 현상을 뜻한다. 좁은 물길에서 유속이 더 빨라지는 것처럼, 넓은 공간에서 불던 바람이 고층 빌딩 사이의 좁은 공간으로 들어오면서 속도가 붙는 것이다. 바람이 고층 건물 사이를 통과할 때마다 점점 더 빨라지는데, 이 바람이 건물에 부딪치면 소용돌이치거나 위로 솟구치고 아래로 급강하면서 매서운 ‘폭풍’이 불게 된다.
우리나라에선 고층 빌딩이 밀집한 서울 강남이나 부산 해운대 등 도심 지역에서 빌딩풍이 강하게 분다. 문제는 빌딩풍이 단순한 강풍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 안전을 위협하는 ‘신종 재난’이 될 수 있다는 것. 바람이 휘몰아치면 간판·지붕이 날아가거나 전선이 끊어질 수 있고, 자동차가 전복돼 인명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2020년 태풍 마이삭과 하이선이 상륙했을 때 부산 해운대구의 한 고층 건물 유리창 수십장이 박살나는 일이 있었다. 101층 높이인 ‘엘시티’의 경우 외벽 유리가 파손되고, 해안가 호텔 외벽 타일이 바닥으로 와르르 쏟아지기도 했다. 빌딩풍이 불면서 각 단지 인근 주변이나 해변에 있던 자갈·돌멩이가 위로 솟구쳐 오르며 유리창에 충격을 가한 것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행정안전부와 부산시가 발주한 빌딩풍 연구 용역을 수행하는 권순철 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과 교수팀은 “해운대 해안가 고층 건물 주변의 풍속을 측정해보니 빌딩풍 풍속이 해상의 태풍 속도보다 7m가량 빠른 것으로 측정됐다”고 밝히기도 했다. 통상 바람이 초속 30m인 환경에 있는 사람은 두 다리를 움직이며 필사적으로 중심을 잡아야 하고, 초속 35m가 넘어갈 경우 어떤 자세를 잡더라도 바람에 휩쓸려 넘어지게 된다. 그런데 고층 빌딩이 밀집한 부산 마린시티 일대에 부는 빌딩풍은 초속 약 30m이며, ‘엘시티’ 건물 주변에선 최대 초속이 약 50m에 달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권 교수는 “해안가에 가까운 지역에서 빌딩풍의 풍속이 최대 2배까지 증가했다”며 “빌딩풍을 신종 재난으로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건축가들은 빌딩풍으로 인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다양한 설계법을 고안해내고 있다. 먼저 초고층 건물에 바람구멍을 뚫는 방법이 있다. 이 구멍으로 바람이 지나가면, 바람이 빌딩에 부딪혀 강속으로 하강하는 일이 줄어든다. 외벽을 부드러운 곡선이나 나선 형태로 만들어 바람과 닿는 면적을 줄이는 설계도 있다. 서울 송파구 ‘롯데월드타워’가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건물 중간에 뚫은 바람구멍에 풍력 발전기를 설치해 빌딩풍 피해도 줄이고, 빌딩풍을 활용해 친환경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석이조’ 설계법도 나왔다. 중동 바레인 ‘세계무역센터 빌딩’, 중국 광저우 ‘펄리버 타워’, 영국 런던 ‘스트라타 se1’ 등에 이 설계가 적용됐다. 바레인의 ‘세계무역센터 빌딩’의 경우 건물 두 개동(棟)을 연결하는 통로에 50m 크기 풍력발전 터빈 3개를 설치했다. 각 터빈에서 만드는 전기로 건물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15%를 감당하고 있다고 알려진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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