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6.30 06:01
[땅집고] “지난 몇 년 동안 투자금을 받았으면 이제는 뭔가 성과를 보여줘야 하는데, 그동안 흑자 전환한 프롭테크 기업 자체가 거의 없잖아요. 지금처럼 금리 인상과 인플레이션 충격으로 경제가 얼어붙은 상황에서는 투자자도 수익모델을 갖춘 기업을 가려서 지갑을 열 수 밖에 없죠.”
정보 비대칭성이 강했던 부동산 시장에 기술을 접목한 사업모델을 앞세워 벤처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프롭테크’(proptech·부동산에 IT기술을 접목한 온라인 서비스) 업계에 한파가 몰아닥치고 있다. 최근 5년여 동안 이어진 부동산 호황 덕분에 외부 투자금을 받아 운영했던 프롭테크 기업 중 확실한 수익 모델을 제시한 기업이 등장하지 않자 투자자들이 지값을 닫기 시작한 것이다.
프롭테크 업계가 직면한 더 큰 문제는 근본적으로 ‘IT기술은 보유했지만 확실한 수익모델을 갖춘 기업 자체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 한국프롭테크포럼에 따르면 올 4월 기준 국내 211곳이 프롭테크 회원사로 등록됐는데, 이 중 148개사의 누적 투자 유치금액만 5조1513억원에 달한다. 이 중 매출을 내는 곳은 126곳이며, 총 매출액은 1조9440억원으로 투자금의 37%에 그친다. 영업이익을 내고 있는 곳은 손에 꼽을 정도다. 이에 따라 투자금 잔치를 벌이던 프롭테크 업계가 ‘옥석 가리기’를 피할 수 없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금줄 끊긴 프롭테크 기업 경영난…직방·다방도 적자
올해 부동산을 둘러싼 경제 상황이 악화하면서 프롭테크 업계에 흘러들어가는 투자금이 확 줄었다. 미국발 금리 인상, 인플레이션 우려, 주식시장 침체 영향으로 기업마다 돈줄을 죄고 있다. 스타트업 투자 정보 플랫폼 ‘더브이씨’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달 초까지 국내 스타트업이 벤처캐피탈(VC) 등으로부터 유치한 투자금은 총 6조8488억원이다. 지난해 같은 기간 13조6545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반토막 수준이다. 특히 같은 기간 건설·부동산 관련 스타트업으로 분류된 기업이 유치한 투자금액은 지난해 3100억여원에서 올해 860억여원으로 70% 이상 급감했다.
이에 마땅한 수익모델이 없어 투자자 손에 매달려야 하는 프롭테크 기업이 적지 않다. 상업용 부동산에 인공지능 딥러닝을 적용한 가격 예측 모델을 내세웠던 ‘리판’은 출범 3년여만에 서비스를 접었다. 국내 ‘1세대 부동산 중개플랫폼’으로 통하는 ‘다방’(스테이션3)은 지난해 매출이 246억원으로 전년 대비 10.5% 감소하면서 영업적자 8억원, 순손실 19억원을 냈다. 대학생·사회초년생 상대로 원룸과 오피스텔을 중개해 수수료 등을 받는 ‘집토스’도 2016년 설립한 후 누적 투자금 90억원을 유치해 업계에서 손꼽히는 회사였지만, 올 들어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프롭테크 업계의 맏형으로 불리는 ‘직방’도 상황이 녹록치 않다. 직방은 2019년 대규모 투자 유치 이후 상장에 나섰으나 확장성있는 수익모델이 없는 상황이다. 직방은 기본적인 수익 모델은 월셋방 광고 플랫폼에서 시작했는데, 여전히 이 모델에서 벗어나지 못해 매출이 400억원 대에 정체돼 있다. 직방은 지난해 영업적자가 82억원, 순손실이 130억원에 달한다.
게다가 네이버가 부동산 광고 플랫폼의 메인 시장인 ‘아파트 광고’시장을 지배하고 있는데, 직방이 이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고 앞으로도 불가능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가 부동산 온라인 광고 시장을 지배하고 있지만, 골목시장 침해 논란을 피해 미래를 위해 현상 유지 정도만 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며 “현재는 네이버가 직방이 경쟁자가 되지 않는다고 놔두고 있지만, 선을 넘으면 언제라도 압도해 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직방은 투자받은 돈으로 우주·호갱노노 등 다른 스타트업에 투자했지만, 이 기업들 역시 수익모델은 딱히 없다. 결국 부동산 중개업에 뛰어들었지만, 중개사 반발이 만만치 않다. 직방은 최근 프리IPO(상정 전 투자유치) 과정에서 기업가치를 2조4000억원으로 인정받았지만, 당초 시장 예상가치였던 3조원을 크게 밑도는 수준이었다.
■수익모델 탄탄한 기업은 승승장구…프롭테크 업계는 ‘옥석 가리기’ 중
최근 한파에도 불구하고 잘 나가는 프롭테크 기업들도 있다. 그동안 중개수수료나 광고수익에만 의존해 투자금이 끊기자마자 경영난에 직면한 업체들과 달리 확실한 수익모델을 구축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전문 기업인 ‘알스퀘어’는 지난해 매출액 830억1000만원에 영업이익 53억3000만원을 기록했다. 올해 들어 5월까지 수주 매출액이 1000억원을 돌파해 전년 동기 대비 61% 뛰기도 했다.
알스퀘어 관계자는 “기본적으로 상업용 부동산 임대차 정보를 제공하고 임대차계약을 성사해 받는 수수료가 수익모델인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계약 후 인테리어 설계·시공까지 이끌어내거나 물류창고 중개 등 유관사업으로 업역을 꾸준히 넓히고 있다”며 “국내에서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수집한 노하우를 바탕으로 베트남·싱가포르 등 해외에도 진출했다”고 밝혔다.
2030세대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종합 인테리어 플랫폼 ‘오늘의집’을 운영하는 버킷플레이스는 지난 4월 2350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자체 개발한 어플리케이션을 사업 플랫폼으로 삼았는데, ‘집들이’(직접 인테리어한 집을 다른 이용객들에게 자랑하는 게시판) 등 이용자들이 앱을 꾸준히 이용할 수 있는 요소를 들여 끊임 없는 소비를 이끌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소비자들이 어려워하는 부동산 권리분석조사, 전세금 반환보증보험 위탁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 ‘리파인’은 지난해 말 매출액이 587억여원으로, 프롭테크 기업 중 최초로 상장에 성공하기도 했다.
프롭테크 업계에선 IT 기술을 개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탄탄한 수익모델을 만들어 사업성을 높이거나, 아예 경쟁자가 없어 시장을 독점할 수 있는 기업이라야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프롭테크 기업 관계자는 “국내에 프롭테크 기업이 처음 등장했을 때는 IT기술을 활용해 부동산 정보를 수집하거나 수치화하기만 해도 투자금을 유치하는 등 각광받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바뀌었다”라며 “앞으로는 중개·광고만 하는 ‘브로커’ 역할에서 벗어나 적어도 출범 4~5년 안에는 독창적인 수익모델을 갖추고, 실제로 돈을 얼마냐 버느냐가 투자자들의 지갑을 여는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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