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6.25 10:02
[지방 주택시장은 지금] ②“바닥이 어디인지 모르겠어요”…추락하는 대전 집값
[땅집고] “팔겠다는 사람은 천지인데 사려는 사람이 없어요. 부동산 시장 상황이 어찌나 안 좋은지, 도안신도시 인기 아파트조차 세입자를 못 구하고, 기존 주택이 안 팔려서 이사를 못해 빈 집이 늘고 있어요. 지금도 바닥인데 어디까지 추락할지 감도 안 옵니다.”(대전시 도안신도시 A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
지난 23일 찾은 대전시 유성구 도안신도시 대장 아파트 중 한곳으로 꼽히는 상대동 ‘트리풀시티 9단지’. 2011년 준공한 1829가구 대단지로, 작년 아이파크시티가 입주하기 전까지 도안신도시의 유일한 대장 아파트로 불렸다. 지은지 10년 넘었지만, 아직까지 아파트 외관은 말끔했다. 이 아파트는 2018년 하반기부터 작년 상반기까지 집값이 치솟았지만 지금은 매물만 쌓이고 있다.
트리풀시티 9단지 상가에서 만난 A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세입자는 전셋값이 많이 올라 최대한 이사를 안 가려고 하고, 집주인들은 집이 안 팔려서 이사를 못한다. 이 아파트 입주 때부터 중개업을 했는데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매매 시장은 썰렁 그 자체다. 매수자들은 초급매 매물이 나와도 값을 흥정하거나 더 떨어질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한다”고 했다.
실제로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지난달 대전·충청권 아파트 입주율은 80.5%로, 전국 평균(82.4%)과 6대 광역시(82.9%)보다 낮다. 미입주 사유로는 ‘세입자 미확보’, ‘기존 주택 매각 지연’, ‘잔금대출 미확보’ 등이다.
대전 부동산 시장은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KB리브부동산에 따르면 지난달까지 올해 대전 아파트값 누적 변동률은 -0.62%였다. 세종(-2.39%), 대구(-0.86%)에 이어 전국에서 세 번째로 하락 폭이 크다. 업계에서는 상품성이 떨어지는 단지와 하급지 중심으로 집값이 계속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대전은 딱히 개발 호재가 없는 지역이라 전국적인 시장 상황과 세종시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신규 공급도 이어지고 있다.
■개집도 오른다던 대진 집값, 작년 하반기부터 꺾여
대전 집값은 2018년부터 작년까지 천정부지로 뛰었다. 대전과 대체재 시장으로 꼽히는 세종시 아파트 입주 물량이 2018년 들어 감소하면서 대전 집값은 상승세를 탔다는 분석이다. 대전은 전국에서 준공 20년 넘은 노후 단지가 가장 많은 지역으로 신규 공급이 부족한 것도 집값 상승에 한몫했다.
정부가 서울과 수도권, 세종에 고강도 규제를 가하면서 대전 집값은 풍선효과를 보면서 더 뛰었다. 정부는 2020년 6월 대전을 투기과열지구로 묶었지만 작년 상반기까지 집값은 계속 올랐다. 그러나 작년 하반기부터 집값이 꺾이기 시작했다. 현지 공인중개사들은 “2~3년전만해도 대전에서는 ‘개집도 값이 오른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올 정도로 집값이 올랐다”며 “치솟던 집값이 이렇게 순식간에 빠지는 걸 보니 중개하는 입장에서도 황당하다”고 말했다.
대전 집값은 입주 10년차 이상이거나 외곽지에 있는 지역부터 추락하고 있다. 최근 대전에 신규 입주 물량이 풀리면서 매수자들이 청약 시장으로 쏠리자 상품성이 떨어지는 단지부터 집값이 빠지고 있는 셈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시스템에 따르면 준공 12년 차를 맞은 상대동 ‘도안신도시 트리풀시티9단지’ 전용 129㎡는 지난해 2월 16억4500만원 신고가를 찍었으나, 올 5월 13억2000만원로 3억원이 넘게 하락했다. 심지어 저층부는 올해 초 11억6000만원에도 거래됐다.
유성구 죽동지구와 서구 관저지구 등 상대적으로 외곽지에 속하는 신도시 집값도 큰 폭으로 내려가고 있다. 유성구 죽동 ‘죽동금성백조예미지’ 전용 85㎡는 올해 3월 6억 5000만원에 손바뀜했다. 지난해 9월 신고가에서 2억5000만원 내린 금액이다. 서구 관저동 ‘관저더샵2차’ 전용 85㎡는 지난해 7월 9억원으로 관저지구 내 최고가를 기록했으나, 올 4월 5억3000만원까지 떨어졌다.
대전 탄방동의 S공인중개사사무소 서모 대표는 “일부 지역을 빼고 대전 지역은 거래가 사실상 중단됐다. 작년 하반기부터 외지인이 시장에서 빠져나갔고, 현지인이 시장을 받치고 있지만 추가 매수세력이 없다”고 말했다.
■둔산동·도룡동은 가격 유지…“하락 방어재료 확실해”
학군 인기지역으로 꼽히는 서구 둔산동과 유성구 도룡동 일대 대장 아파트들은 거래 절벽 속에서도 가격이 유지되고 있다. 시장 상황상 소폭 하락은 어쩔 수 없지만, 확실한 재료가 있어 하락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다.
대전의 대장 아파트인 서구 둔산동 ‘크로바’ 전용 101㎡는 지난달 12억5000만원에 매매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7월 신고가보다 9000만원 떨어졌다. 다른 주택형은 작년 이후 거래가 없다. 이 단지는 1992년 준공한 구축 아파트로, 대전 핵심 학세권 단지인 ‘크목한’(크로바·목련·한마루) 중 한 곳이다. 인근 ‘한마루’ 전용 101㎡는 지난 4월 10억28000만원에 거래돼 지난해 12월 신고가보다 7000만원 가까이 떨어졌다. 목련은 지난해 이후 새로 체결한 계약이 전무하다.
도룡동 일대 부동산은 더 견고한 모습이다. 도룡동은 대덕연구단지와 대덕테크노밸리에 종사하는 연구인력 배후 주거지로, 대전의 대표 부촌이자 대덕초·중·고, 대전과학고, 카이스트 등 명문 학군지로 유명하다. 도룡동에는 대전에서 드물게 최근 신고가를 쓴 단지도 있다. 도룡동 스마트시티2단지 전용 84㎡는 이달 13억1500만원에 거래했다. 이는 지난해 3월 신고가보다 4500만원이 오른 수준이다.
크로바 아파트 인근 C공인중개사무소 정모 실장은 “둔산동과 도룡동은 확실한 유명 학군지가 있어 아직도 매수 문의가 꾸준하다. 다만 도안신도시나 세종시에 아파트를 가진 소유주가 집이 안 팔려서 실제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면서 “당분간 다주택자 매물로 인해 급매물이 조금씩 풀리겠지만, 장기적으로 학군지는 하락장에서도 버틸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대전=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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