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5.26 03:50
[땅집고] 국토교통부가 작년 10월 생활형숙박시설을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하는 것을 허용한 이후 부산 해운대구에서 첫 신청 사례가 등장했다. 그러나 국토부가 용도 변경에 필요한 건축법 등 후속 규제 완화에 대해 손을 놓고 있어 생숙 입주민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국토부는 지구단위계획상 오피스텔로 용도 변경이 불가능한 지역이 많아 1~2곳만 허용하면 형평성 논란이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지난 9일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지은 생숙 ‘H스위트해운대’ 용도변경추진위원회가 해운대구청에 오피스텔 용도변경 신청서를 낸 것으로 확인됐다. 추진위는 전체 560실 중 511실(91%) 소유주 대상으로 용도변경 신청 동의를 받았다. 이 단지는 지하 5층~지상 38층 2개동 총 560실이며 2018년 부산에서 첫 입주한 생숙이다.
생숙은 취사시설을 갖춘 오피스텔과 비슷한 숙박시설이다. 공중위생관리법상 숙박업에 해당해 주택으로 쓸 수 없고 영업신고 후 숙박업 용도로 써야 한다. 하지만 관련 기준이 모호해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 분양 시장에서는 생숙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편법을 소개하면서 홍보하기도 한다. 생숙 수분양자들은 분양 당시 생숙을 주거용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홍보문구를 보고 분양받았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많다. 경기 남양주시 생활형숙박시설 별내역 아이파크 스위트 입주민 A씨는 “시행사가 입주민에게 주거용으로 쓰겠다는 서명을 받고 분양하기도 했다”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해 건축법 시행령을 개정해 생숙을 숙박업 신고대상으로 규정하고 용도 변경 없이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에 대해 생숙을 실거주용으로 사용하고 있던 전국 20여개 단지 입주민들이 반발하자 정부는 지난해 10월 14일 이전까지 생숙을 분양받은 사람에 한해 2023년 10월 14일까지 주거용 오피스텔로 용도를 변경할 경우 이행강제금을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이미 사용승인을 받은 생숙은 발코니 설치, 바닥난방 등 완화된 규정을 적용해 주거용 오피스텔로 용도를 바꿀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분양받은 입주민 중심으로 오는 10월 전까지 용도변경 신청을 준비 중이다. 부산 해운대스위트도 이 중 한 곳이다.
정부가 용도 변경을 허가하면서 퇴로를 열어준 듯 보였지만 건축법상, 지구단위계획 등 복합한 문제가 얽혀 있어 실제로는 대다수가 용도변경을 하기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지구단위계획상 오피스텔 건축이 불가능한 부지라면 용도 변경을 할 수 없다. 현재 전국 20여개 생숙 중 H스위트해운대, 협성마리나7, 여수 웅천자이 정도를 제외하면 오피스텔 건축이 허용되지 않는 지역이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현재 도시기본계획이나 관리계획상 변경이 가능한 곳은 한정적”이라며 “주변 지역이 상업화하면서 준주거지역으로 변경할 가능성이 있는 곳을 제외한다면 실제 용도 변경할 수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했다.
생숙을 오피스텔로 바꾸려면 건축법 요건도 충족해야 한다. 복도 폭 변경(건축법), 집중구내·층구내통신실 설치(전기통신사업법), 출입문 손잡이 높이·점자블럭 등 변경(장애인·노인·임산부법), 방화유리창·드렌처설비(방화를 위한 설비) 설치(건축법) 등이다. 하지만 이를 충족하기는 쉽지 않다.
최근 용도변경을 신청한 H스위트해운대도 마찬가지다. H스위트해운대 관계자는 “당초 오피스텔용으로 지은 건축물이 아니라 지금 당장 건축법 규정을 충족시키기 쉽지 않다”며 “일단 용도변경 신청 후 복도 폭을 넓히거나 방화유리를 설치하는 등 추가 공사를 진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H스위트해운대 용도 변경을 허용하면 형평성 논란도 피할 수 없게 된다. 해운대구에 있는 또 다른 생숙인 ‘엘시티’의 경우 지구단위계획상 관광특구여서 오피스텔을 지을 수 없다. 전국주거형레지던스연합회 관계자는 “엘시티도 투자 목적이 아닌 실거주하기 위해 매입한 입주민이 많아 용도 변경을 준비 중”이라며 “만약 H스위트해운대의 용도 변경 신청을 허용한다면 전국 곳곳에서 지구단위계획 변경 요구가 잇따를 수 있다”고 말했다.
국토부는 지구단위계획 변경이나 용도변경에 필요한 규제 완화에 미온적 입장이다. 전국주거형레지던스연합회는 규제 개선을 계속 요청하고 있지만 국토부는 묵묵부답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현재 검토하는 사항이 없다”며 “지구단위계획 결정권자는 지자체장으로 중앙정부가 강제하기 힘든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입주민들은 국토부와 지자체의 미온적인 대처에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3년 간 주거용으로 썼을 땐 아무 문제를 하지 않다가 갑자기 이행강제금을 물어야 할 상황에 놓였기 때문이다. H스위트해운대 입주민 C씨는 “발코니 설치와 바닥난방 규제를 완화했지만 통신설비나 소방법 조건도 완화해야 실질적으로 용도를 변경할 수 있다”며 “국토부는 아예 손을 놓고 있다”고 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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