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5.20 10:33
[땅집고 핫피플] 유천용 도시계획기술사회 회장 “신도시 개발은 수도권 집중만 더 키워…도심 주택 공급 늘려야”
[땅집고]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를 풀어서 주택을 공급하는 신도시는 수도권 집중화 현상을 가속화할 뿐입니다. 신도시 주민도 결국 서울로 출퇴근하다보니 교통·생활 인프라를 깔아야 돼 비용도 많이 듭니다. 인프라가 다 갖춰진 도심에서 주택을 공급할 수 있도록 재개발과 재건축을 활성화시키고, 기업을 지방으로 이전해 인구 분산을 유도해야 합니다.”
윤석열 정부는 임기 중 ‘250만가구+알파’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주택 공급에 치중한 나머지 장기적인 도시계획을 망쳐서는 안된다고 우려한다. 수도권은 인프라를 이미 갖춘 도심에서 재개발·재건축을 통해 공급을 늘리고 지방에선 지역 특성을 살린 일자리 중심의 신도시를 공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천용 한국도시계획기술사회 회장은 “문재인 정부 시절 부동산 가격 폭등은 정책 실패도 컸지만 결국 수도권 집중에 따른 국토 이용의 불균형이 초래한 일로 봐야 한다”면서 “정부는 서울 인구를 분산시키겠다면서 신도시 개발에 나섰지만, 오히려 지방 인구가 수도권으로 몰리게 만들었다. 지방으로 인구 분산을 유도해야 모든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했다.
한국도시계획기술사회는 도시계획 분야 최고 전문가 500여명이 모인 단체다. 유 회장은 최근 한국도시계획기술사회 21대 회장에 취임했다. 그는 현재 가천대·중앙대 겸임교수이면서, 엔지니어링회사인 엠와이이앤씨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땅집고는 유 회장을 만나 현재 도시계획 제도 문제점과 개선방안,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한 제언 등을 들어봤다.
―현재 우리나라 도시계획을 평가하자면?
“지금까지 정부는 도시계획보다 주택 공급을 더 중시하면서 단기적 시각으로 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선진국에서는 10년, 20년, 50년 단위로 장기적인 도시계획을 만들고 주택 공급도 도시계획의 일부로 일정기간 동안 일정한 양을 공급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정부가 집값 동향에 따라 공급을 고무줄처럼 늘였다가 줄이는 바람에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 국민도 정부의 공급 신호보다 여론이나 분위기에 휩쓸리고 있다. 도시계획을 세워 집을 공급하기보다 주택 공급 계획에 따라 도시 구조가 변한다. 결과적으로 도시 구조가 비효율적으로 변한다.”
―문재인 정부 주택 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문재인 정부는 인프라가 잘 갖춰진 기존 시가지에서는 주택 공급을 막았다. 정권 후반에 주택공급이 부족하다는 것을 마지못해 인정하고 미개발지를 수용해 신도시를 만드는 정책을 펼쳤다. 저렴한 비용으로 토지를 수용해 주택을 공급하는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수도권 신도시 문제는 양질의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다. 결국 신도시는 서울 외연 확장에 불과하고 수도권 인구 집중만 심화시켰다. 수도권 신도시 주민도 결국엔 서울로 입성하고 싶어하니 서울 집값은 떨어지기 힘든 것이다.”
―신도시 추가 개발에 반대하는 것인가?
“문재인 정부는 저렴한 그린벨트 등 녹지를 수용해 대규모 공급을 할 수 있는 신도시를 더 나은 선택으로 봤다. 하지만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한 신도시는 결국 입주민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서울로 출퇴근한다. 아무리 길을 놓고, 전철을 깔아도 해결할 수 없는 교통난이 이어진다. 철도와 도로를 새로 깔 때마다 천문학적 세금이 들어간다. 결국 이 비용이 분양가에 반영돼 입주자는 비싼 값에 집을 사야 한다. 반면 도심은 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어 불필요한 추가 지출을 안 해도 된다.”
―정부는 신도시에 일자리를 만들겠다고 한다.
“정부 발표를 그대로 믿을 수 있을까. 신도시 자족용지를 보면 대부분 특색 없는 지식산업센터로 채워져 있다. 신도시 입주민이 원하는 일자리와 동떨어졌다. 집값과 일자리 수준이 서로 맞지 않는 것이다. 실제로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에 거주하는 주민 절반 이상은 서울로 출퇴근하고, 판교 내 기업 근무자는 인근 성남 구도심이나 수원 등지에서 출퇴근한다.”
―신도시 정책을 뜯어고쳐야 하나?
“그렇다. 신도시는 지방 중심으로 만들되 양질의 일자리를 함께 유치해야 한다. 기업이나 개발사업자, 투자자가 지방으로 갈 수 있도록 세금 혜택 등 인센티브를 주고 지방 이전 기업 종사자에게 주택 특별공급 혜택을 줘야 한다. 최소 거주기간을 정한 뒤 파격적 세금 혜택을 주고 도중에 집을 팔 경우 이익을 일부 환수하면 된다. 예를 들어 미국은 ‘기회특구’(OZ)에 입주하는 기업에게 모든 사업에 대해 10년 간 양도소득세를 면제한다. OZ펀드를 만들어 공동주택 건설에 투자하기도 한다. 투자자는 투자금을 10년 간 유지하면 수익률의 23%까지 세금을 깎아준다.”
―도심 주택 공급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재개발‧재건축 인허가 과정을 간소화해야 한다. 인허가 장기화는 시의적절한 주택 공급을 어렵게 하고, 사업성도 악화시킨다. 현재 서울시 기준으로 재개발‧재건축 인허가 과정에서 20개 이상 부서 협의를 거쳐야 한다. 법정 절차가 아닌 경우도 많다. 예컨대 서울시의 정비사업 자문 절차가 대표적이다. 도입 취지는 사업성을 미리 판단해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자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이 절차가 사업기간만 2~3개월 지연시키는 장애물이 됐다. 인허가 협의를 한참 진행했는데 갑자기 담당자가 바뀌거나 결정권자가 내용을 뒤집어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주택인허가 전담기관을 만들어 인허가관련 협의 부서 담당자와 사업자를 한데 모아 협의하고 일괄 인허가를 내면 불필요한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
―새 정부가 1기 신도시 재건축 규제 완화를 고민 중인데, 어떻게 평가하나.
“획기적인 주택 공급을 위해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 최근 인수위원회에서 ‘도시혁신계획구역’을 만들어 규제없는 자유로운 개발을 허용한다고 하는데, 이를 신도시에 적용하면 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선거 때 공약했던 용적률 500%는 무리가 있다. 지금 동간 간격을 유지하면서 용적률 500%를 채우면 층수가 50층 정도 된다. 모든 아파트를 이렇게 지으면 아파트 밀림처럼 변한다. 인프라가 잘 갖춰진 역세권 등에 제한적으로만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또 다른 제언이 있다면?
“국토부가 아닌 주택공급 전담부서(가칭 주택청)를 따로 만들어 꾸준한 공급이 가능하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특히 주택 공급에만 매몰하지 말고 장기적 관점에서 도시를 계획해야 한다. 지금은 주택이 부족하다고 하는데 당장 재건축이나 재개발을 시작해도 실제 입주가 이뤄지는 것은 10년 뒤다. 그 때도 주택이 그만큼 필요할지는 우리나라의 산업구조와 인구변화, 인근 도시와의 관계 등을 면밀히 따져봐야 예측할 수 있다. 실무와 이론을 두루 갖춘 도시계획기술사를 주택 공급 대상지의 입지 선정 때부터 참여시켜서 제대로 된 도시계획을 하면 좋겠다. 산업이나 교육 등 도시를 구성하는 각 분야 전문가도 도시계획 수립 단계에 참여시켜 도시·건축·산업을 통합 계획할 필요가 있다.” /장귀용 땅집고 기자 jim33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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