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5.20 10:33 | 수정 : 2022.05.23 23:36
[땅집고] 지난 3일 찾은 서울 지하철 1호선 용산역. 역사 인근에는 고층 아파트와 주상복합이 빼곡하지만, 5분 정도 걸어 이면도로로 들어가면 벽돌로 지은 낡은 단독주택과 상가가 줄줄이 늘어서 있다. 그런데 이 중 유독 눈길을 끄는 지상 4층짜리 건물이 있다. 붉은 벽돌로 마감한 것은 주변 주택·상가와 별 차이 없지만, 1층 일부 공간이 뻥 뚫려 있는 것. 각 층 창문과 출입구 쪽 반원형 캐노피를 철제로 장식한 것도 벽돌과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에 있는 이 사옥은 ‘스튜디오승호’의 이승호 소장과 백종웅 소장이 함께 설계·시공했다. 원래 이 건물은 대지면적 165㎡(50평), 연면적 359㎡(109평), 지하1층~지상4층 규모로 1987년 준공했다. 홍보 마케팅 에이전시 ‘더스프링컴퍼니’가 50억원에 매입해 사옥용으로 재탄생시킨 것. 기존 건물주가 지상 1~2층은 근린생활시설, 지하 1층과 지상 3~4층은 주거용으로 각각 쓰고 있었는데, 모든 층을 근린생활시설로 용도변경해 사무실로 활용한다.
이승호 소장은 이 사옥 리모델링에 대해 “3개월 안에 설계부터 시공까지 끝내야 했던, 다시 생각해도 ‘극한의 프로젝트’였다”고 회상했다. 당초 더스프링컴퍼니가 인근 ‘용산 아스테리움’ 주상복합 내 상가를 월세 1300만원에 사무실로 쓰고 있었는데, 상가 임대차계약이 끝나기까지 주어진 시간이 3~4개월 정도로 촉박했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지난해 6월 더스프링컴퍼니와 건축 설계·시공 계약을 맺고, 한 달 동안 설계한 후 8월에 리모델링을 마쳤다”며 “건축설계비를 포함해 감리·공사비까지 모두 2억9000만원이라, 평당 250만원꼴로 저렴한 축이었다. 정해진 예산 안에서 건물을 재생하되, 건물 내부 공간별 디자인 및 기능을 살리면서, 3개월 안에 모든 작업을 끝내야 했던 프로젝트여서 의미 깊다”고 했다.
■ 붉은 벽돌과 아연도금강판 외관으로 오묘한 조화
이 건물은 리모델링 결정 당시 준공 36년째였다. 워낙 낡아 단열·방수 문제가 심각했고, 곳곳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 대대적인 수리가 필요했다. 다만 건축주인 더스프링컴퍼니 측이 3개월 뒤 이 건물에 입주하기를 원해, 신축이나 대수선보다 공기가 짧은 리모델링을 선택했다.
건물 외관 붉은 벽돌도 교체하지 않기로 했다. 외장재를 건드릴 경우 지자체에 대수선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허가가 떨어지기까지 한 달 이상 걸리기 때문이다. 한강로3가 일대에 낡은 벽돌 건물이 많은 점을 고려하면 사옥이 리모델링을 마친 후에도 지역 분위기와 잘 어우러질 것이라는 판단도 있었다.
각 층 창문과 건물 출입구 캐노피에는 아연도금강판을 썼다. 통상 주방 싱크대에 쓰는 서스(Sus)나 알루미늄 대비 단가가 저렴하면서, 다른 금속보다 덜 반짝여 빛이 반사돼도 부담스럽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이 소장은 “아연도금강판의 경우 금속인데도 녹슬지 않고, 시간이 지나면 건물과 함께 무르익는 성질이 있다”고 했다.
건물에 아연도금강판을 쓴 이유가 또 있다. 최근 건축업계에서 근린생활시설 사무실 층고로 3.2~3.5m를 확보하는 추세인데, 한강로3가 건물은 최소 층고가 2.7m 정도로 낮았기 때문이다. 이 소장은 “아연도금강판에는 창 밖 나무나 하늘이 비치면서 건물 안팎 경계가 사라져 공간이 더 넓어 보이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며 “건축적으로 ‘물성이 사라진다’고 표현한다”고 했다.
■내부 공간
37년 된 낡은 건물인 만큼 단열·방수 등 내부 기능을 원상복구하는 것도 중요했다. 이 소장은 상가로 쓰던 1~2층은 기존 바닥 벽을 재생시켰고, 주거용인 3층은 바닥 난방을 걷어내 최소 10~15cm 정도 층고를 더 확보했다. 특히 지하 공간 단열과 방수에 신경썼다. 이 소장은 “지하의 경우 벽에 비닐을 하나 씌운 뒤, 시멘트 블록으로 ‘공간 벽’을 쌓아 벽을 마감했다”며 “바닥에는 물이 빠지는 배수판을 깔고 그 위에 콘크리트를 타설하면 누수를 막을 수 있다”고 했다.
현재 사옥 층별 용도는 ▲지하 1층 창고 ▲지상 1층 주차장 겸 회의실 ▲2~3층 직원 사무공간 ▲4층 대표실 등이다.
이 중 사옥의 ‘시그니처’로 꼽히는 곳은 1층 주차장 겸 회의실이다. 당초 주차장으로만 쓰던 공간이었는데, 대표와 직원들이 주차할 일이 거의 없는 점,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어 손님이 상층부 회의실까지 계단으로 오르기 힘든 점을 고려해 주차장을 회의실 겸용으로 만든 것이다.
회의실에 놓인 책상을 천장과 케이블로 연결해, 스위치만 누르면 책상을 위아래로 이동시킬 수 있다. 즉 책상을 땅에 놓으면 회의실로, 천장으로 들어올리면 주차장으로 쓸 수 있는 셈이다. 책상 상판을 아크릴로 만들었기 때문에 천장 조명 빛이 책상을 투과해 밤에도 주차장이 환하다.
이 소장은 “1층에 위아래로 움직이는 책상을 설치한 이유는 주차장으로만 쓰이는 공간을 다목적공간으로 쓸 수 있게 하려던 목적도 있지만, 더스프링컴퍼니 직원 90%가 여성인 점을 고려해 회의 때마다 책상을 무겁게 나르는 일이 없도록 한 것”이라고 했다.
지상층 내부 공간은 밝은 화이트톤으로 마감했다. 직원들이 일하는 3층에는 예전 건물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천장에 있는 낡은 보를 그대로 뒀다. 회의실은 창문 쪽으로 배치해 직원들이 업무 중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도록 했다. 꼭대기인 4층은 테라스가 딸린 대표실이다.
지상 사무공간을 밝은 흰색으로 마감한 반면, 화장실 벽은 검은색이라 마치 어두운 동굴같다. 직원들이 화장실에서만큼은 편하게 쉴 수 있도록 어두운 자재를 쓴 것이다. 벽 마감재는 ‘스토’다. 통상 건물 마감재나 외장재로 쓰이는 자재인데, 벽에 바른 후 롤러로 밀면서 질감을 살리는 식으로 시공한다. 하루 만에 굳어 시공 시간이 짧으면서 편리하고, 타일과 달리 작업자를 따로 고용할 필요가 없어 인건비를 절약할 수도 있다.
이 소장은 “리모델링 작업은 신축에 비해 작업상 까다로운 점이 많다. 인간으로 치면 내장과 핏줄을 전부 제거한 뒤 다시 만드는 작업인데, 노후 건물의 경우 도면이 완벽하지 않아 아무리 설계안을 잘 짜둬도 건물을 철거한 후에야 발견 가능한 부분들이 있다”면서 “하지만 건축물 생애 주기를 늘릴 수 있어 건축가로서 역할에 부합한 작업이다. 최근 공사비가 많이 올라 건축주 입장에서 신축 대비 공사비를 줄일 수 있어 이득”이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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