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5.11 11:06 | 수정 : 2022.05.11 17:06
[땅집고] 현대건설이 야심차게 추진했던 ‘호텔 부지 개발 사업’이 예상치 못한 반발에 직면해 좌초 위기에 처했다.
현대건설은 3~4년 전부터 도심 호텔 부지를 매입, 철거한 뒤 주상복합 아파트나 주거형 오피스텔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이 호텔이 대부분 지역 랜드마크여서 지역 사회 반발이 적지 않다. 서울 중구 남산 자락에 있는 힐튼호텔은 역사·건축적 가치 훼손 논란까지 일고 있다. 문제는 도심 호텔 부지는 워낙 땅값이 비싸기 때문에 아파트나 오피스텔 같은 분양 사업을 하지 않고서는 수익성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1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건설은 지난해 호텔 3곳을 매입해 주거형 오피스텔을 짓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매입 계약 완료 후 5개월이 지났지만, 철거 시기와 신축 건물 규모 등을 전혀 정하지 못해 사실상 사업이 중단된 상황이다.
현대건설이 매입한 호텔은 ▲서울 중구 남대문5가 ‘밀레니엄힐튼호텔’ ▲강남구 역삼동 ‘르메르디앙호텔’ ▲용산구 이태원동 ‘크라운호텔’이다. 현대건설은 해당 호텔을 자산운용사 등과 컨소시엄으로 매입했다. 부지 매입 전 사업계획은 완료돼 있어 통상적으로 대금 지급이 끝나면 곧바로 인허가 절차를 진행한다.
하지만, 땅집고 취재결과 3개 호텔 관할 지자체인 서울 중구·강남구·용산구청에는 호텔 철거나 부지 개발과 관련한 사업계획이 접수되지 않았다. 현재 금융비용만 계속 발생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현대건설이 매입한 호텔들은 준공 40년을 넘겨 ‘역사성’을 갖춘 건축물이다. 르메르디앙호텔(당시 남서울호텔)과 크라운호텔은 1980년, 밀레니엄힐튼은 1983년에 각각 준공했다. 밀레니엄힐튼은 대우건설이 시행·시공한 건물로 한국 현대건축 거장인 김종성 건축가가 설계했다.
역사성이 있는 호텔을 부수고 오피스텔을 짓겠다고 하자, 건축계는 물론 지역 주민도 반대가 심하다. 지자체도 사업에 부정적이다. 호텔을 허물고 주거용 오피스텔을 지으면 세수와 일자리가 줄어 지자체 입장에선 득보다 실이 많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역사적인 호텔은 지역에선 상징적인 의미도 있고, 호텔 대신 주상복합 등이 들어서면 예상치 못한 교통 문제도 발생한다”며 “지역 여론을 신경써야 하는 지자체가 무조건 허가를 내주기 힘든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서울시도 사업에 부정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 관계자는 “현대건설이 매입한 호텔 부지는 상업지역으로 정비계획상 레지던스와 같은 숙박시설이나 업무용 오피스텔을 지을 수는 있다”면서 “오피스텔을 짓더라도 최근 유행하는 주거형 오피스텔이 주 용도가 될 경우 문제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현대건설은 주거시설만 지으려는 계획을 변경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전체를 주거용 오피스텔을 개발하는 대신 일부를 호텔과 레지던스로 지어 고용을 승계하고, 일부는 주거형 오피스텔로 분양해 사업성을 확보하는 방안이다. 현대건설 관계자는 “밀레니엄힐튼 노조가 오피스텔만 짓지 말고 호텔이나 상가를 지어서 고용을 승계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며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지만 사업 계획을 확정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업성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것. 현대건설과 이지스자산운용은 지난해 밀레니엄힐튼 매입에 1조1000억원을 지출했다. 지난달 서울 중구에서 분양한 오피스텔 '힐스테이트 세운 센트럴' 전용 59㎡가 9억~10억원에 분양했는데 단순 계산으로 이같은 오피스텔 1200실 정도를 분양해야 부지 매입비를 겨우 충당할 수 있다.
여기에 최근 원자재값·인건비 상승으로 공사비가 급증한 점을 감안할 경우 자칫했다가는 ‘밑지는 장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 고준석 제이에듀투자자문 대표는 “일부 시설을 호텔로 전환하면 당연히 수익성은 떨어진다”면서 “호텔은 초기 투자비가 큰 반면 주거시설 분양보다 수익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현대건설은 주거시설 개발 반대 여론을 누그러뜨리고, 지자체도 설득해야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현대건설은 밀레니엄 힐튼 부지에 수직이착륙 비행체인 우암(UAM·Urban Airport Mobility) 이착륙장 건설 등 KTX 서울역과 연계한 도심 교통 요충지로 만들겠다는 계획도 공개했다. 업계 관계자는 “사업계획도 확정되지 않은 부지에 이런 시설을 넣겠다는 구상을 밝힌 것은 결국 주거시설 개발 반발 여론을 해소하기 위한 것이겠지만, 계획대로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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