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4.22 14:22 | 수정 : 2022.04.22 15:47
[땅집고] “명함에 공인중개사 자격증 번호가 찍혀 있으니 당연히 공인중개사인 줄 알았죠. 피 같은 전세 보증금을 이렇게 허무하게 날리다니 너무 어이없고 억울합니다.”
서울 성북구에 거주하는 김모씨는 지난해 중개보조원에게 전세보증금을 떼이는 황당한 사기를 당했다. 김씨는 작년 9월 성북구에서 전셋집을 알아보다가 ‘D공인중개사사무소(부동산) 이사’인 조모씨를 통해 전세 계약을 맺었다. 조씨가 건넨 명함에는 이사 직함과 함께 공인중개사 자격증 번호가 찍혀 있었다.
김씨는 성북구에서 오래 영업한 부동산중개업체라는 점을 믿고 조씨가 불러준 계좌로 가계약금(전세금의 10%) 3000만원을 보냈다. 당시 김씨가 살고 있던 집은 새 세입자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김씨가 새로 구한 집이 마음에 들어 급한대로 가계약금을 송금한 것. 그런데 명확하지 않은 사유로 지난 1월 가계약이 일방적으로 취소됐다. 취소 과정에서 김씨는 조씨가 공인중개사가 아닌 중개보조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명함에 적혀 있던 자격증 번호도 확인해보니 본인이 아닌 D부동산 대표의 자격증이었다.
김씨가 계약금을 돌려달라고 요구하자, 조씨는 계약금을 본인 사업 투자금으로 사용했다고 실토했다. 석 달이 넘도록 돈을 돌려받지 못한 김씨는 성북경찰서에 조씨를 고소했다. 현재는 민사소송을 진행하려고 법무사 상담을 진행 중이다.
자격증이 없는 중개보조원에 의한 중개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 3년간 중개보조원에 의해 일어난 사기·횡령 등 범죄가 전체 사고 129건 중 81건으로, 62.8%에 달한다. 공인중개사협회에 공식적으로 등록된 중개보조원은 7만1000명에 달한다. 협회에 등록하지 않고 영업 중인 중개보조원까지 포함하면 9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중개보조원은 별도 자격요건 등을 제한하고 있지 않다.
중개보조원은 일정 시간 교육 이수 외에 특별한 자격요건이 없다. 공인중개사법에 따르면 개업 공인중개사는 보증보험 공제 등을 통해 손해배상 보장금액을 개인의 경우 최소 1억원, 법인은 2억원을 보장한다. 그러나 보조원은 중개사고를 일으켰을 때 소비자가 보장 받을 수 있는 안전장치가 거의 없다. 원래 보조원 사고는 대표가 책임져야 하는데 등록되지 않은 보조원에게 중개 사고를 당했을 때는 최소한의 보장도 하지 않는다.
사고가 끊이지 않고 있지만 정부와 국회는 손을 놓고 있다. 그나마 보조원 숫자 제한과 고지 의무에 대한 법안이 작년 초 국회에 올라갔지만 아직 국토교통위원회 소위 문턱도 못 넘었다. 공인중개사협회 관계자는 “오래 전부터 중개보조원 수 제한, 보조원 교육제도 강화, 개업 공인중개사보 제도 도입 등을 정부와 국회에 건의했지만 답이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거래 시장에서 중개보조원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고, 소비자 입장에서 중개사와 중개보조원을 구분하기도 힘든 현실을 고려하면 최소한의 안전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부동산 거래 때 발생하는 손해를 보전해 주는 ‘보험인 권원보험’이나 결제대금예치제도인 ‘에스크로 제도’가 대안으로 거론되지만, 정부와 국회는 아직 논의조차 하지 않고 있다. 현재로서는 개인이 꼼꼼하게 확인하는 것이 유일한 방안이다.
엄정숙 부동산 전문변호사(법도종합법률사무소)는 “중개보조원에 의해 사고가 나면 소비자 입장에선 손해배상소송 말고는 방법이 없다”며 “가계약을 진행할 때도 계약 당사자를 확인할 수 있도록 대면계약을 원칙으로 하고, 최소한 전화라도 해서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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