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4.22 03:01
[땅집고] 지난해 6월 경기 연천군에서 분양한 ‘e편한세상 연천 웰스하임’. 연천에 처음으로 들어서는 1군 건설사의 브랜드 아파트로 연천과 철원, 동두천 등 경기 북부 주택 수요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이 단지는 전체 세대수가 ‘499가구’다. 예비 청약자들은 가구 수가 499인 것에 대해 궁금증을 쏟아냈다. “500가구로 분양하려다 한 채를 빼먹은 건가” “500가구로 지으려고 했는데 못 지은 이유가 있지 않을까”하는 등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분양 시장에서 500가구에서 한 채를 뺀 499가구에 분양하는 아파트가 종종 등장하고 있다. 최근 3년간 분양한 아파트 중에는 연천 ‘e편한세상 연천 웰스하임’을 비롯해 ▲서울 ‘역삼 센트럴 아이파크’, ▲평택 ‘평택역 경남아너스빌 디아트’, ▲인천 ‘영종국제도시 화성파크드림 2차’ 등이 모두 499가구다.
이 단지들이 가구수를 ‘499채’로 맞춘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 499가구로 짓는 이유는 ‘주택성능 등급표시제도’ 때문이다. 주택법에 따르면 500가구 이상의 주택을 건설·공급하는 건설사는 입주자 모집공고에 소음·구조·생활환경·화재 및 소방 등 5개분야 56개 세부항목에 대한 등급을 표시해야 한다. ‘주택성능 등급표시제도’라고 불리는 이 제도는 주택사업자로 하여금 주택을 공급할 때 공동주택의 품질을 높이고 입주자에게 정확한 주택정보를 전달하라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이 제도가 실시된 2006년에는 단지 규모가 2000가구 이상인 곳에 규제가 적용됐다가 2019년 500가구까지 적용 기준이 내려왔다. 2019년부터는 성적표를 모집공고 내에서도 눈에 잘 띄는 곳에 표시하로록 하는 규정도 생겼다.
분양마진을 높이려는 건설사들 입장에서는 이 제도가 사업성을 올리는데 마이너스 요인이다. 주택성능 등급표시제도는 쉽게 말해 ‘아파트 품질 성적표’를 일반에게 공개하는 것인데, 입주예정자협의회 등에서 이를 근거로 시공 품질을 상향해달라는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품질을 높이려면 공사비가 더 들어간다. 경기도 외곽이나 지방에 분양하는 아파트는 분양가격 경쟁력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에 품질 향상을 이유로 공사비를 계속 증액하기도 더 어렵다.
그 결과 건설사들은 설계상 분양 가구 수가 500가구 안팎이면 아예 가구당 면적을 넓히고, 가구 수를 499가구로 줄이는 전략을 선택하기 시작했다. 대신 늘어난 면적만큼 가구당 분양가를 소폭 높여 분양수익을 유지하는 전략이다.
주택 시장에 1000가구가 아닌 999가구짜리 단지가 등장하는 이유도 이와 비슷하다. 이미 준공된 단지 중에는 ▲하남 ‘하남 호반써밋 에듀파크’ ▲화성 ‘신동탄 롯데캐슬 나노시티’, ▲경북 칠곡 ‘칠곡북삼서희스타힐스’ 등이 999가구로 지은 사례다.
주택법상 10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을 짓는 건설사는 장수명주택 인증등급이 ‘일반등급’ 이상이어야한다. 일반등급은 내구성·가변성·수리 용이성 부문에서 받은 점수의 총합이 100점 만점에 50점 이상인 경우다. 60점 이상은 ‘양호’, 70점 이상은 ‘우수’, 90점 이상은 ‘최우수’로 분류된다.
이를 위해 건설사는 내부 내력벽을 줄이고 내부 벽 면적 중 구조변경이 쉬운 건식벽(석고보드를 활용해 조립하는 벽)의 비율을 높여 사용자가 이동 설치 및 변형이 가능토록 설계해야 한다. 사용 중에 개·보수 및 점검이 쉽도록 공용 배관과 전용 설비 공간을 따로 설치해야하는 조건도 있다. 우수·최우수 등급의 장수명주택을 건설하려면 기존 주택보다 최대 20%가량 비싼 건축비를 투입해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똑같은 아파트를 지어서 분양하는 건설사 입장에서는 비용 대비 이렇다할 이점이 없어 가구수를 줄이고 평면크기를 넓히는 ‘꼼수’가 등장한 배경으로 꼽힌다. 한 부동산 개발업계 관계자는 “장수명주택으로 지었을 때 정부가 제공하는 인센티브보다 품질 개선을 위해 추가로 지출해야 하는 공사비가 더 큰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장수명주택, 고성능 주택 개념은 바람직하나 국토부가 정한 기본형 주택 건축비 내에선 모범적인 고품질 장수명 주택 구현이 사실상 불가능할 때도 있다”며 “현실적으로 비용이 많이들면 분양가가 올라가서 건설사들이 이를 따르기가 쉽지 않고, 소비자들도 주택 품질보다는 브랜드 가치 등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99’ 가구 분양이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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