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4.05 07:33
[땅집고] 서울 강남과 경기 성남 판교신도시에 몰렸던 기업들이 최근 광화문·을지로·을지로 등 강북에 속속 둥지를 틀고 있어 주목된다. 코로나19 사태 기간에도 기업 성장세가 이어지면서 강남·판교는 빈 사무실이 없고 임대료도 치솟은 탓이다. 강남 오피스 구하기에 지친 기업들이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넓은 공간을 찾아 강북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5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최근 강남과 판교 등지에 있던 기업 중 상당수가 광화문·을지로·성수 등 강북 오피스로 본사를 이전하거나 이전을 계획 중이다. 강남이나 판교 벗어나는 것을 극도로 꺼렸던 게임 등 IT(정보기술) 업체와 명품 회사도 이동을 결정하면서 이목을 끌고 있다.
게임업계에서는 대형사들이 본사 이전을 확정했다. 모바일 게임업체 ‘컴투스그룹’은 서울시 중구에 대지 1만여㎡, 연면적 10만㎡ 이상 신사옥을 2026년까지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구로 가산디지털단지에 있는 본사와 강남 일대에 있던 자회사 위지윅 스튜디오 등에 퍼져있는 2500여명의 그룹사 인력을 한데 모으겠다는 전략이다. 지난해에는 배틀그라운드 개발 회사로 알려진 게임회사 ‘크래프톤’이 성동구 성수동 이마트 본사 건물(연면적 9만9000㎡)을 매입했다. 크래프톤은 해당 부지를 사옥을 포함한 복합빌딩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고소득층을 겨냥해 성장했던 패션업계에도 탈(脫) 강남 현상이 나타난다. 무신사는 성수동1가 3300㎡ 부지를 매입해 현재 사옥을 짓고 있다. 패션 안경 브랜드 젠틀몬스터도 성수동에 1만8000여㎡ 부지를 매입해 사옥을 올리고 있다. 명품 패션 브랜드인 발렌티노코리아는 2014년 한국 진출 이후 본사를 청담동에 뒀지만, 2020년 중구 공평동 센트로폴리스로 이전했다. BTS(방탄소년단)의 소속사로 유명한 엔터테인먼트 기업 하이브도 지난 3월 강남구 대치동에서 용산으로 사옥을 이전했다. 상업용 부동산 전문 컨설팅 회사인 비티지(BTG)컨설팅 정을룡 대표는 “성수동은 패션, 게임, 엔터테인먼트 기업이 이미 2~3년 전부터 모이기 시작했고 지역 자체가 트렌디한 경향이 강해 강남·판교 기업들이 선호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기업들이 강남과 판교를 떠나는 가장 큰 이유는 치솟는 임대료 때문이다. 부동산서비스기업 JLL코리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 연면적 3만㎡ 이상 강남 오피스 월 평균 실질 임대료는 3.3㎡당 11만3600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년 동기(10만3500원) 대비 1만100원 정도 올랏다. 그럼에도 강남권에서는 공실을 찾기 힘든 상태다.
상업용 부동산 데이터 기업 알스퀘어에 따르면 강남 오피스 공실률은 지난해 4분기 8.3%, 판교는 2018년 2분기부터 2021년 4분기까지 0%다. 기업 입장에서는 강남과 판교에 머무르려면 빈 사무실을 찾아 인력을 분산시킬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
강남보다 넓은 부지를 확보할 수 있고, 직접 부지를 매입해 부동산 가치 상승을 노릴 수 있다는 것도 기업들이 강북 등지로 이동하는 주요 배경으로 꼽힌다. 실제로 성수동은 준공업지역이라 용적률 400%를 적용받아 일반상업지인 강남보다 연면적을 더 많이 확보할 수 있다. 최근에는 서울시의 ‘35층 룰’ 규제 철폐로 개발 기대감도 높아지는 상황이다.
기업들이 강북으로 이동하는 또 다른 이유는 굳이 강남을 고집할 이유가 줄었기 때문이다. 기업이 본사를 옮길 때 중요한 요인으로 보는 것 중 하나는 ‘인력 채용 수월성’이다. 성수나 을지로는 교통 편의성은 물론 젊은층들이 선호하는 트렌디한 상권이 밀집해 채용에 불리할 것이 없다고 기업들이 보고 있다.
강북 부동산 가격도 급등했지만 강남·판교보다 더 오를 여력이 있어 투자가치도 있다고 기업들은 평가한다. 무신사 관계자는 “이전부터 무신사 스토어는 가로수길이나 압구정처럼 패션과 잘 어울리는 상징성 있는 거리를 중심으로 사무실을 운영했다”며 “성수동은 소비 인구 연령이 낮고 패션과 트렌드 중심지로 부상하고 있어 미래의 고객이 있다고 생각에 사옥을 옮기기로 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기업의 강북 진출 현상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임양래 탑빌딩 대표는 “강남 오피스는 대부분 완공 20년이 지나면서 노후화하고 새로 지을 땅도 없다”며 “사옥을 보유하려는 기업은 광화문·을지로·성수 등지를 대안으로 선택한다”고 말했다.
오동협 빌딩로드 대표는 “기업 입장에서 강남은 여전히 최고 입지를 갖춘 곳으로 남아 있다”며 “다만 투자나 임대료 절감을 위한 전략적인 차원에서 강북을 선택하는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전현희 땅집고 기자 imh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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