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3.18 04:09
[땅집고] “주변 아파트 조망권 도둑질하는 도둑놈은 물러가라! 신축 반대!”
지난 17일 찾은 서울 마포구 신정동. 강변북로가 지나는 한강변을 끼고 1999년 입주한 ‘서강GS아파트’(538가구)와 2004년 준공한 ‘마포강변힐스테이트’(510가구)가 들어서 있다. 거실 창으로 한강을 훤히 내려다 볼 수 있는 ‘한강뷰’ 아파트다. 이달 34평(전용 84㎡) 기준 최고 실거래가는 각각 13억8000만원, 16억3000만원이다.
그런데 최근 두 아파트 담벼락에 살벌한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내걸렸다. ‘주변 아파트 조망권 빼앗는 신정동 66-2번지 신축 결사 반대!’, ‘주민 민원 외면하고 건설업자 배불리는 마포구청은 각성하라!’ 등 문구가 적혀 있다. 노란색·빨간색 등 원색으로 제작돼 눈길을 확 끈다.
땅집고 취재 결과 입주민들이 집단행동에 나선 이유는 두 단지 보다 한강변에 가까운 부지(마포구 신정동 66-2)에 고층 주거용 건물 신축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부지에 고층 건물이 들어서면 기존 아파트가 확보하고 있던 한강뷰는 사실상 기대하기 어렵다.
지난 20년 넘게 이 공터에는 낡은 단층 건물만 있었다. 그런데 경기 광주시 소재 부동산 개발업체인 A사가 2020년 8월 이 땅을 147억6200여만원에 매입한 뒤, 기존 건물을 철거하고 지하 3층~지상 15층 총 19가구짜리 고급 아파트를 개발할 계획을 세웠다. 전용면적별로 ▲84㎡(31.6평) 9가구 ▲178㎡(66.8평) 5가구 ▲181㎡(67.7평) 5가구 등이다.
A사가 제출한 이 같은 건축계획안은 지난해 10월 열린 제 9차 마포구 건축위원회 심의를 조건부로 통과했다. 마포구청 건축과는 아파트 층별 층고를 기존 3.6m에서 3.3m로 하향 조정하라는 조건을 달았다. 통상 공동주택 층고가 2.5m인 점을 감안하면, 이 아파트 층고는 월등하게 높다. 15층으로 짓더라도 실제 높이는 22층 아파트와 비슷하다.
이 아파트가 들어선다면 현재 한강 조망이 가능한 ‘서강GS아파트’와 ‘마포강변힐스테이트’ 일부 가구는 조망권을 잃게 된다. 이 때문에 두 아파트 입주민들은 현수막을 내걸고 마포구청과 마포구의회 홈페이지에 ‘민원 폭탄’을 쏟아내며 강력하게 반발하고 있다.
입주민 이모씨는 마포구의회 홈페이지 ‘의회에 바란다’ 게시판에 “한강 조망 아파트를 사기 위해 높은 비용을 지불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일조권과 조망권을 모두 빼앗긴다는 생각에 어처구니가 없고 허탈하기만 하다”는 글을 남겼다. 두 아파트 입주민들은 해당 부지가 ‘역사문화특화경관지구’에 해당해 건물 높이를 최고 4~6층으로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하고 있다.
하지만 마포구청은 해당 부지가 역사문화특화경관지구여도 땅 전체가 아니라 한강변에 길쭉하게 붙은 45% 정도만 해당해 나머지 부지에는 고층 건물을 지을 수 있다고 했다. 토지를 보유한 A사도 역사문화특화경관지구가 아닌 토지(전체 부지의 55%)에 건물을 짓는 계획안을 제출했다.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이다. 애초부터 두 아파트가 보유하고 있던 한강 조망권은 한시적으로 누리는 것일 뿐 언제라도 사라질 수 있는 상황이었던 셈이다.
다만 이 부지에 새 아파트가 당장 들어서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올 초 A사는 이 부지를 346억원에 매물로 내놨다. 2년 전 매입가(약 147억원) 대비 2.35배 높다. 이 회사의 박모 대표는 땅집고와 가진 통화에서 “부지 매각 이유를 구체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인근 아파트 입주민들과의 갈등 때문은 아니다”고 말했다. 마포구청 건축과 관계자도 “건축 심의까지는 통과했지만 아직 착공 신고가 들어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같은 ‘한강뷰 쟁탈전’을 접한 네티즌들 시선은 곱지 않다. 두 단지는 입주 후 20년 넘게 한강 조망을 독차지했는데 건축법상 아무 문제 없는 새 아파트 건축 심의를 취소하라는 건 전형적인 이기주의 아니냐는 것. 특히 일부 입주민들이 ‘마포구청이 신정동 66-2번지를 세금으로 매입해 마포구 주민들을 위한 공공시설을 지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내놓으면서 비난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땅 주인에게 위법사항이 있다면 모를까,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기 땅에 합법적 건물을 짓는 것을 뭐라고 할 수는 없지 않냐. 정당한 재산권 행사로 보인다”, “본인 아파트 뷰를 가린다고 이러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적당히 하시길”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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