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2.03.03 07:23
[땅집고] “와, 강남 한복판 아파트에 기관총 포대가 있다구요? 우리나라가 휴전 국가라는게 실감나네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로 전쟁 공포증이 확산되는 가운데 우리나라에 숨어 있는 각종 전쟁용 시설이 온라인상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고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인 1970년대는 전후(戰後) 주택난 해소를 위해 아파트를 대규모로 지었다. 당시 박 대통령은 ‘싸우며 건설하자’는 슬로건을 내걸고 서울을 요새로 만들기 시작했다. 서울 도시 전체를 하나의 거대한 군사 기지로 만든다는 구상이다. 1968년 김신조 사태, 울진·삼척 무장공비 침투 등 잇따른 북한 침투로 남북 군사 긴장이 최고조에 달하면서다. 이에 서울에 새로 짓는 아파트나 고층 건물, 도로, 터널 등에는 전쟁 시 군사 작전 수행을 위한 역할이 주어졌다.
실제로 당시 지은 강남 일대 고가 민영아파트에는 기관총 포대가 설치돼 있다.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 8차와 한양 4차, 청담동 삼익아파트가 대표적이다. 이 아파트 단지의 한강변 동(棟)에는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바로 총안(銃眼)이다. 총안은 전시가 되면 기관총 사격을 하기 위한 기관총 거치대를 뜻한다.
한강변에 있는 오래된 주공아파트 단지에도 일반인은 잘 모르는 전시 대비 역할이 숨어있다. 바로 대부분 아파트가 한강을 향해 복도가 배치돼 있다는 것. 언뜻 한강뷰를 염두에 둔 설계 같지만 사실 북한군의 한강 남하에 대비한 것이다. 전쟁이 터지면 강을 건너는 적을 감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강을 바라보도록 했다. 당시 강남이 우리나라 핵심 지역으로 급부상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강남은 넓고 깊은 한강에 둘러싸여 있어 북한군이 접근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는 후문이다.
한강변이 아닌 곳에 지은 아파트 단지도 서울 요새화 작업에 동원됐다. 1970년 준공한 서대문구 유진상가(맨션)와 도봉구 도봉시민아파트가 요새화된 최초 아파트 단지로 꼽힌다. 도봉시민아파트는 지금은 철거했다. 두 건물 1층에는 전차가 들어가서 사격할 수 있는 군사시설이 있었다. 준공 당시 두 건물은 서울 외곽에 속했다. 정부는 북한군 전차가 서울 외곽 북서쪽이나 북동쪽을 거쳐 남하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해 두 건물에 ‘서울 최후 방어선’ 역할을 맡겼다.
유진상가는 당시에는 최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오랫동안 서대문구 랜드마크였다. 하지만 유사시 북한군 남침을 대비한 대(對) 전차 방호 목적으로 홍제천을 덮어 설계했다. A·B동이 서로 마주보는 형태다. 지상 1층은 상가, 지상 2~5층은 아파트다.
서울시가 1993년 내부순환도로 건설을 추진하며 유진상가 B동 4~5층을 1994년 철거한 이후 현재는 인왕시장 상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곳으로 변했다. 약 50년간 방치됐던 지하 공간 중 250m를 홍제천이 흐르도록 재설계했다. 이 공간은 예술공간 ‘홍제유연’으로 재탄생했다.
네티즌들은 우리나라가 휴전국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느끼게 됐다는 반응이다. 관련 게시글에 “우크라이나 사태가 남의 일 같지 않다”, “이렇게 많은 군사시설을 보니 우리나라가 휴전국인게 실감난다”, “우리가 휴전 중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등의 반응을 보였다. /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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