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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로가 없다고?"…1950가구 'HUG 아파트' 다 짓고도 텅텅

    입력 : 2021.12.06 07:11 | 수정 : 2021.12.06 09:52

    [땅집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에 조성된 뉴스테이(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 삼가2지구 모습. 지난 3월 이미 공사를 끝냈지만, 단지 앞 도로부지를 소유한 역삼구역이 무기한 연기되면서 도로를 확보하지 못해 준공 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 역삼구역 내 도로부지에는 알박기(사진 상 오른쪽) 주택도 있다. /장귀용 기자

    [땅집고] “저렇게 으리으리한 아파트가 결국은 유령 아파트가 될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나랏돈으로 지은 저렴한 임대 아파트여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 집을 다 짓고도 못 들어가는 난리가 났으니 황당한 일이지요.”

    지난 1일 경기도 용인시청과 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보고 있는 용인시 처인구 삼가2지구. 이곳에는 공사가 다 끝난 대형 아파트 단지가 우뚝 서 있다. 과거 ‘뉴스테이’라고 불렸던 공공지원 민간임대주택이다. 아파트 단지명은 ‘힐스테이트 용인’으로 현대엔지니어링이 시공했다. 용인 처인구에선 보기 힘든 1950가구 규모의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다.

    이 아파트 사업에는 주택도시보증공사(허그·HUG)가 출자와 대출 보증 등으로 5575억원의 공적 자금을 투입했다. 민간 시행사나 시공사가 일부(579억원) 출자를 했지만, 허그가 투입한 돈이 90% 이상이다. 허그 자금은 대부분 ‘주택도시기금’으로 마련하는데, 국민들이 내집마련을 위해 꼬박꼬박 납입하는 청약저축과 국민주택채권 등이 주요 재원이다. 따라서 힐스테이트 용인은 사실상 정부 아파트나 마찬가지다.

    전·월세가 급등한 용인시에 2000가구 규모의 브랜드 임대 아파트가 풀리면 숨통이 트인다. 하자만 이 아파트는 지은 지 9개월이 지나도록 입주자 모집도 못하고 있다. 사업이 중단된 상황이다. 가장 큰 이유는 아파트로 들어가는 진입 도로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대로 몇 년 간 건물을 방치하면 입주자를 받기도 전에 아파트는 흉물이 된다.

    더 큰 문제는 이 사안을 해결하겠다고 나서는 곳이 없다는 점이다. 사실상의 사업주인 국토부·허그는 물론 사업승인을 내준 용인시도 “우리 책임이 아니다”며 외면한다. 용인시 주민 A씨는 “허그나 국토부, 용인시 공무원들이 자기 돈으로 아파트를 지었으면 저렇게 두 손놓고 있을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땅집고] 뉴스테이 삼가2지구(아파트)와 임시도로. 도로 옆 야산이 원래 접근도로로 만들어져야 할 부지다. /네이버지도

    삼가2지구 ‘힐스테이트 용인’ 사업은 공공지원 민간임대사업으로 2016년 시작됐다. 사업의 취지에 따라 의무임대기간 8년 간 임대 후 분양 전환한다. 주변 시세보다 훨씬 저렴한 임대료가 책정돼 무주택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다.

    이미 다 지어놓은 ‘힐스테이트 용인’이 진입로를 확보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이 아파트는 부지는 용인 시청 앞을 지나는 중부대로에서 400m 정도 남쪽에 떨어진 곳에 자리잡고 있다. 중부대로에서 단지로 들어오는 진입로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진입로 땅은 도시개발조합인 ‘역삼지구’ 소유다. 용인시는 2016년 7월 사업승인을 내주면서 당시 사업에 속도를 내고 있던 역삼지구사업도 함께 진행되면 자연스럽게 도로가 생길 것으로 예상하고 이 도로를 힐스테이트 용인 측에서 사용하도록 했다. 역삼지구 사업이 진행되지 않을 경우에는 삼가2지구와 역삼지구 사업자가 ‘협의’해 도로를 개설하도록 하는 조건을 달았다.

    [땅집고] 용인시청, 역삼구역, 삼가2지구 위치도. /장귀용 기자

    문제의 발단은 역삼지구 사업은 속도를 내지 못해 지지부진한 상태에서 삼가2지구만 속도를 내 힐스테이트 용인 공사가 진행되면서 발생했다. 당초 삼가2지구 측은 역삼지구와 협의를 통해 진입로를 확보하는 방안을 세웠었다. 2018년 1월 작성된 합의서에는 역삼지구가 삼가2지구 준공 6개월 전까지 도로를 개설하는 대신 삼가2지구가 도로 개설 비용을 일부 부담하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현재 역삼지구 조합이 내부 갈등에 휩싸이면서 문제가 발생했다. 역삼지구는 합의서 작성 이후에만 조합장과 집행부가 4번이나 바뀌었다. 올해 5월 들어선 역삼지구 현 조합과 집행부는 과거 조합장과 집행부가 삼가지구와 체결한 합의서는 ‘무효’라며 합의서 이행을 거부하고 있다. 진입로 확보는 물건너 갔고, 공사가 끝난 ‘힐스테이트 용인’은 난데없이 진입로가 없는 ‘맹지 아파트’가 돼 버렸다. 역삼지구 측에선 힐스테이트 용인 측이 땅을 매입해 도로를 개설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토지가격이 급등해 땅값만 약 400억원에 달하기 때문에 토지매입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가 추가로 돈을 출자하는 것도 쉽지 않다.

    /장귀용 기자

    결국 멀쩡한 아파트가 유령 아파트가 됐지만, 이 사업의 실질적인 시행자인 국토교통부와 허그는 손을 놓고 있다. 정부의 지시를 받아 돈을 투입한 허그는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HUG 관계자는 “삼가2지구에 투입된 기금은 약정을 통해 내부수익률을 우선적으로 보장 받기 때문에 손실은 없을 것으로 예상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는 허그의 희망사항일 뿐이다. 지금처럼 빈집으로 방치하면 매년 빈집 관리비용과 세금 등으로 매년 6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 갈 것으로 예상된다. 과거 실제로 LH가 경기 성남시 분당구 백현마을 3단지와 4단지(3700가구)를 다 지었다가 분쟁이 발생해 빈집으로 4년간 방치했는데, 당시 빈집 관리 비용으로 나간 비용이 500억원에 달했다. 허그가 투입한 자금에 대한 이자 비용도 시중 금리(4%)로 환산하면 1년에 220억원에 달한다. 해마다 나랏돈 300억원 가량이 허공에서 사라지는 셈이다. 사업이 이대로 방치되다가 무산되면 HUG 가 기대하는 우선 보장 수익도 당연히 사라진다.

    용인시는 최근까지 역삼지구와 힐스테이트 용인 측이 합의하도록 중재를 나섰지만, 현재는 손을 놓은 상황이다. 대형 건설사 관계자는 “용인시가 대단지 아파트를 짓는데 도로 확보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업승인을 내준 것 자체가 상당히 이례적”이라며 “인허가를 내준 이상 용인시가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주택시장의 한 전문가는 “사실상 정부 사업인데 국토부, 허그, 용인시가 ‘면피’에 몰두하며 남의 일처럼 구경만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결국 정부 사업이어서 국토부와 용인시가 나서 해결책을 찾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용인=장귀용 땅집고 기자 jim332@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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