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2.03 07:48 | 수정 : 2021.12.03 08:01
[땅집고] “SH공사 장기미임대주택에 청약 당첨돼 사전점검 갔는데 정말 너무 놀랐습니다. 현관문은 그냥 열려있고, 집 안에 옷가지, 이불, 가스 버너, 강아지 배변패드 등 살림이 널려있더라구요. 빈 집에 누가 이미 살고 있었다는 건데, 대체 관리가 되고 있는게 맞는지….”
지난 11월 1일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낸 장기미임대주택 수시모집 공고를 본 A씨. 주택 목록을 둘러보다 금천구 시흥동의 한 다가구주택(빌라)을 골라 청약 신청했다. 2019년 준공한 신축에 전용 36㎡ 규모로 혼자 살기엔 넉넉한 데다 임대료도 보증금 1539만원에 월세 20만400원으로 저렴한 것이 맘에 들었다.
이 빌라에 당첨된 A씨는 사전점검차 집을 둘러볼 기회를 얻었다. 그런데 SH로부터 안내받은 현관문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들어가려던 A씨는 깜짝 놀랐다. 도어락 건전지가 다 닳은 탓에 문이 그냥 열려있던 것. 놀랄 일은 이뿐만 아니었다. 집 안에 들어가보니 곳곳이 살림살이로 가득 차 있었다. 옷가지, 이불, 가스 버너는 물론이고 강아지 배변패드까지 눈에 들어왔다. A씨가 청약 당첨된 빈 집에 이미 누가 살고 있었던 것.
당황한 A씨는 SH측에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나 SH가 내놓은 답변이 A씨를 더 황당하게 만들었다. ‘옆 집에서 짐을 둔 것인데, 말해두었으니 뺄 것’이라는 대답이다. A씨는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 “옆집 할머니가 사과 한마디도 없이 짐을 빼더라. 집에서 그 할머니가 키우는 강아지도 나왔다. 청소도 안했다”면서 “SH는 ‘짐 뺐으니 됐죠’ 정도로 대처했다. 얼마 남지 않은 연차까지 쓰면서 (사전점검) 왔는데, 진짜 너무 황당하다”는 글을 남겼다.
A씨의 사연을 접한 네티즌들은 “SH는 매입임대주택 관리를 왜 이렇게 허술하게 하느냐, 완전 개판이다”, “무단 침입해서 점거한 것인데도 SH가 태평하게 나오니 어이가 없다”는 반응을 쏟아내고 있다. 한 네티즌은 “나도 매입임대 빌라에 살고 있는데, 이 글을 보고 혹시나 해서 옆집 문을 열어봤더니 진짜 그냥 열렸다”라며 “악심 품은 사람들은 들어가서 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관리가 너무 허술해서 불안한 마음”이라는 후기를 쓰기도 했다.
매년 장기미임대주택 예비입주자들 사이에 “SH가 집 관리를 너무 소홀하게 한다”는 불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집이 오랜 기간 공실로 방치되면서 곳곳에 곰팡이가 피어있는 등 내부 상태가 열악한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A씨가 겪은 사례처럼 기본적인 잠금장치조차 제대로 안 되어있거나, 심하게는 무단침임자가 집을 점거하고 있어 보안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SH는 민간이 보유한 다가구·원룸 주택을 사들인 뒤 무주택 서민에게 시세 30% 임대료로 공급하는 ‘매입임대주택 사업’을 진행 중이다. 이 매입임대주택 중 공가 발생일로부터 6개월 이상 빈 집은 ‘장기미임대주택’으로 분류하고, 소득·자산 기준 등 입주자격을 일부 완화해서 입주자를 모집한다. 이 중 공실 1년 이상 주택에 대해서는 입주자를 수시로 구한다.
SH는 장기미임대주택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 걸까. SH 관계자는 땅집고 통화에서 “서울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눠 센터별로 주택을 관리하고 있다”면서 “아무래도 주택 자체가 너무 많다보니 관리에 허점이 생기기도 한다”고 했다. 예를 들어 A씨가 당첨된 금천구 시흥동 빌라는 서부주거복지처의 구로금천센터에서 관리하는데, 이 센터가 관리하는 임대주택만 1만3000여가구(국민·장기·행복주택 등 포함)에 달한다는 것.
그러나 애초에 입지 등 상품성이 떨어져 장기미임대주택이 된 집을 관리 소홀로 방치하면 입주자를 찾을 확률이 더 낮아지기 때문에 세금 낭비로 이어질 수 있는 셈이다. SH 관계자는 “앞으로 관할센터가 용역 등을 통해 기본적인 보안 문제는 해결할 계획”이라고 했다.
SH는 A씨와 네티즌 비판이 잇따르자, 뒤늦게 A씨가 입주할 주택을 무단 점거한 할머니에 대한 법적 조치 등을 취하기로 했다. SH 관계자는 “할머니가 고령자여서 법적 처분 강도에 대한 검토를 진행 중”이라며 “A씨에게는 SH가 청소와 도배를 다 해주는 조건으로 입주 계약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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