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2.02 07:06 | 수정 : 2021.12.02 15:13
[땅집고] “임대한 지 1년도 안돼 아파트를 조기 매각한다며 10억원을 더 내라고 하네요. 건설사가 불어난 세금을 임차인에게서 보상받겠다는 것 아닌가요?”
호반산업이 2018년 이른바 ‘꼼수 분양’ 논란을 빚으며 위례신도시에 공급했던 민간임대 아파트 ‘위례 호반써밋’(옛 위례 호반가든하임)이 임대 개시 9개월 만에 조기 분양을 결정해 또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입주자(세입자)들은 “분양가격이 임대보증금보다 최대 10억원 정도 높아 도저히 자금을 마련할 수 없다”면서 “결국 나가라는 얘기냐”며 반발하고 있다.
호반산업은 정부가 아파트 임대사업제도를 폐지해 세입자 동의만 있으면 분양 전환이 가능해졌고, 입주자들이 수차례 분양 전환을 요구한데다,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연간 400억원에 달하는 종합부동산세를 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업계에서는 호반산업이 당초 공공분양이 예정됐던 택지를 임대 후 분양으로 바꿔 분양가상한제를 피한 데 이어 정부의 제도 변경을 핑계로 입주 1년도 안돼 조기 분양해 결과적으로 한 채당 4억~5억원씩 더 높은 수익을 챙기게 됐다고 지적한다.
■ “3년 만에 10억 더 내라니”…입주자들 ‘패닉’
경기 하남시 학암동에 지은 ‘위례호반써밋’은 지상 25층 9동, 699가구로 2017년 ‘4년 임대 후 분양’ 방식으로 공급했다. 이 부지는 원래 호반산업이 LH(한국토지주택공사)로부터 3.3㎡(1평)당 740만원에 땅을 사서 공공분양 아파트로 공급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공공 분양을 하게 되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아 수익성이 낮아질 것을 우려해 임대 후 분양 방식으로 변경했다. 당시 업계에서는 분양가상한제를 피하려는 꼼수분양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 아파트는 올 2월 준공해 입주했다.
그런데 호반산업은 입주 9개월여 만인 지난달 입주자들에게 조기 분양 전환하겠다고 통보했다. 호반산업은 “조기 분양을 요구하는 입주자들 뜻에 따른 것으로, 수차례 반대했으나 입주자 협의체가 분양 전환을 요구해 들어준 것”이라며 “법에 따라 조기 분양을 원치 않는 임차인은 임대 계약을 4년 간 유지한 뒤 분양전환할 수 있어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분양전환 가격이다. 호반산업이 제시한 분양가격은 공급면적 기준 ▲101㎡ 12억900만원 ▲109A㎡ 13억700만원 ▲109B㎡ 13억700만원 ▲147㎡T 19억2900만원이다. 분양전환가격은 감정평가를 통해 산출했다. 호반산업은 하남시 학암동 위례신도시 아파트 실거래 시세보다 2억~5억원 저렴하게 책정했다고 주장한다. 실제 학암동 위례신도시 아파트 101㎡ 주택형은 14억~17억원 수준에 거래된다.
임차인들은 2022년 2월까지 이 금액에 분양을 받을지, 임대계약이 끝나는 2025년 2월에 다시 책정된 가격에 분양분양전환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입주민들은 반발하고 있다. 당초 예상보다 분양가격이 터무니없이 높게 책정됐기 때문이다. 한 입주자는 “임대주택으로 분양받을 당시 4년 후 분양전환가격이 보증금보다 2억~3억원 정도 오를 것이란 예상이 많았다”며 “지금 분양받지 않고 4년 후 분양전환받는다면 지금보다 분양가격이 더 오를까봐 걱정”이라고 했다.
실제로 2017년 계약 당시 주택형별 임차 보증금은 ▲101㎡ 6억2000만원(월 임대료 25만원) ▲109A㎡ 6억6000만원(월 임대료 27만원) ▲ 147T 9억9000만원(월 임대료 45만원)이었다. 분양가를 보증금과 비교하면 약 6억~10억원 높다. 호반산업은 “보증금보다 10억원 비싼 테라스 주택형 입주자들은 모두 분양 전환에 긍정적이다”라고 했다.
■ 10년 임대도 임차인에게 불리…민간임대 제도 손봐야
호반산업도 당초 의무임대기간이던 4년을 채우지 않고 갑작스럽게 분양 전환에 나선 점에 대해 할 말은 있다. 정부가 민간주택임대사업자 제도를 갑자기 폐지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7·10대책으로 4년 단기임대주택과 아파트 임대사업자 제도를 폐지했다. 이미 등록된 임대주택은 의무임대기간 만료 후 자동 말소하도록 했다. 위례 호반써밋 같은 건설임대주택의 경우 임대 계약이 남았다면 임대의무기간을 채우지 않아도 임차인 동의만 받으면 분양 전환이 가능하도록 했다.
문제는 7·10대책으로 4년 임대 후 분양이란 꼼수를 택했던 아파트가 불과 1년 만에 사실상 고가 분양이 가능해졌다는 점이다. 위례신도시는 공공택지여서 당시 호반산업이 해당 부지를 공급받아 일반분양하면 분양가상한제를 적용받아 3.3㎡당 1700만~2000만원(101㎡ 기준 약 8억원)에 분양해야 했다. 현재 분양 전환가격은 3.3㎡당 3000만원에 달한다. 불과 1년 만에 건설사 수익이 4억~5억원 정도 늘어난 셈이다. 반대로 입주자 부담은 그만큼 커진 것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정부가 이 같은 상황을 초래하는데 일조했다고 지적한다. 단기 임대사업자 세제 혜택을 폐지하고, 다주택자와 법인 종합부동산세율을 인상했기 때문이라는 것. 현재 법인 종부세율은 6%에 달하며 개인과 달리 1인당 6억원(1주택자는 11억원) 공제 혜택도 없다. 세무업계에 따르면 호반산업의 경우 이 아파트에 대한 임대사업자 혜택이 없어지면서 예상 종부세가 한 채당 5000만~6000만원, 700가구를 합쳐 매년 4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조하림 세무사는 “아무리 대형 건설사라고해도 갑자기 제도가 바뀌어 매년 4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예기치않게 발생하면 사업을 계획대로 운영하는 데 차질이 생기지 않겠느냐”고 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민간이든 공공이든 임대주택은 세들어 사는 기간에 열심히 자금을 모아 집을 분양받을 목적으로 사는데, 요즘 같은 집값 상승세를 고려하면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건설사가 공급하는 민간임대주택에 계약 당시 확정 분양가 도입을 의무화하거나 대출 제도를 대폭 개선해 임차인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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