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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 한번 끌어내봐!" 전세난에 늘어나는 막가파 세입자

    입력 : 2021.10.13 11:08

    [땅집고] “죄송한데 딱히 갈 데가 없어서 사정상 몇 년 더…(거주하겠다). 법대로 하셔도 됩니다! 끌어낼 때까지 버텨보죠. 결례했습니다! 연락 사절.”

    최근 집주인 A씨는 자신이 실거주할 목적으로 세입자에게 집을 비워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가 이 같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답장을 받았다. A씨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린 글에서 “세입자에게 계약 기간보다 빨리 이사하면 이사비를 주겠다고 했는데 세입자가 ‘딱히 갈 데가 없어서 사정상 몇 년 더 거주하겠다’며 거절했다”고 했다. 그는 “실거주할 계획이어서 (주택임대차보호)법에 따르더라도 세입자 퇴거를 요청할 수 있는데, 세입자가 ‘끌어낼 때까지 버티겠다’고 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13일 부동산 업계와 법조계 등에 따르면 최근 집주인의 합법적 퇴거 요구에 불응하고 아예 연락을 끊어버리는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소송을 당하면 질 게 뻔한 것을 알면서도 마땅히 갈 곳이 없는 세입자들이 소송 기간 동안이라도 버텨보자며 최대한 퇴거를 미루고 있는 것. 한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결국 집값 급등과 대출 규제, 전세난 등 이른바 ‘삼중고’로 인해 이사할 곳을 찾기 힘든 세입자들이 어쩔 수 없이 이 같은 막가파식 버티기를 선택하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땅집고] 한 전세 세입자가 집주인의 퇴거 요청을 거부하면서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 /온라인 커뮤니티 '뽐뿌'

    대부분 세입자는 집주인의 임대료 인상 요구에 연락을 두절하는 경우가 많다. 현행 임대차상 전세 계약 갱신시 5% 이내 인상이 가능하지만, 세입자와 합의해야 한다는 단서가 있어 일방적인 인상은 어렵다. 집주인 C씨는 최근 주변 전세 시세가 5억원으로 많이 올라 기존보다 5% 증액한 3억5000만원으로 재계약을 요청했지만, 세입자는 “계약금은 그대로 해야 한다. (증액 요구는) 안 된다. 연락하지 말라”며 반발했다.

    업계에서는 오갈 데가 없어진 세입자들이 마지막 수단으로 연락 두절을 택하는 경우가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명도 소송은 집주인이 불법 세입자에게 건물을 비워달라는 취지로 제기하는 소송이다. 특히 최근에는 집을 비워주고 이사하고 싶어도 금융권 대출 규제 때문에 전세 대출까지 막혀 오도가도 못하는 세입자가 많아진 것도 이유로 꼽힌다.

    성창엽 대한주택임대인협회장은 “임대사업자들은 최근 연락을 피하는 임차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집을 팔고 싶어도 임차인이 집을 안 보여주고 버티니 방법이 없다”며 “내용증명을 보내도 수취인 불명으로 되돌아오거나 임차인이 번호를 바꾼 경우도 있다. 전세난이 예고된 만큼 임대차 갈등은 더욱 심화할 전망”이라고 했다.

    [땅집고] 한 전세 세입자가 집주인의 보증금 인상 요구을 거부하면서 주고 받은 문자메시지./온라인 커뮤니티 '뽐뿌'

    ■퇴거 요청 불응하면 어떻게 하나

    집주인 입장에서는 세입자가 정당한 퇴거 요청에 불응할 경우 명도 소송을 통해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통상 명도 소송은 짧게는 6개월, 길게는 1년까지 걸린다. 하지만 세입자가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면 2년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세입자가 비협조적이라는 판단이 들면 소송 기간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빨리 소송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엄정숙 부동산 전문 변호사는 “계약 만기 조건으로 승소 판결을 받을 수 있어 시기적으로는 계약 만기 2~3개월 전에 소송을 준비하는 게 가장 좋다. 소장을 내고 변론기일 진행하고 판결 선고까지 최소 2~3개월이 필요하다”면서 “다만 너무 일찍 준비하면 오히려 패소 우려도 있어 적절한 시간을 봐가면서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대처법은 계약서 작성할때나 계약 초기에 ‘제소전 화해 조서’를 받는 것이다. 제소전 화해는 민사분쟁 시 당사자 간 분쟁이 소송으로 번지는 것을 막기 위해 소송 전에 신청서를 접수해 법관 앞에서 화해 조서를 받는 제도다. 확정 판결과 같은 효력을 가지기 때문에 제소전 화해 조서를 기초로 강제집행이 가능하다. 명도소송보다 기간과 비용 측면에서 월등히 유리하기 때문에 임대차 관계에서 많이 쓰인다.

    엄 변호사는 “원래 제소전 화해 제도는 주택에서 많이 쓰이진 않았다. 그러나 임대차 3법으로 계약갱신권청구 제도가 생기면서 문제를 미리 해소하기 위한 방법으로 최근 많이 권장되고 있다”면서 “제소전 화해 공증을 받아 두면 골치 아픈 임대차 분쟁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 있다”고 했다.

    만약 집주인이 임대차법에서 정한 한도인 5%까지 임대료를 올리고 싶은데 세입자가 끝까지 동결을 요구하면 집주인은 두 가지 선택을 할 수 있다. 먼저 대한법률구조공단 산하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조정을 신청할 수 있다. 그러나 세입자가 조정 절차를 거부하거나 일주일 내 아무런 의사를 표시하지 않으면 임대인의 신청은 자동 각하돼 효과가 없다.

    또 다른 방법으로 차임 증감 청구권 소송이 있다. 법원 판결로 5% 증액이 결정될 수 있다. 시간은 6개월 정도 걸린다. 김은유 법무법인 강산 대표변호사는 “만일 5% 증액이 결정됐는데도 동결된 임대료를 두 달 동안 낸다면 법적 근거에 따라 퇴거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박기람 땅집고 기자 pkram@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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