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10.06 10:38 | 수정 : 2021.10.06 13:36
[땅집고] “같은 아파트 안에서 누가 임대주택 사는지 색깔로 구별해놓은 거죠. 아무래도 기분이 좋을 수가 없어요, 아이들이 차별 받을까봐 눈치도 보이고….”
1999년 입주한 서울 노원구 중계동 ‘양지대림2차’ 아파트. 지난 4월 아파트 외벽을 파란색과 흰색으로 새로 칠하는 도색작업을 시작해 최근 완료했다. 그런데 총 9개동 중 8개동 외관은 새 단장을 마쳐 깔끔해보이는 반면, 유독 한 동만 빛 바랜 분홍색이어서 눈에 띈다. 임대주택 동이어서 나머지 일반분양 동과 달리 도색 작업 대상에 포함되지 않은 것. 바로 옆 ‘양지대림1차’도 마찬가지다. 7개동 중 일반분양 5개동은 회색과 흰색 페인트로 새로 단장했는데, 단지 출입구에 있는 임대주택 2개동만 여전히 분홍색으로 남아있다.
양지대림 아파트는 일반분양 주택과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가 관리하는 임대주택이 섞여 있다. 하지만 일반주택과 임대주택 간 관리체계가 다르고, 입주자대표회의도 따로 구성하는 등 ‘한 지붕 두 살림’ 형태로 운영된다.
‘양지대림’의 경우 올해 도색 작업을 위해 일반분양 주택 입주민이 모아둔 장기수선충당금에서 3억원을 사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임대주택은 SH공사가 관리하면서 아파트 외벽 도색을 7년 주기로 진행해 일반주택과 같은 시기에 도색을 진행하지 못했다. 소식을 접한 네티즌들은 “한 단지에 사는데 대놓고 차별하는 것은 너무하다”, “SH공사도 너무하다. 얼른 임대동 외관도 같은 색으로 도색해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그동안 일반분양 주택과 임대주택이 섞인 단지에서 차별 논란이 불거진 사례가 여럿 있다. 대표적인 곳이 서울 강남구 개포동 고가(高價) 아파트 중 하나로 꼽히는 ‘디에이치아너힐즈’. 총 23개동인데, 임대주택이 들어간 2개동 외관만 검은색에 가까운 석재로 마감했다. 흰색·연회색 등 밝은 색을 주로 쓴 일반분양 동과 확실하게 구분된다. 서울 성북구 보문동 ‘보문파크뷰자이’는 일반분양 동과 임대동 사이에 출입문 없는 높은 벽을 설치해, 임대아파트 주민이 다른 동으로 건너갈 수 없게 만들기도 했다.
일반분양 가구와 임대주택 가구가 같은 동을 써 외관상 별 차이 없어 보이지만, 입구·비상계단·엘리베이터 등 내부 설계를 통해 임대아파트 주민을 분리한 단지도 있다.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랜드마크 주상복합으로 꼽히는 ‘메세나폴리스’다. 최고 39층인데, 비상계단 10층에서 11층으로 올라가는 길이 막혀 있다. 임대주택이 있는 4~10층과 11층 이상 주택을 분리하기 위한 설계다. 아래층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입주민이 비상계단을 통해 위층으로 대피하려다가 자칫 인명 피해가 생길 수도 있는 구조다.
서울 용산구 한강로3가 ‘센트럴파크 해링턴스퀘어’도 있다. 총 1140가구인데, 임대가구 194가구를 5~18층에만 배치한 뒤 이들이 쓰는 출입구와 엘리베이터를 따로 설치했다.
이렇다보니 입주민 간 갈등도 종종 생긴다. 최근 단지마다 소통을 위해 입주자 전용 단체 카카오톡 채팅방을 개설하는 추세인데, 관리자가 동호수를 조사한 뒤 임대아파트 주민을 채팅방에서 배제하는 일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로 한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행복주택 2년차 거주중인데, 입주민 단톡방에서 임대세대는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다”라며 “이런 식이면 전세 입주자들도 나가야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하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최근 분양 아파트에 임대 공급을 의무화하는 경우가 대다수인 만큼 입주민 사이에 벌어질 수 있는 차별을 최대한 줄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설계 측면에서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경기 평택시에 공급한 신혼희망타운 ‘평택고덕 LH 르 플로랑’이 좋은 사례로 꼽힌다. 총 891가구인데, 분양주택(596가구)과 임대주택(295가구)을 무작위로 배치해 이웃집 거주자가 집주인인지 세입자인지 알 수 없다.
‘색깔 차별’로 논란이 된 ‘양지대림’에 대해 SH공사 관계자는 “임대주택의 경우 세금을 고려해 7년 주기로 외벽 도색하는 것으로 정해져 있다”면서 “민원이 워낙 많이 접수돼 최근 제도를 수정했고, 양지대림의 경우 이르면 내년 중 일반분양 아파트와 같은 색깔로 도색 작업을 할 예정”이라고 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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