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샀는데 무덤이 떡하니…내 맘대로 없애도 될까

[땅집고] 정년퇴직을 앞두고 귀농을 준비 중인 A씨. 지인으로부터 충남에 있는 1300㎡규모 농지를 소개받았다. 등기부등본 등 각종 공적장부를 통해 별다른 권리관계가 없는 ‘깨끗한 물건’임을 확인하고, 직접 현장을 방문한 결과 입지도 마음에 들었다. 결국 지난해 이 땅을 매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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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올해 봄 농작물을 심으러 간 A씨는 깜짝 놀랐다. 토지 구석에 매입 당시 발견하지 못했던 야트막한 무덤이 있었던 것. 동네 주민들을 수소문한 끝에 무덤 주인 B씨를 찾아 개장(改葬·무덤을 옮기는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B씨는 “우리가 2001년 2월 분묘를 설치한 이후 20년이 넘었기 때문에 ‘분묘기지권’을 획득했다. 굳이 무덤을 옮기지 않아도 되는 것으로 안다”며 거부했다. A 씨는 이 무덤을 옮길 방법이 없는지 궁금해졌다.

매입한 땅에 남의 무덤이 있는 경우, 토지 소유자가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 남의 땅에 무덤을 설치한 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하면 ‘분묘기지권’(남의 땅에 설치한 무덤을 돌볼 수 있는 권리)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분묘기지권은 세 가지 경우에 성립한다.

①토지 소유자의 허락을 얻어 분묘를 설치한 경우
②자신이 소유하던 땅에 분묘를 설치한 자가 분묘에 관한 별도 특약을 정하지 않은 채로 해당 부지를 다른 사람에게 처분한 경우
③분묘를 설치한 뒤 20년 동안 평온하고 공연하게 점유한 경우

세번째 조건에서 ‘평온’이란 폭력이나 물리적인 힘을 사용해 땅을 강제로 점유하지 않은 경우, ‘공연’은 누구나 알 수 있도록 점유한 경우를 말한다.

분묘기지권의 존속 기간은 당사자끼리 약정을 통해 정할 수 있다. 약정이 없었다면 분묘기지권을 취득한 권리자가 분묘를 돌보는 기간 동안 해당 권리가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토지소유자 허락 없이 무덤을 설치했을 때다. 20년 이상 점유한 무덤이라도 2001년 1월 13일 이후 설치한 무덤이라면 분묘기지권이 성립하지 않는다. 두 가지에 해당하면 토지소유자가 분묘를 개장할 수 있다. 다만 개장하기 최소 3개월 전 무덤 설치자가 권리자에게 개장 사실을 알려야 한다. 설치자와 권리자를 알 수 없다면 개장 사실을 3개월 이상 공고해야 한다. 공고 기간이 지나도 권리자가 나타나지 않으면 개장 후 화장한 유골을 10년 동안 보관하고, 그 사실을 관할 시청에 신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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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씨가 매입한 땅에 있는 무덤은 설치 후 20년이 넘었다. 하지만 분묘 설치 시점이 2001년 2월로, 20년 이상 점유를 통해 분묘기지권을 인정받는 시점(2001년 1월 13일) 이후다. 따라서 A 씨는 이 무덤을 옮기고 땅에 농작물을 키울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타인 소유 토지에 무덤을 짓고 분묘기지권을 인정받은 경우, 토지소유자가 사용료를 요구하면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비용은 당사자 간 협의로 정하거나 법원 결정에 따른다. 땅값이 변하면 토지사용료도 증감할 수 있고 사용료를 2년 이상 연체하면 토지소유자가 분묘기지권 소멸 청구가 가능하다. /글=고준석 동국대 겸임교수, 편집=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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