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9.07 04:32
[땅집고] 지하철 1호선 동대문역 1번 출구에서 나와 가파른 창신동 언덕을 20분 정도 올라가다 보면 각종 건축 자재가 아무렇게나 쌓여 있는 공사 현장이 보인다. 서울시가 짓는 5층 규모 청년용 사회주택인 ‘아츠스테이 창신(창신동 23-575)’ 사업지다. 종로구 창신동 주민 A씨는 “창신동에서 가장 높은 언덕길을 땀 뻘뻘 흘리면서 올라가야 나오는 곳인데 어느 청년이 여기 살고 싶겠느냐”면서 “지으려면 빨리나 지을 것이지, 몇 년째 공사장으로 방치해 둔 상태라 보기도 흉하다”고 말했다.
‘박원순표 도시재생’ 1 호 지역인 서울 종로구 창신동에 들어선 사회주택인 ‘아츠스테이 창신’이 약 5년째 공사현장으로 방치돼 있어 세금 낭비 논란이 일고 있다. 도시재생 사업은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당시 SH사장인 변창흠 사장과 함께 추진한 사업으로, 서울시에 주택난을 일으키고 해당지역 주민들의 주거 환경을 악화시킨 원인으로 꼽힌다.
아츠스테이 창신의 경우 부지 자체가 청년용 주택에 맞지 않는 위치인 데다 아직까지도 건물이 폐가로 남아 있어 주민들이 민원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한 마디로 ‘박원순 시장이 남긴 대표적인 흉물’이라는 평가다.
사회주택이란 서울시가 장애인, 고령자, 청년 1인가구 등 사회경제적 약자에게 시세의 80% 이하 임대료로 공급하는 임대주택이다. 박 전 시장이 2015년 도입했다. 서울시나 SH가 소유한 땅에 민간사업시행자가 건물을 지어 임대하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과, 노후 건물을 보수해서 임대하는 ‘리모델링형 사회주택’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아츠스테이 창신’은 이 중 토지임대부 방식으로 공급한다.
땅집고가 등기부등본을 열람한 결과 SH공사는 2016년 8월 두 명의 소유자에게 총 5억1780만원(각각 1억260만원·4억1520만원)을 주고 이 부지를 매입했다. 3층 짜리 낡은 주택이 들어서있던 해당 부지를 매입했다. 곧바로 사회주택 사업자로 미리 선정해뒀던 사회적기업 ㈜안테나와 5층 규모 사회주택 신축 사업을 진행했다.
창신동 주민들은 골목 한가운데 자리잡은 사회주택이 애초부터 실현 가능성 없는 사업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창신2동 주민 임모씨는 서울시 홈페이지 시민제안 게시판에 “현재 ‘아츠스테이 창신’ 사업지는 이 일대에서 가장 고지대인 데다가 교통까지 불편해 청년들을 끌어모으기 불가능한 지역이다. 주변에 1~2층짜리 낡은 주택이 밀집해 있는데, 사회주택은 5층 높이로 계획돼 주민들의 일조권 및 조망권 피해까지 우려된다”라며 “한마디로 지역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사업”이라는 글을 남겼다. 사회주택 사업장에서 나온 건축 자재나 쓰레기가 골목을 침범하면서 주민 통행에 불편을 겪고 있다는 민원도 제기됐다.
결국 창신동 주민 93명은 서울시와 SH공사가 사회주택 사업지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보고 예산 낭비 내용으로 시민감사를 청구했다. 지난 7월 서울시 시민감사 옴부즈만위원회가 감사한 결과 사업이 5년 동안 지지부진했던 이유는 크게 두 가지로 분석된다. ▲부지 건축선 후퇴 문제와 ▲건축 변경 심사 때문이다.
㈜안테나는 당초 건물을 신축할 예정이었는데, 측량 결과 건물과 인접한 현황도로가 부지 일부를 침범하고 있는 것이 문제가 됐다. 종로구청은 현행 도로선을 기준으로 1m 후퇴해 건축할 것을 요구했다. 이 때문에 건물 면적이 줄어들면서 사업성이 저하되자 신축 대신 리모델링하기로 결정했다. 이 건축선 문제 때문에 6개월 정도가 소요됐다.
이어 건축 변경 심사도 발목을 잡은 것으로 나타났다. ㈜안테나가 사회주택 신축에서 리모델링으로 선회한다는 내용으로 사업계획변경 신청했는데, 종로구청이 1~3층을 한꺼번에 공사할 경우 리모델링이 아니라 대수선에 해당한다고 지적하면서 건축심의를 다시 받게 된 것. 하지만 대수선에 따른 공사 위험성 및 비용 등을 고려해 다시 신축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결국 2020년 4월 말에야 종로구청으로부터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었다. 이후 기존 3층 노후주택을 철거한 뒤 올해 4월 착공, 6월 말 기준 기초공사까지 완료했다.
하지만 옴부즈만위원회는 이 같은 이유로 사업이 지연된 것은 예산 낭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다. 지난 5년여 동안 ㈜안테나가 SH공사에 토지 임대료(월 47만원 정도)를 체납한 적도 없다는 설명이다. 다만 사회주택 업무를 관할하는 서울시 주택정책과가 사업시행자를 선정할 당시 심사위원들이 작성한 채점표를 누락하고, 관련 회의록을 작성하지 않는 등 증빙자료를 소홀히 한 데 대해서는 ‘주의’ 처분을 내렸다. 또 SH공사와 사회주택종합지원센터에는 관리감독 강화를 ‘권고’했다.
이에 창신동 주민들은 감사 결과가 편향적이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시와 SH공사가 해당 부지 매입 전 사업성 검토를 했더라면 5년 넘게 폐가로 버려지지 않았을텐데, 보여주기식 사업을 하는 바람에 공사 지연 기간 동안 세금이 매몰됐는데도 예산 낭비가 아니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박원순 시장 시절 서울시는 도시재생 사업이 ‘주민참여’라고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주민들의 의사는 배제하는 경우가 많았다. 창신동 도시재생 사업이 대표적이다.
강대선 창신동 재개발 추진위원장은 “주민들이 ‘청년들의 선호도를 고려하면 애초에 사회주택을 지을 만한 입지가 아니다’며 반대 입장도 냈었는데, 서울시가 강행해 이 같은 결과가 발생한 것”이라며 “창신동은 전면 재개발이 필요한 지역인데 엉뚱한 데 세금만 쏟아붓고 있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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