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9.07 03:14
[땅집고] 정부가 민간 아파트 재건축을 위한 필수 관문인 안전진단을 꽁꽁 틀어막은 반면, 정부가 보유한 공공 임대주택 재건축은 아무런 제한 없이 허가해 형평성 논란이 일고 있다. 안전진단 강화로 민간 재건축이 올스톱된 가운데 서울 노원구 하계5단지가 안전진단을 생략하고 ‘공공임대 1호 재건축’ 사업을 시작한다. 재건축 아파트 소유주들은 정부가 재건축을 통한 재산권 행사를 ‘불필요한 낭비’라고 규제하면서 임대아파트는 정부 입맛에 따라 재건축하는 것은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공공임대주택 재건축해 2만3000가구 공급”
정부는 지난달 30일 3차 신규 공공택지 공급 계획과 함께 공공임대 아파트인 노원구 하계 5단지 재건축 계획을 발표했다. 노원구 태릉골프장 부지 주택 공급 계획을 1만가구에서 6800가구로 줄이는 대신 노원구 하계5단지를 재건축해 1500가구를 공급하겠다는 것이다. 하계5단지는 1989년 입주한 영구임대 아파트다. 최고 5층, 13개 동에 640가구다. 서울 공공임대 단지로서는 첫 재건축이다.
서울시와 SH공사는 지난해부터 하계5단지를 시작으로 영구임대 아파트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다. SH공사가 소유하고 있거나 관리 중인 공공임대주택은 총 34개 단지, 3만9802가구다. 대부분 1990년대 지어 입주 20~30년차다. 서울 외곽인 강서(1만5275가구)·노원(1만3165가구)· 중랑구(2811가구) 등에 모여 있다. 서울시는 공공임대 재건축을 통해 향후 20년 간 최대 2만3000가구를 더 공급하고 늘어난 물량을 공공분양으로 돌려 사업비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하계5단지는 서울 1호 공공임대 재건축 사업으로 안전진단 절차를 생략하고 초고속으로 진행될 전망이다. 국제현상설계 공모를 거쳐 2022년 8월쯤 사업계획을 승인해 2027년 입주한다는 방침이다. 서울시는 용도지역을 올려주고 용적률 500%, 최고 50층 이하 건축 계획을 적용하기로 했다. 하계5단지는 기존 제1종, 2종 일반주거지역을 준주거지역으로 종상향해 103%인 용적률을 최고 400%로 높인다. 최고 35층 규모이며 현재 640가구를 1510가구로 늘려 통합공공임대주택(750가구), 지분적립형 분양주택(385가구), 장기전세주택(375가구) 등을 공급한다.
하계5단지 재건축 계획이 발표되자, 주변 주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노원구에 하계5단지보다 더 오래된 아파트 대부분이 안전진단을 통과하지 못해 재건축이 불가능한데, 뒤늦게 재건축을 추진하는 하계5단지는 국가 소유란 이유로 순식간에 재건축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1985년 노원구에서 가장 먼저 입주한 공릉동 태릉우성은 최근 정밀안전진단에서 C등급(60.07점·유지보수)을 받아 재건축 불가 처분을 받았다. 태릉우성 아파트가 정밀안전진단에서 탈락한 것을 보고 상계주공 3단지(1987년 입주)와 6단지(1988년 입주)도 안전진단 일정을 전면 중단했다.
■ 공공임대 재건축은 안전진단 필요없다니…
공공임대주택 근거법인 장기임대주택법과 공공주택특별법에 따르면 공공임대 아파트는 세대수만 늘리면 안전진단 등 각종 절차를 생략하고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다. 집값에 큰 영향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심지어 재건축 연한을 채우지 않았고 아무리 튼튼하고 살기 편한 아파트라도 안전진단 절차 없이 기존보다 세대수만 늘리면 재건축을 할 수 있다.
민간 대단지 아파트 주민들은 공공 임대주택에는 적용하지 않는 각종 규제가 민간 아파트에만 적용되는 것은 불합리한 사유재산 침해라고 주장한다. 더구나 안전진단을 위해 주민들이 사비로 수억원을 지출하는데도 안전진단에서 탈락한 이유에 대해 제대로 설명조차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불만이 크다. 노원구의 한 주민은 “헌법에는 정부의 사유 재산 침해는 꼭 필요한 경우에 한해 제한된 범위에서만 이뤄져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며 “공공 임대 재건축을 제한 없이 허용하는 것은 재건축 규제가 꼭 필요하지 않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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