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1.09.06 07:16 | 수정 : 2021.09.06 07:27
[땅집고] “평수가 작은 호실만 거래가 가능할 것 같은데 초피(최초 웃돈)가 7000만~8000만원 수준이에요. 이달 말까지 납부해야 하는 계약금 10%(약 1억3000만원)까지 합치면 2억원 정도 자금은 갖고 계셔야 하는데, 지금은 매물이 없어요.”
지난 8월 30일부터 이달 1일까지 서울 강서구 마곡동 생활형 숙박시설 ‘롯데캐슬 르웨스트’ 견본주택 주변에는 당첨자 상대로 영업하는 이른바 ‘떴다방’(이동식 중개업소) 관계자들이 북적였다. ‘롯데캐슬 르웨스트’는 지난 8월 25~27일 진행한 청약에서 876실 모집에 57만5950여명이 접수해 평균 657대 1의 경쟁률로 청약 광풍을 일으켰다. 계약일 직후부터 호실마다 분양가에 최소 1000만원, 최대 2억원까지 웃돈이 붙어 분양권이 거래되고 있다. 현재도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 SNS(소셜미디어) 채팅방에는 매수 문의 글들이 쏟아진다.
최근 분양 시장에서 생활형 숙박시설, 이른바 ‘생숙’ 투자 열풍이 불고 있다. 청약에서 수백대 1의 경쟁률로 완판하고, 계약 즉시 최대 2억원 웃돈이 붙어 팔린다. 생숙은 소유자가 직접 거주하거나 임대사업을 할 수 없고 오로지 숙박시설로만 운영해야 한다.
그런데 청약자나 분양권 매수자 모두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다. 오직 ‘주택 수에 포함되지 않고 웃돈을 얹어 사고 파는데 규제가 없다’는 점 때문에 너도나도 청약과 거래에 나서는 상황이다.
■ 억눌린 주택 수요 생숙에 쏠렸다
정부가 올 초 생숙을 주택으로 사용할 수 없다고 밝히고 법도 개정했지만, 청약 시장에서는 개의치 않는 모습이다. 아직도 일부 생숙 분양 회사들은 “생숙 소유자가 직접 실거주할 수도 있다”, “임대도 가능하다”는 식의 허위 광고로 소비자를 현혹한다.
하지만 이는 엄연한 범법 행위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법을 잘 모르는 수요자들이 “이럴수록 더 청약해야 한다”, “정부 말과 반대로 행동해야 돈 번다”고 이야기한다. 이러다보니 청약 시장에선 생숙이 오피스텔 등과 비슷한 수익형 부동산 정도로 취급되는 모양새다.
시행사는 생숙 위탁업체에 운영을 맡기면 높은 수익을 확보할 수 있다고 홍보한다. 그러나 계약서상으로 보장하는 확정 수익률은 아니다. 실제 운영할 때는 수익률이 낮아지거나 높아질 수 있다. 또 위탁업체가 운영하는 경우 청소, 세탁, 소모품비 등 관리비를 제외하고 수익을 나눠준다.
현재 생숙 운영 수익 예상치는 터무니없이 부풀려져 있다는 지적이다. ‘롯데캐슬 르웨스트’의 경우 위탁업체가 운영 수익의 30%를 가져가고도 투자자에게 연 평균 5.3% 수익을 돌려주고 있다고 홍보한다. 문제는 이런 수익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
분양가가 16억1000만원인 롯데캐슬 르웨스트 84㎡ 호실의 경우 연간 1억2236만원의 임대료가 나와야 한다. 1년 내내 하루도 빠짐없이 하루 33만원씩 숙박료를 받아야 하는 수준이다.
하지만 마곡지구에 운영 중인 호텔의 하루 숙박료를 살펴보면 주말에는 약 22만~29만원, 평일에는 평균 15만원대다. 성수기와 비수기에 따라 가격 변동 폭도 큰 편이다. 분양가를 생각했을 때 숙박시설로 운영하면 연 평균 5.3% 수익률은 꿈 같은 수치다.
전문가들은 최근 생숙의 폭발적 인기가 자칫 비트코인이나 다단계 사기와 비슷한 ‘폭탄 돌리기’ 게임으로 전락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너도 나도 달려들어 청약하고 웃돈을 받아 팔고 있지만, 결국 마지막 투자자만 큰 손해를 볼 수 있다는 것. 생숙은 직접 실거주할 수도, 세입자를 받을 수도 없다. 결국 숙박업으로 운영해야 하는데 지금 같은 높은 분양가로는 기대만큼 수익을 낼 수 없기 때문이다.
권강수 상가의신 대표는 “수익형 부동산은 주택보다 경기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시행사가 아파트나 오피스텔처럼 홍보하더라도 실제 운영 측면에서 보면 분양형 호텔과 비슷해 주변 숙박시설 시세와 수요를 잘 따져보고 투자해야 한다”고 했다. /김리영 땅집고 기자 rykimhp206@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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