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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됐는데 재건축도 못하고…" 토지임대부 주택의 민낯

    입력 : 2020.12.18 05:03

    [땅집고] 용산구 이촌동에 위치한 시범아파트. 지어진 지 오래돼 건물 외관이 낡고 곳곳에 금이 가있는 모습이다./손희문 기자

    [땅집고] 지난 16일 서울 용산구 서부이촌동. 과거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진행됐던 용산국제업무지구의 남쪽 부지에 있는 지역이다. 공사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페인트칠이 뜯겨 나가고 외관 곳곳에 금이 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 있다. 1970년대에 지어 준공 50년을 바라보는 중산아파트(266가구)와 시범아파트(228가구)다. 원효대교 북단 한강변에 있어 입지가 좋은 이 아파트는 재건축 가능 연한(30년)을 채웠지만 재건축이 불가능한 상태로 방치돼 있다. 이 아파트에 40년간 거주했다는 박모씨는 “아파트가 너무 낡아 불편한 건 둘째치고 무너지지 않을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중산·시범아파트가 재건축을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은 일반적인 아파트와 달리 소유자들이 땅을 제외한 건물에 대한 소유권만 갖고 있기 때문이다. 땅은 서울시 소유다. 국토교통부 장관 후보자로 내정된 변창흠 사장이 주택 시장 안정을 위해 꼭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토지임대부 주택’이 바로 중산·시범아파트다.

    과연 토지임대부 주택은 문재인 정부가 난장판으로 만든 주택 시장의 해법이 될 수 있을까. 대표적인 토지임대부 주택인 중산·시범아파트는 갈등과 고통의 현장이 돼 있었다. 아파트 건물 소유자들은 땅 소유권을 넘겨달라며 서울시와 오랫동안 다툼을 벌이고 있다. 상황에 따라 건물 가치는 완전히 사라지고, 주민들은 거리로 쫓겨날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변창흠 국토부 장관 후보자가 도입하려는 ‘토지 임대부 주택’에서도 이런 문제가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경고한다.

    [땅집고] 이촌동 시범아파트와 함께 용산 핵심 입지에 자리잡은 중산아파트. 시범아파트에서 도보로 약 3분 정도 거리에 떨어져 있다./손희문 기자

    ■ 50년 됐지만 재건축은 ‘그림의 떡’

    이촌동 시범아파트 18평(전용 60㎡)의 현재 호가는 7억2000만~7억5000만원, 21평(전용 69㎡)이 8억2000만~8억7000만원 정도다. 낡아서 쓰러져가는 건물 자체에 별 가치가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재건축 기대감이 어느 정도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1997년 입주한 인근 북한강성원 아파트와 비교하면 집값이 60~70% 수준이다. 김기진 가보공인중개사사무소 대표는 “재건축 사업이 진척되기 어렵다는 전망이 우세하지만 한가닥 희망을 품고 있다보니 가격이 이 정도 수준으로 형성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촌동 중산·시범아파트 주민들은 서울시와 토지 소유권을 놓고 오랫동안 다툼을 벌여왔다. 주민들은 과거 ▲서울시가 한번도 토지 사용료를 요구하지 않았고, ▲건물 소유주가 50년간 실질적으로 토지를 점유해 왔으며, ▲주변 성원아파트의 경우 토지 소유권이 건물 소유주에게 있었던 것으로 나중에 드러났다는 점 등을 근거로 토지 소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법정 다툼 끝에 2008년 대법원에서 토지 소유권이 서울시에 있다는 확정 판결을 내렸다.

    2017년, 서울시는 토지 소유권을 소유주들에 매각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소유주끼리 대지 지분 배분율을 두고 갈등이 생겼다. 주민들이 땅을 팔라고 매각 신청을 하려면 주민 100%가 동의해야 하는데 일곱 차례에 걸쳐 매수 신청서를 내는 동안 동의율이 90% 선에서 멈춰 있다. 김종찬 용산구청 주택관리팀장은 “해외에 살거나 소재지가 불명확한 경우가 있어 현실적으로 100% 동의률을 달성하기 어려워 보이고, 결과적으로 서울시가 땅을 넘겨 줄 수도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뾰족한 해법이 없으면 이 상태가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땅집고] 용산구 중산·시범아파트 일대 중개업소에 게시된 매물 현황./손희문 기자

    ■ 전문가들 “토지임대부는 근시안 대책”

    중산·시범아파트 외에도 서울 서초·강남구에도 토지임대부 아파트가 있다. 2011년과 2012년 각각 공급된 LH서초5단지·강남구 LH강남브리즈힐이 ‘토지임대부 주택’이다. 땅은 LH가 소유하고 건물은 분양받은 개인 소유다. 건물 소유자는 자유롭게 소유권을 매각할 수 있어, 이 아파트 매매가격은 현재 전용 84㎡기준 11억~12억원에 달한다.

    이 단지들은 입주자모집공고문과 계약서에 ‘토지는 40년 임대가 원칙이며, 이후 소유자 요청이 있을 때 40년 내에서 1회 연장할 수 있다’, 또 ‘토지 소유주(LH) 동의를 받아 재건축이 가능하다’는 조항을 달았다. LH는 “토지 임대나 재건축에 대한 사항을 명확히 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땅집고] 서울 강남구 자곡동에 공급된 토지임대부 주택 'LH강남브리즈힐', 전용 84㎡가 10억원 을 훌쩍 뛴 가격에 거래되는 등 가격이 폭등하며 서민아파트의 취지가 퇴색했다는 비판이 수차례 나왔다./조선DB

    하지만 전문가들은 토지임대부 주택이 여전히 다양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문재인 정부와 고(故) 박원순 시장이 재임하던 서울시처럼 아파트 재건축을 범죄 행위처럼 취급하는 정부가 들어설 경우 주민들이 재건축을 요구하더라도 LH는 반대할 가능성이 크다. 재건축 사업의 결정권이 주민이 아닌 정부에 있는 셈이다.

    “30년 뒤 일을 누가 아느냐”고 주장할 수 있지만, 20년만 지나면 재건축 얘기가 나오는 게 현실이다. 이 아파트들은 벌써 지은 지 10년이 됐다. 결국 머지 않아 불거질 문제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책임연구원은 “강남, 서초 토지임대부 주택의 경우 머지 않아 재건축 얘기가 나오고, 사업이 삐걱 거리면 누구도 이 문제에 대해 책임지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손희문 땅집고 기자 shm91@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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