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9.05 04:51 | 수정 : 2020.09.06 08:57
[젊은건축가상 수상자를 만나다] 박지현·우승진·조성학 비유에스(BUS)건축사사무소 대표
[땅집고] “도시에 살면서 굳이 아파트가 아닌 옵션을 찾아 자기 집을 짓겠다고 찾아오는 건축주는 그 자체만으로도 정말 특별한 이야기를 가진 분들이죠. ‘집 짓다 10년 늙는다’는 말도 있는 만큼 뚜렷한 동기 없이는 절대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건축주와 교감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합니다. 그들의 사소한 이야기 하나 하나까지 반영하면서 건축가의 상상력을 접목한 설계를 짜는 거죠.”
도시에 살던 한 젊은 부부. 남편 건강에 이상이 발견된 데다가 자녀 시력이 선천적으로 좋지 않아 이른바 귀촌(歸村)을 결심했다. 부부가 택한 곳은 경남 남해군 바닷가. 이 곳에 주택과 펜션을 짓기 위해 2년여 동안 건축설계사무소를 찾아 헤맨 끝에 ‘비유에스건축사사무소’를 선택했다. 부부는 “유연하고 열린 소통으로 서로의 의견을 절충해 나갈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했다. 설계 계약을 하기 전에 ‘땅을 찾고 만나게 된 이유’, ‘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기능이나 공간 우선순위’, ‘집에서 일어났으면 하는 일들’ 같은 구체적인 설문지를 받은 점도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건축주들의 일상을 반영하는 건축을 지향하는 비유에스건축사사무소 박지현·우승진·조성학 소장이 ‘2020년 젊은 건축가상’을 받았다. 수상자들 중 1위 격인 ‘올해의 주목할 만한 건축가’로도 선정됐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심사평에서 “젊은이들의 신선함과 새로움을 유감없이 보여줬다. 사소한 일상 이야기를 통해 건축을 만드는 과정이 뛰어났다”는 했다. 땅집고가 세 명의 젊은 건축가를 만났다.
Q. 건축주와 교감하는 것을 중시한다고 했는데.
(박지현)“건축주 성향이나 프로젝트 성격에 따라 소통 방식은 달라진다. 예를 들면 2016년 경기 파주에서 캠핑장을 짓는 건축주와는 직접 캠핑을 하면서 워크숍을 진행했다. 서울 도봉구에 서점 겸 주택을 짓는 건축주와는 글짓기 백일장을 열었다. 최대한 편안한 분위기에서 건축주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주고, ‘건축은 즐거운 것’이라는 인식을 완공 때까지 가져주기를 바란다.”
(우승진)“건주들이 가장 예민해지는 순간은 건축비를 접할 때다. 계산기가 등장하는 순간 경직된다. 허투루 쓰이는 돈 없이 잘 집행될 것이라고 설득하고, 투자에 대한 확신을 주기 위해 노력한다.”
Q. 지금까지 가장 인상에 남는 프로젝트를 꼽는다면.
(조성학)“2018년 서울 도봉구 쌍문동 노후 주택을 증축 리모델링해 2층 규모 주택 겸 서점으로 만든 ‘쓸모의 발견’이다. 건축주는 고양이를 네 마리나 키우고 있으면서, 기존 낡은 주택의 가치를 살리고 싶어했다. 이 점을 잘 드러내는 건물로 설계하는 것이 목표였다. 예를 들어 고양이 중 나이가 많은 한 마리는 힘이 없어 담을 넘을 수 없지만, 담 너머 풍경을 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담장 높이를 1.7m로 법적 한도(2m)보다 낮춰 고양이가 툇마루(70㎝)에 앉으면 담장 밖을 볼 수 있도록 했다. 너무 폐쇄적인 건물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건축주 의견도 충족시킨 담장이다. 이전 집주인이 심었던 감나무도 베지 않고 살렸다. 나무에 앉은 새를 바라보는 것을 좋아하는 고양이도 있어서다. 건축주 남편이 드럼세탁기에서 빨래가 돌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취미가 있어 세탁기 공간 앞에 앉아있을 수 있는 포켓 공간도 마련했다.”
(박지현)“충남 당진 죽동리에 지은 주택 ‘우물’도 있다. ‘ㅁ’자형 한옥이 대부분인 동네인데, 이전 땅주인이 완벽한 미국식 주택을 짓는 바람에 주변 환경과 맞지 않고 겉돌았다. 건축주는 이 집을 허물고 마을 풍경과 어울리는 방식으로 건축하기를 원했다. 주변에 처마가 있는 집이 많아 ‘우물’에도 처마를 달아 조화를 꾀했다. 시골에서는 사생활 보호가 잘 안된다. 외부의 시선을 피할 수 있는 마당을 지어달라는 건축주 요구를 감안해 중정(中庭) 형태로 설계했다.”
Q. 상업시설 설계는 안하나.
(우승진) “경남 남해로 귀촌한 부부가 건축주였던 ‘적정온도’ 펜션이 있다. 방 4개짜리 펜션인데, 바로 옆에 건축주 부부가 실거주하는 2층짜리 주택도 함께 지었다. 바닷가를 끼고 있는 남해에는 경사가 가파른 땅이 많다. 이 경사지에 순응하면서도 바다 풍경을 훤히 볼 수 있는 일(一)자형 펜션을 지었다. 통상 두 달치 예약을 한꺼번에 받는데 유명 연예인 콘서트 티켓 구하기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하다.”
Q. 도전해보고 싶은 건축 분야가 있다면.
(박지현) “아이들이 사용하는 공간을 설계할 수 있다면 좋겠다. 대안학교 설계를 한 적이 있다. 내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공간이 아이들 운동 에너지로 채워지는 것도, 아이들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공간을 쓰는 것도 모두 흥미로웠다.”
(우승진) “주거 부문에 관심이 많아 아파트 설계를 해보고 싶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주거문제 해결에 큰 도움을 주고 있지만 디자인이 천편일률적이라는 이유로 유독 미움을 받고 있다. 공동주택의 좋은 점을 살리면서도 지금 모습과는 다른 단지를 보여주고 싶다.”
(조성학) ‘○○○미술관’이라는 식으로, 작가가 지정된 미술관 설계가 꿈이다. 이런 미술관은 작가 개인 작품을 전시하는 지극히 사적인 공간이면서도, 누구나 작품을 감상하러 올 수 있는 공적인 공간이기도 하다. 두 영역간 간극을 잘 풀어내는 방식에 대해 고민해보고 싶다.” /이지은 땅집고 기자 leejin0506@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