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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에서 주택으로… 건축 명가의 화려한 부활

    입력 : 2020.07.12 23:13 | 수정 : 2020.07.13 16:14

    [땅집GO] 1%의 가능성 뚫고 법정관리 탈출, 재기 성공한 '범건축'

    "일반적으로 기업회생절차(옛 법정관리)에 들어갔다가 벗어나는 기업은 기껏해야 100곳 중 10곳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나마 과거 정상 경영 수준까지 복귀하는 기업은 고작 한 곳뿐이라고 합니다. 범건축은 그야말로 '1%의 가능성'을 뚫고 재기에 성공한 겁니다."

    기업회생절차를 조기 졸업한 범건축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형일(왼쪽) 사장과 김기민 대표이사.
    기업회생절차를 조기 졸업한 범건축 경영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박형일(왼쪽) 사장과 김기민 대표이사. /범건축
    올 상반기 범건축이 15억원에 수주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병무청역지역주택조합 공동주택 조감도.
    올 상반기 범건축이 15억원에 수주한 서울 영등포구 신길동 병무청역지역주택조합 공동주택 조감도. 세 회사가 참여한 지명 경쟁을 거쳐 당선됐다. /범건축 제공
    1984년 창립한 범건축은 30년 넘게 국내 건축 시장의 선두 주자 중 하나였다. 병원, 호텔 같은 고급 건축 프로젝트에서는 1, 2위를 다퉜다. 국내 최고층 빌딩인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를 비롯해 삼성동 아셈타워, 여의도 IFC서울, 이화여대 캠퍼스센터 등이 모두 범건축 손끝에서 탄생했다.

    문제는 경기 침체에도 지나치게 공격 경영에 나섰던 것. 결국 시공사들이 줄줄이 파산해 60억원이 넘는 대금을 받지 못한 채 자금난에 몰려 2017년 7월 회생절차를 신청하게 됐다.

    하지만 범건축은 불과 1년여 만에 흑자 전환하면서 회생절차를 조기 졸업하는 저력을 발휘했다. 김기민 범건축 대표는 "지난해 영업이익률 13.5%를 기록했다"면서 "같은 기간 상위 10대 건축설계사무소 평균 영업이익률(4.1%)보다 3배 높은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장사를 알차게 잘했던 것.

    범건축 연도별 수주액
    올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도 불구하고 더 빠른 성장세를 보이면서 건축 설계 명가 부활에 시동을 걸고 있다. 김 대표는 "이미 올해 수주 목표인 200억원을 거의 다 채웠다"고 했다. 상반기 수주액이 184억원으로 목표의 92%를 달성했다. 부채도 60억원 중 49억원을 변제해 연내에 다 갚을 것으로 보고 있다.

    회생 기업이 경영 정상화를 이루기까지 빨라야 3년, 길게는 7년쯤 걸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건축이 빠르게 살아난 비결은 뭘까. 김 대표는 "건축 회사는 제조·유통업과 달리 인적 자산이 핵심이어서 구성원들이 뭉친다면 다른 산업군보다는 회생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경영진과 임직원 모두 똘똘 뭉쳐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을 했다"고 했다.

    범건축 경영진부터 솔선수범했다. 거의 매일같이 단골 거래처 오너와 임원 집을 찾아다니면서 "범건축을 믿고 일을 맡겨달라"고 설득했다. 수주 영업을 진두지휘한 박형일 사장은 "우리가 불법 사건에 연루되거나 설계 경쟁력이 떨어져 어려움을 겪었던 것이 아니어서 오랜 신뢰 관계가 있던 거래처들이 다시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고 했다.

    직원과 협력회사의 희생도 큰 힘이 됐다. 김 대표는 "당시 체불 임금만 50억원 정도였는데, 전 직원의 80%가 밀린 급여나 퇴직금 일부를 포기하면서 구조조정에 동참했다"면서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범건축 회생에 동의하고 격려해 준 협력사가 없었다면 회생이 힘들었을 것"이라고 했다.

    범건축이 설계에 참여한 국내 최고층 빌딩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범건축이 설계에 참여한 국내 최고층 빌딩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범건축 제공
    임직원의 단합된 모습에 회생 담당 판사도 놀랄 정도였다. 대개 회생 기업은 채권자들이나 직원들이 '채무 상환, 임금 지급' 등을 주장하며 사옥을 점거하고 시위를 벌여 수시로 난장판이 벌어진다. 하지만 범건축은 딴판이었다. 당시 현장 점검을 위해 사무실을 찾았던 담당 판사는 모든 직원이 평상시와 다름없이 업무에만 집중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했다.

    범건축의 회생에는 또 다른 원동력도 있다. 바로 설계 경쟁력이다. 회생절차를 겪기 전까지 범건축은 호텔·초고층 빌딩·병원 등 특수 설계에 주력했다. 하지만 최근 2년여는 공동주택 시장도 적극 공략하고 있다. 올 상반기 수주액 절반(98억원) 정도가 주거 부문이다. 박 사장은 "올해 수주한 공동주택 5건 모두 지명 경쟁 입찰로 따냈다"면서 "업계에서 여전히 설계 경쟁력을 인정받고 있다는 증거"라고 했다. 발주처들이 범건축에 프로젝트를 맡긴 이유는 명확하다. 건물 디자인과 실시설계(실제 공사를 하기 위한 세부 도면)를 동시에 다룰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설계 회사라서다. 대부분 설계회사가 건물 외관은 화려하게 디자인해도 실시설계는 외주를 주는 것과 다르다. 박 사장은 "품이 많이 들어가지만 프로젝트별로 공사 기간을 단축하거나 사업성을 높일 수 있는 '맞춤형 설계'를 제안할 수 있어 발주처들의 신뢰가 높다"고 했다.

    앞으로 범건축은 기존 특수 설계 수주를 강화하면서 주택 설계 역량을 더 확장하기 위해 인력도 충원할 계획이다. 올해 경력 공채만 10여 명을 뽑을 예정이다. 개발할 땅은 있는데, 경험이나 인력이 부족한 기업들에 사업 초기부터 다양한 설루션을 제공하는 신규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김 대표는 "범건축이 무사히 재건하는 데 기여한 퇴직자와 임직원들에게 진심 어린 복지와 보상으로 보답할 수 있는 시기를 앞당기는 데 힘쓸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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