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5.30 05:45
[최광석의 법률톡톡] 전 세입자 극단 선택…새 매수인에게 알려줘야 할까
[궁금합니다]
‘전에 살던 세입자가 자살한 집’. 아무리 내 집 마련이 급해도 사회 통념상 이런 집을 사거나 전월세로 입주하기는 망설여지는 게 사실이다. 매매하거나 임대할 부동산에서 자살이나 살인 사건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면 이런 사실을 거래 상대방에게 알려줘야 할 의무가 있는 걸까. 부동산을 빨리 처분하려는 매도인들이 매매·임대차계약 전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해 제대로 고지하지 않았다가, 이 같은 사건을 나중에서야 알게 된 매수인·임차인에게 계약 해제나 취소를 요구받는 일이 적지 않다.
[이렇게 해결하세요]
결론부터 말하면 부동산을 거래할 때 해당 부동산에서 일어난 자살·살인 사건은 고지의무 범위에 속한다고 봐야 한다. 2015년 집주인 A씨는 세입자 B씨와 서울의 한 주택에 대해 보증금 1억1000만 원, 월세 25만 원 조건으로 반전세 계약했다. 계약 기간은 2015년 6월 10일~2017년 6월 9일까지 2년이다. 계약 후 석달쯤 지나자, A씨는 B씨의 아들로부터 “이사하고 싶다. 부동산 중개수수료를 부담할테니 집을 다시 내놓아도 되느냐”는 연락을 받았다. A씨는 수락했고, 얼마 후 C씨와 새 임대차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새 세입자와 계약 체결 며칠 뒤, 공인중개사가 A씨에게 들려준 충격적인 소식. B씨가 해당 주택에서 목을 매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B씨의 아들은 B씨가 사망한 지 단 2일 만에 집을 내놓겠다고 연락했다는 것이다. A씨는 워낙 민감한 사안이라 C씨에게 이런 사실을 감출 수 없다고 판단, 전 세입자의 자살 사실을 고지하고 C씨가 임대차계약을 지속할 것인지 선택할 시간을 줬다. C씨는 이사 날짜가 촉박해 계약은 유지하되 도배만 새로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곧바로 입장을 바꿔 자살한지 한 달도 안된 집에서 살 수는 없다고 했다. 결국 A씨는 C씨에게 계약금 등을 반환하고 계약을 해지했다.
A씨는 B씨의 아들에게 “새 임대차계약이 자살 사건 때문에 파기됐다. 동네에 흉흉한 소문이 퍼져 임차인 구하기가 더 어려워졌으니, 남은 임대차기간 1년 9개월을 채우고 나가달라”고 연락했다. 그러나 B씨의 아들은 “새 임차인을 구했다길래 당연히 계약이 파기된 줄 알았다. 빨리 전세보증금을 돌려달라”며 오히려 A씨를 상대로 임대차보증금반환 소송을 걸었다.
이와 비슷한 사건을 다룬 판례가 있다(부산지법 2010가소219998). 주거용 부동산(해당 판례의 경우 오피스텔)에서 살인사건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신의성실 원칙상 부동산 계약을 체결할 때 반드시 사전 고지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므로, 사건에 대해 고지받지 않은 세입자는 계약 취소나 파기를 요구할 수 있다는 판결이다. 이 때 고지의무 대상이 되는 것은 건축물 불법 증축 등 법으로 규정된 사실뿐 아니라, 관습·조리상 내용도 포함한다. 만약 고지의무를 위반했다면 부작위에 의한 기망행위에 해당하며, 거래상대방은 계약 취소·분양대금 반환·손해배상 청구 등을 요구할 수 있다. 따라서 법적으로 B씨의 자살 사실을 숨긴 B씨의 아들은 A씨와 C씨를 기망한 것이라고 본다.
A씨가 분쟁을 피하려면 어떻게 했어야 할까. 우선 주택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한 것을 알고 난 뒤에는 계약과 관련한 크고 작은 합의 내용을 모두 문서화해야 한다. 이 사건의 경우 A씨와 B씨의 아들이 ‘새로운 임차인이 구해지면 기존 임대차계약을 중도 해지한다’는 합의를 구두로 맺어 문제가 발생했다. 중도해지 조건에 대해 B씨의 아들은 ‘새로운 임차인과의 계약 체결’로 본 반면, A씨는 ‘새로운 임차인이 완전히 입주하는 경우’로 각자 다르게 해석한 것. 불필요한 소송 사건을 예방하려면 거래 규모나 내용에 걸맞는 적절한 계약 내용을 문서화할 것을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