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20.01.23 05:00 | 수정 : 2020.01.23 07:46
[미리 만난 건축주대학 멘토] 윤재선 팀일오삼건축사무소 소장 “주변 건물 문제 파악 후 차별화된 설계 전략 필요”
“설계에도 ‘전략’이 필요합니다. 어디에, 어떤 건물을 지을지 정했다면 그곳에 내가 짓고 싶은 것과 비슷한 기존 건물들이 갖고 있는 문제점부터 파악해야 합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설계를 적용한 건물은 당연히 임대시장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게 되죠. 자연스럽게 건물 공실이 줄고, 임대수익률도 오르죠.”
상가주택, 수익형 빌딩 설계에서 30여년간 잔뼈가 굵은 윤재선 팀일오삼건축사사무소 소장. 그는 연세대 건축학과에서 겸임교수를 맡고 있는 가운데 2013년부터 7년간 서울국제건축영화제 집행위원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경기 침체로 상가 공실률이 치솟는 요즘, 건물을 어떻게 지어야 성공할 수 있을까. 윤 소장에게 해답을 들어봤다.
―공실을 줄이는 설계가 따로 있나.
“‘이렇게 설계해야 공실률이 낮아진다’는 식으로 단정짓기는 어렵다. 어떤 건물을, 어디에 지을 것이냐에 따라 해답은 천차만별이다. 다만 설계부터 전략을 잘 짜야 완공 후 주변 건물보다 공실률을 낮출 수 있는 건 확실하다. 입지 분석을 통해 기존 건물이 안고 있는 문제점을 해소할 수 있는 건물을 지어야 한다. 해당 지역 임차인들이 공간을 쓰면서 어떤 불편함이 있는지도 파악해 설계에 반영하면 매력 있는 건물이 나온다.”
―입지 분석해서 지은 건물 예시를 든다면.
“경기도 성남시 서판교 지역에 2010년 완공한 4층 상가주택을 예로 들어보겠다. 서판교는 상가주택이 많이 포진한 곳이다. 그런데 하나같이 똑같은 구조다. 1층은 상가로, 2층 이상은 주거용으로 쓰는 식이다. 1층 상가는 카페 등 식음료 매장으로 통임대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판교같은 신도시는 임대시장이 자리잡는 데 5년 이상 걸린다. 당시 서판교 상가주택 1층에 입점했다가 1년도 못 버티고 나가는 매장이 수두룩했다. 1층에 하나뿐인 임차인이 나가면 건물주는 치명적인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기존 서판교 상가주택이 안고 있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설계에 착안했다. 1층이 45평인데, 샌드위치 패널과 경량칸막이를 설치해 점포를 4개로 쪼개 쓸 수 있도록 했다. 10~11평 점포 2개, 15평 1개, 13평 1개다. 각 공간마다 전기 배선과 상하수도를 미리 설치했다. 점포 크기가 줄어든만큼 월세를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었고 임차인들이 부담 없이 입점하는 효과가 났다. 무조건 통임대하는 주변 상가주택보다 훨씬 다양한 업종이 들어왔다. 당시 1층 점포를 통임대할 경우 월세는 250만~300만원이었는데 임차인 네 명을 들여 월세로 500만원 정도를 받았다. 건축비는 28억원이 들었는데 짓고 나서 7년쯤 지나서 42억원에 팔렸다.”
―요즘엔 건물 외관과 구조를 톡톡 튀게 설계하는 것도 유행한다.
“사실이다. 서울 서초구 서래마을에 외관을 곡선형으로 설계한 건물이 있다. 주변 건물이 전부 네모반듯한 점을 고려해 곡선을 썼더니 눈에 훨씬 잘 띄였다. 주차장을 건물 앞에 배치한 것도 다른 건물과 차별화한 대목이다. 대부분 도로에 붙여 건물을 짓고 주차장은 건물 뒷편에 둔다. 이렇게 되면 방문객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가 주차한 뒤 다시 앞쪽 건물로 걸어나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반면 주차장이 앞에 있으면 고객이 주차하고 곧바로 건물로 진입할 수 있다. 서래마을처럼 주차 공간이 부족하고 운전하기 힘든 지역일수록 이런 배치가 빛을 발한다. 건물이 뒤로 후퇴하면서 발생하는 심리적인 거리감은 건물과 대로변을 잇는 브릿지를 설치해 중화했다.
당시 주변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이 ‘디자인이 독특해 주변 점포보다 월세를 20% 정도 더 받을 수 있겠다’는 의견을 내놨다. 실제로 시세보다 15% 높게 임대료를 매겼다. 2014년 12월 31일 준공했는데, 다음해 1월 7일 모든 층(지하 1층~지상 3층)이 임대 완료될만큼 인기가 높았다. 우리나라에서 매출이 가장 많다고 알려진 편집숍 브랜드 ‘루밍’, 필라테스 학원 등이 들어왔다. 지금 서래마을 상가들이 공실로 고전하는 반면 외관 디자인만으로 인지도가 높아진 이 건물 임차인들은 나가는 법이 없다. 요즘도 주변 공인중개사들이 ‘찾는 사람이 많은데, 빈 점포 없느냐’며 먼저 연락할만큼 임대 시장에서 선호도가 높다.”
―공실을 걱정하는 건축주들에게 조언한다면.
“설계를 잘 해야 매력적인 건물이 나오고, 공실률도 낮출 수 있다는 건 사실이다. 그런데 아무리 좋은 건물도 건축주가 어떻게 운영하느냐에 따라 공실이나 수익률이 달라진다. 완공 초기보다 임대료를 지나치게 올리면 임차인에게 부담을 준다. 건물의 매력을 믿고 무조건 월세를 높이기보다 일정 부분 임차인과 상생(相生)하려는 의식을 가지고 건물을 운영해야 좋은 설계로 창출한 수익률을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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