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경사진 땅, 더 경사지게 하니 임대료 늘고 관리비 줄고

    입력 : 2019.08.31 04:56 | 수정 : 2019.09.03 07:52

    “건축사 입장에서는 ‘알아서 지어주세요’라고 하는 건축주를 만나는 것이 가장 난처합니다. 수익형 빌딩을 지으려는 건축주라면 자신의 취향이나 시장 트렌드를 파악하고, 이를 설계에 반영해달라고 건축가에게 주장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공실률을 줄이는 설계의 첫 걸음입니다.”

    상대정 YKH건축사사무소 대표. /이지은 기자

    연세대 건축학과를 나와 상업건물 설계만 30년째 맡아온 상대정 YKH건축사사무소 대표. 그는 땅집고 인터뷰에서 “수익형 건물 공실률이 치솟는 요즘, 건축주 취향이나 목표 의식 없이 지은 평범한 건물은 임대차 시장에서 도태될 수 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상 대표에게 공실률을 줄이는 설계 노하우를 들어봤다.

    ―요즘 수익형 빌딩 공실률이 증가하는 이유는.
    “온라인 쇼핑이 급속하게 확산하면서 오프라인 매장이 싹 빠져버린 영향이 크다. 물류가 발달한 서울·수도권 공실은 심각하다. 아무리 입지가 좋은 건물도 이 문제를 피해갈 수 없게 됐다. 뻔한 설계로 건물을 올리면 결국 건축주가 손해볼 가능성이 커진 셈이다.”

    ―설계로 공실을 줄이려면.
    “시장 트렌드를 찾아내서 잘 반영해야 한다. 요즘 상업용 건물 설계의 가장 큰 특징은 F&B(식음료) 공간을 최대한 많이 집어넣는 것이다. 물건 쇼핑이야 온라인으로 다 가능하다. 하지만 먹는 건 어쩔 수 없다. 매장에 들러야 하는 소비 구조를 수익형 빌딩 설계에 적용한 것이다. 시장 흐름을 잘 반영한 설계인 셈이다.

    상대정 대표가 설계한 경기도 파주 롯데프리미엄아울렛. /YKH건축사사무소

    건물을 올릴 땅이 가진 구조적인 문제를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은 살려야 세입자 구할 때 애를 덜 먹는다. 이 때 건축사와 건축주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내 건물을 주거·상업·업무 중 어떤 용도에 중점을 둘 것인지, 건물에 꼭 넣고 싶은 공간은 무엇인지, 외관 색깔은 어떻게 할지 등 건축주의 지향점이나 취향을 건축사에게 정확히 얘기해야 한다. 그래야 건축사가 문제를 쉽고 효율적으로 풀어내 최적의 해결책을 끌어낼 수 있다. ‘알아서 지어주세요’라고 하면 원하는 건물을 절대 얻어낼 수 없다.”

    ―대지의 단점은 보완하고 장점을 살린 설계란.

    YKH건축사사무소 사옥. 대지 북쪽과 남쪽의 고저차이가 심했다. /YKH건축사사무소

    대지 레벨 차이로 인해 생긴 깊은 계단. /YKH건축사사무소

    2017년 준공한 YKH건축사사무소 사옥을 예로 들고 싶다. 건물이 들어선 대지 북쪽과 남쪽의 땅 높이가 2m쯤 차이날 정도로 경사가 심했다. 업무용 건물인만큼 충분한 사무공간을 확보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대지 폭이 좁아 일반적인 피난계단이나 엘리베이터를 설계도에 넣고 나면 효율적인 사무 공간 배치가 어렵다는 것도 단점이었다.

    YKH사옥 지하 1층에 입점한 카페. /YKH건축사사무소

    오히려 경사도를 극대화해 부지가 가진 문제를 해결했다. 상대적으로 레벨(level)이 낮은 북쪽 대지는 1m 정도 더 파고, 남쪽 대지는 1m를 더 높였다. 북쪽을 지하 1층 출입구, 남쪽을 지상 1층 출입구로 정해 건물 양쪽으로 드나들 수 있게 했다. 그랬더니 대지 북쪽에서 볼 때 지하 1층 공간이 마치 지상 1층처럼 보이는 효과가 났다. 커피숍을 이 곳에 입점시켰다. 독특하고 아늑한 공간 분위기에 걸맞는 업종이다.

    건물 바깥으로 빼놓은 피난계단. /YKH건축사사무소

    피난 계단은 건물 바깥으로 뺐다. 효율적인 사무 공간 배치가 가능해졌다. 피난 계단에 냉난방을 하지 않아도 돼 관리비도 절감할 수 있었다.”

    ―설계비가 더 들어가지 않았나.

    설계비 책정 기준이 되는 건축사법 '건축사업무보수기준'. /국가법령정보센터

    설계비는 국토교통부 시행령 ‘건축사업무보수기준’에 따라 책정한다. 프로젝트마다 다르지만 설계비는 총 건축비의 3~5% 정도다. 실제 설계비는 이보다 줄어드는 경우가 더 많다. 하지만 싸고 평범한 설계로 건물을 올리면 수익형 빌딩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정당한 금액을 지불하고 건축사에게 ‘타임리스(timeless·시간이 흘러도 유행을 타지 않은)’한 설계를 받아야 건축주 수익에도 도움이 된다. 설계비를 더 내야 하는 상황이 와도 전체 공사비에서 보면 1~2% 정도 더 내는 셈이니 큰 부담은 아니다.”

    ―수익형 빌딩 신축을 앞둔 건축주에게 당부한다면.
    “건축주와 건축사가 만나는 건 부부의 연을 맺는 것과 같다. 좋은 건축사를 만나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 자체가 즐거워야 좋은 건물을 지을 수 있다. 건축사를 선정할 때 반드시 해당 건축사의 포트폴리오를 참고해야 한다. 건축사의 설계 실력을 검증하는 도구로 실제 완공한 건물만한 것이 없다. 말만 번지르르한 건축사를 만나면 인생에 한 번 뿐일 수도 있는 건물 신축 경험이 괴로워질 확률이 높다.”



    *땅집고가 검증한 최고 건축가와 시공사를 '땅집고 건축매칭서비스'(www.csacademy.kr, 02-724-6396)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sns 공유하기 기사 목록 맨 위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