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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확 띄는 건물? 튄다고 좋은 건물은 아니죠"

    입력 : 2019.07.13 05:41 | 수정 : 2019.07.13 09:20

    [젊은건축가상 수상자를 만나다] 이승환·전보림 아이디알건축사사무소 대표 "배경으로서의 건축 지향해야"

    2019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한 이승환(왼쪽), 전보림 아이디알건축사사무소 대표. /이지은 기자

    “외관 디자인이 지나치게 과장돼 마치 ‘나 여기 있소’라고 외치는 듯한 건축물이 많아요. 이렇게 주변 환경을 무시하고 건물만 주인공으로 삼는 건축은 시각적 충돌을 불러오기 마련이죠. 건물은 사용자와 환경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배경이자 매개체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배경으로서의 건축’을 지향해 온 이승환(46)·전보림(45) 아이디알건축사사무소 공동 대표가 2019년 젊은건축가상을 수상했다. 젊은건축가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한국 건축의 미래를 이끌 신진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문체부는 “공공건축에 얽힌 각종 문제를 사용자 중심 설계를 통해 유연하게 해결한 점이 돋보인다”라고 밝혔다.

    서울대 대학원 재학 중 부부 건축가가 된 이·전 대표는 건물 외관은 도시 질서에 순응하는 모습으로, 내부는 사용자와 주변 환경을 이어줄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고 믿는다. 둘은 2014년 아이디알건축사사무소를 함께 차렸다. 땅집고가 이들을 만나봤다.

    ―지금까지 맡은 5개의 프로젝트 중 공공건축이 3개나 된다.

    아이디알건축사사무소가 설계한 울산 북구의 매곡도서관. /전영호

    ▶이승환: 2014년 울산 북구에 있는 공공도서관인 ‘매곡도서관’ 설계 공모에 당선됐다. 사무소 문을 연 후 처음 맡은 프로젝트다. 첫 작업을 공공건축으로 시작하다 보니 다음 작업에도 영향을 준 것 같다.

    ▶전보림: 공공건축물은 불특정 다수가 장벽 없이 이용한다. 그만큼 설계의 가치를 사회에 보여줄 수 있는 셈이다.

    ―공공건축물 대표 작품을 꼽는다면.

    매곡도서관 내부. 다른 도서관과 달리 공간을 벽으로 구획하는 대신 '입구가 열린 느슨한 자루'처럼 유연하게 설계했다. /전영호

    매곡도서관의 내부 공간들을 하나로 연결하는 중심 경사로. /전영호

    ▶전보림: 매곡도서관을 소개하고 싶다. 사용자를 최우선으로 고려한 설계를 적용해,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도서관의 형식에서 벗어난 건물이다. 매곡도서관의 모든 열람실과 자료실에는 경계가 없다. 공간들이 건물 내부에 있는 중심 통로인 경사로를 따라 ‘입구가 열린 느슨한 자루’처럼 부드럽게 이어진다. 기존 도서관이 내부를 일정한 크기로 구획한 것과는 다르다. 사실 이런 설계는 개인적인 경험에서 착안한 것이다. 일반 열람실과 어린이 열람실이 구분된 도서관에 자녀를 데리고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이와 함께 책을 읽으려면 우선 일반 열람실에서 책을 대여한 후 다시 어린이 열람실로 들어가야 해서 번거로웠다. 사용자를 고려하지 않고 건물을 설계하면 이처럼 비효율적인 동선(動線)이 나오게 된다.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매곡도서관 외관 디자인. /전영호

    ▶이승환: 로비를 최소화하는 대신 열람실 공간을 충분히 마련한 것도 매곡도서관만의 특징이다. 관공서나 도서관 등 대부분 공공건축물은 로비 공간이 크다. 건물을 드나들 때 웅장하고 화려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설계하는 것이다. 하지만 로비는 건물의 본질이 아니다.

    ―상업건물 설계는 안하나.

    서울 중구 명동 '명동 센트럴'. 건물 소유주 13명을 골고루 만족시킬만한 설계가 필요했다. /노경

    ▶전보림: 올해 서울 중구 명동에 지은 ‘명동 센트럴’을 소개한다. 두 개의 매장을 얼핏 보면 하나의 건물처럼 보이도록 설계했다. 13명 공동명의(왼쪽 6명·오른쪽 9명·양쪽 2명)로 된 건물이어서 모든 건축주를 만족시키려면 각 동을 구분할 수 있는 외관 디테일을 부여하면서도 어느 한 동이 더 돋보이지 않도록 설계해야 했다. 위치가 명동이어서 공사 기간이 하루만 늘어나도 임대료 손실이 크기 때문에 공기를 줄이는 데도 집중했다.

    짙은 회색 벽돌로 장식해 두 건물에 통일감을 부여하면서도, 입면 높이에 차등을 둬서 건물을 적당히 구분하는 효과를 냈다. /노경

    ▶이승환: 오래된 건물이 즐비한 명동길에 ‘명동 센트럴’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두 건물 외관을 모두 짙은 회색 벽돌로 장식해 잔잔한 통일감을 주면서도 입면 높이에 차등을 둬서 적절히 구분하는 효과를 냈다. 이런 디테일이 건물 임대 활성화에 기여했다고 본다. 건축주들이 건물 신축을 결정하자 왼쪽 매장에 있던 A화장품 업체가 나가 새 세입자를 찾아야 했는데, 이 점포를 눈여겨 보던 MLB 매장이 새 건물의 계획안을 보고 입점 의사를 확정했다. 당시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망) 여파로 명동 상권이 고전하고 있었는데 새 세입자를 구한 ‘명동 센트럴’은 건축 설계의 효과가 얼마나 큰지 증명하는 사례인 셈이다. 건물 관리자에 따르면 각 점포 매상도 예상보다 높다고 한다.

    ―한국 건축 문화의 문제점을 짚어본다면.

    ▶전보림: 건축물 디테일의 중요성을 대중들이 잘 모르는 현실이 아쉽다. 유럽에서는 건물 하나를 짓더라도 건축가들이 열과 성을 다하고, 건축주는 이에 합당한 자금을 기꺼이 들인다.

    우리나라에서도 젊은층은 디테일의 중요성을 어느 정도 인식하는 분위기다. 아기자기한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다니며 구조, 인테리어, 분위기가 제각각인 것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끼고 SNS(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리는 청년들이 많다. 하지만 정작 건물을 지을만큼 자본력이 있는 중장년층은 아직 건축적 디테일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비용을 아끼려고 가장 저렴한 설계비를 제시하는 설계자를 찾거나, 최대한 무난한 건물을 지어달라고 하는 등이다. 임대수익과 직결되는 건물일수록 더 섬세한 차별화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서울 강남구 압구정초 다목적강당. 종이접기에서 착안한 외관 디자인. /노경

    ▶이승환: 유럽과 달리 한국에는 ‘어떤 것이 좋은 공공건축인가’라는 공감대가 아직 없는 것 같다. 영국에서는 바람직한 도시 환경을 조성해나가는 데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돼있고, 공공건축물을 세우는 데도 충분한 투자를 한다. 특히 런던은 예전에 스모그로 많은 국민들이 사망한 적이 있어서 그런지 공기 청정 도시를 만드려는 의지가 강하다. 우리나라 역시 미세먼지 문제가 심각하지만, 서울이라는 도시 자체가 사람이 아닌 자동차 위주로 만들어져 있어 환경을 바꾸는 데 한계가 있다. 도시 건축의 기본적인 틀을 어떻게 짜야 할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는.

    ▶이승환: 공공건축 작업을 하며 쌓아온 건축물에 공공성을 어떤 방식으로 부여해야 하는지에 대한 노하우를 쌓았다. 이 공공성을 민간건축 분야에서도 자유롭게 구현해보고 싶다.

    ▶전보림: 건축 설계의 중요성을 일깨워줄 수 있는 작업이라면 어떤 일이든 맡을 준비가 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좋은 건축 설계의 가치를 알릴 수 있는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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