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9.07.08 05:03
“우리 아파트를 지나가려면 돈을 내세요.”
아파트 주민들이 단지 안을 통과하는 외부 차량에게 통행료를 걷는 것은 합법일까? 불법일까?
서울의 한 대단지 아파트는 2017년 6월부터 올 4월까지 아파트를 출입하는 외부 차량에게서 통행료를 받았다. 현재는 구청이 내린 행정명령에 따라 통행료 징수가 잠정 중단된 상태다.
문제의 아파트는 서울 성북구 돈암동 한신한진아파트다. 최고 21층 31개동에 4515가구 대단지다. 이 아파트가 차지한 땅덩어리는 돈암동 전체 면적의 6분의 1에 달할만큼 크다. 유치원과 초·중·고를 끼고 있고 스포츠센터 등 상업시설도 있다. 아파트 단지 내 도로가 돈암동에서 서울 도심으로 가는 지름길이어서 외부 차량 통행량도 많다.
그런데 입주민들은 외부 차량 출입이 워낙 잦다 보니 매연·소음·진동·주차난 등으로 불편이 이만저만한 게 아니었다. 결국 입주자대표회의는 주민 투표를 거쳐 2017년 6월부터 외부 차량에게 통행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아파트로 들어오는 출입구 총 10곳에 차량 차단기 5개를 설치하고, 단지를 드나드는 외부 차량에게 2000원씩 걷기로 한 것이다.
■ “매연·소음 탓에 못 살겠다” vs. “너무 이기적”
돈암동 일대 주민들은 한신한진아파트 측의 갑작스러운 통행료 징수에 강하게 반발했다. 자녀를 학교에 데려다주거나 출퇴근할 때 이 아파트를 가로질러 가는 것이 훨씬 효율적인데, 입주민들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동네 전체가 피해를 입게 됐다는 주장이다. 돈암동 주민 최모씨는 성북구청에 “아파트 바로 옆 독서실에 자녀를 데려다 주느라 이 아파트를 지나갈 수밖에 없는데, 고작 3분 후 돌아서 나오는데도 매번 2000원을 지불해야 한다”며 “여러 도로와 접하고 있어 동네 주민들의 통행이 잦은데도 통행료를 징수하는 것은 부당하고 이기적”이라는 민원을 제기하기도 했다.
돈암동에서 서울 광화문 등 도심으로 출퇴근하는 인근 주민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아파트 내부 도로를 통과하면 3분밖에 걸리지 않는데 인근 도로로 우회하면 10분 이상 걸린다.
돈암동 주민들의 민원이 빗발쳤지만 구청도 속수무책이었다. 아파트 차단기 강제 철거 조치를 내릴 수 없었다. 사유재산인 아파트 출입구를 차단하는 행위는 입주민들이 안전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것인만큼 막을 수 없다는 것.
2017년 8월 개정한 공동주택관리법 시행령도 아파트 주차장 등을 외부인에게 유료로 개방하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에 한신한진아파트 사례는 법적 문제가 없었다.
그나마 성북구청은 한신한진아파트 측의 요금 부과 절차를 문제삼아 행정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아파트 입주민들이 단지 내 도로 통행 관련 유료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먼저 관할 구청과 협의해야 하는데 그런 조치가 없었다”며 “정당한 절차를 거쳐 다시 통행료를 부과한다면 막을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 “통행료 징수 막을 길 없어…서로 배려해야”
외부 차량에게 통행료를 받는 아파트는 더 있다. 통행료 징수 이유는 한신한진아파트와 비슷하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고매동 ‘우림홀인원아파트(299가구)’도 단지 내 100여m 도로를 지나는 외부 차량에게 통행료 3000원을 받는다. 단일 단지로는 국내 최대인 부산시 남구 용호동 ‘LG메트로시티(7374가구)’도 출입구에 차단기를 설치하고 통행료를 징수하는 통합경비시스템 구축 계획을 발표했다.
함인선 한양대 건축학과 겸임교수는 “아파트 입주민들 입장도 이해한다”면서도 “단지 안 도로가 사유재산이지만 땅은 한정된 자원인 만큼 공공재 측면도 있고, 통행료 징수 문화가 확산되면 지역 사회 단절 현상이 심화될 우려가 있다”고 했다.
└건물 한번 올리고 나면 10년은 늙는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