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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싸게 지어준다니 봉 잡았다고? 엄청난 착각"

    입력 : 2019.04.05 05:05

    [인터뷰] 박승배 한미글로벌E&C 대표 "시공사 말만 믿고 싸게 한 계약, 분쟁 각오해야"

    박승배 한미글로벌E&C 대표. /최윤정 기자
    “모든 건축주들이 흔히 하는 엄청난 착각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나는 ‘좋은 건물을 싸게 잘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박승배(63) 한미글로벌E&C 대표는 현재 국내 민간 건축시장의 가장 큰 문제점을 공사 발주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바로 최저가, 즉 가장 싸게 지어주겠다는 업체에게 공사를 맡기는 것이다.

    “무조건 공사를 싸게 잘 해주겠다는 시공사 말만 믿고 터무니 없이 낮은 가격에 계약하는 건축주가 대부분이죠. 건축주는 운이 좋아서 비용을 아꼈다고 생각하겠죠. 하지만 시공사는 돈을 받은 만큼만 일하려고 합니다. 결국 건축 품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고 분쟁이 끊이질 않는 겁니다.”

    연세대 도시공학 박사를 받은 그는 극동건설과 삼양건설산업 등을 거치며 40여년간 세계 곳곳 건설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KLCC 타워 등을 시공한 그는 “공사 기간은 단축하고 품질을 높이는 방법이 있는데도 건설 주체들이 개선 필요성을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한미글로벌E&C가 2006년 책임형 CM을 적용해 공기를 30% 정도 단축한 홈플러스 논산점. /한미글로벌E&C

    ■ “저가 입찰과 설계-시공 분리로 부작용 많아”

    “미국에선 1930년대에 이미 102층 짜리 뉴욕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13개월만에 완성했어요. 세계에서 알아준다는 한국 건설 업계라면 지금도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라고 봅니다. 다만 하지 않을 뿐이죠.”

    이게 무슨 말일까. 박 대표는 “국내 시장에서는 건설업체가 공사 기간을 단축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오로지 비용 잣대만 들이대는 건축주가 대부분이어서 가장 저렴한 업체만 찾아 발주하다 보니 공기를 줄이거나 품질을 높여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또 다른 문제점은 설계도가 나온 이후 시공사와 계약하는 시스템이다. 박 대표는 “소모적인 건설 분쟁을 막으려면 설계와 시공을 별개로 취급하는 관행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 국내에서는 건축사사무소가 큰 틀만 잡고 구조 설계, 냉난방ㆍ전기 설비 등 세부 요소는 전문 설계사에 하청을 주는 경우가 많아요. 문제는 작업자마다 기준이 제각각이어서 필요 이상으로 과한 설계가 되거나 세부 사항이 조율되지 않은 채 최종 설계가 나온다는 겁니다. 시공사는 수주에 목마르기 때문에 문제점을 알고도 무조건 따고 보자며 저가로 입찰합니다. 결국 실제 공사에 착수하면 현실에 맞지 않는 설계 부분이나 빈틈이 발견되는 겁니다.”

    박 대표는 “공사 과정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추가 비용이 발생해 분쟁 여지가 생기는 것”이라며 “설계 도서에 시공에 필요한 정보를 충실히 담아야 시행착오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남 남해에 지은 사우스케이프 CC. /한미글로벌E&C

    ■ “책임형 CM 도입으로 공사기간 30% 줄어”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풀어줄 해법은 없는 걸까. 박 대표는 책임형 CM(CM at risk)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책임형 CM이란 CM업체가 공사비 최대 한도와 공사 기간을 미리 정해 놓고 이를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 책임을 지면서 직접 공사를 수행하는 방식이다. 건축주를 대신해 건축의 시작부터 끝까지 책임져 주는 일종의 코디네이터 역할이라고 보면 된다.

    최대 공사비 한도를 정해 발주자와 계약하기 때문에 추가로 발생한 공사비나 공사 지연에 대한 책임도 CM 업체가 진다. 기획, 타당성 검토, 설계사 선정, 사업비 관리 그리고 시공사 역할까지 모든 단계를 통합 관리하기 때문에 하도급 단계가 줄어 비용과 공사 기간 절감도 기대할 수 있다.

    실제 충남 논산시 홈플러스 논산점의 경우 책임형 CM으로 공사 기간을 30% 단축해 조기 개점에 따른 부가적 수익을 얻었다.

    박 대표는 “미국이나 유럽에선 2000년대 초부터 책임형CM이 널리 사용됐을 만큼 합리성을 인정받고 있다”면서 “국내에서도 대기업과 정부 기관에서 많이 도입하는 추세”라고 했다. 다만, 규모가 작은 민간 건설 시장에서 아직 보편화한 방식은 아니다.

    책임형 CM공법을 적용한 인천 씨티전기 공장. /한미글로벌E&C

    ■ “건설 사업에서 시간은 돈”

    우리나라에 책임형CM이 필요한 이유에 대해 박 대표는 한마디로 “건설 사업에서 시간은 돈”이라고 했다. 공사 중 문제가 생기면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건물에서 수익을 내야 하는 건축주 입장에서는 공사가 멈추면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늦춰지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책임형CM의 핵심은 설계 단계부터 시공 전문가가 참여하는 것”이라며 “시공은 설계 도면을 그대로 실현하는 작업이어서 설계에 모든 내용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사전에 설계 검토를 하면 현실적으로 시공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담을 수 있어 추가 공정 없이 그대로 설계도서를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이다.

    공사 기간이 줄어드는 것은 물론 설계를 점검하면서 최저가 입찰이 아닌 협상을 통해 공사비를 결정하기 때문에 투명하게 견적을 따져볼 수 있는 것도 장점이다.

    책임형 CM을 이용하면 설계 후 시공사 선정에 소요되는 2~3개월의 발주 기간을 절약하는 효과가 있으며, 설계 완료 전 미리 공사를 시작하는 조기 착공 방식도 가능하다.

    그는 “책임형CM은 단지 비용을 절약하는 것을 넘어 그동안 시공 과정에서 소홀했던 시간과 품질 등의 가치를 되찾기 위한 목적”이라며 “규모에 상관 없이 모든 건설 과정에 원칙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지상과 지하에서 동시에...방배동에 무슨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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