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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한 항목만 넣은 '갑질 계약서' 되레 건축주 손해"

    입력 : 2019.03.22 06:00 | 수정 : 2019.05.01 20:36

    박정수 트래콘건설 부사장 "누가 봐도 납득할 만한 계약서 작성해야 분쟁에서 유리"

    “건축물은 완벽한 상품이 될 수 없습니다. 통제된 환경에서 생산하는 공산품과 달리 건설 시공은 시시각각 바뀌는 현장 상태에 따라 오차를 최소화하는 과정이죠. 상상했던 건물이 저절로 올라간다고 생각해선 안됩니다.”

    박정수 트래콘건설 부사장. / 최윤정 기자
    건축주가 되기 위한 과정 중 대부분 분쟁은 시공 단계에서 발생한다. 본격적으로 건물이 모습을 드러내면서 예상치 못한 변수가 튀어나온다. 박정수(55) 트래콘건설 부사장은 “많은 건축주가 시공사 선정 시 견적에만 집중하느라 더 중요한 단계를 놓친다”며 “서로 다른 입장을 가진 주체가 협력해서 결과물이 나오는 만큼 한단계만 허술해도 전체 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했다.

    박 부사장은 연세대학교 건축공학 석사 졸업 후 공영토건·신세계건설·시공테크 등 건설ㆍ설계 회사를 거쳐 2007년부터 트래콘건설에 합류했다. 2005년부터 호원대학교 건축학과 겸임교수로서 현직 건축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건축 환경 과목을 지도하는 ‘전문가의 전문가’로 활동 중이다. 실무 경험에 기초한 빛, 소리, 온도 등 공간 공학을 통해 더 체계적인 설계가 이뤄지도록 이끄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현장 설명이 잘 이뤄져야 제대로 된 견적이 나오고, 잘 짜여진 견적이 좋은 계약서를 만든다”면서 “건축주와 설계자, 시공자는 잘 맞물린 톱니바퀴처럼 돌아가야 한다”고 했다. 공사 과정에서 소모적인 분쟁이 발생하지 않도록 건축주가 큰 그림을 봐야 한다는 것이 그가 말하는 핵심이다.

    유리, 석재 등 속성이 다른 외장재로 조형미를 강조한 서울 강남구 청담동 업무 시설로 2015년 강남구 아름다운 건축물 작품상을 수상했다. / 트래콘건설

    ―건축주가 꼭 알아야 할 시공의 5단계가 있다는데.
    “최종 설계가 나오면 시공사는 현장 설명, 입찰, 시공사 선정과 계약, 공사, 준공까지 5가지 단계에 관여하게 된다. 사후 관리까지 하면 6가지인데 이런 흐름을 꿰고 있어야 합리적으로 건설사를 상대할 수 있다.”

    ―현장 설명에서 건축주가 해야 할 역할은.
    “현장 설명은 입찰 전 시공사들에게 2차원 도면과 추상적 개념을 3차원 현실에 구현하도록 이해시키는 단계다. 그만큼 의미 전달에 충실하지 않으면 오해가 생기기 쉽다. 같은 내용을 듣고도 견적서가 제멋대로 나오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런데 많은 건축주가 이 단계를 설계자에게 맡기려고 한다. 물론 설계자가 말을 많이 할지는 몰라도 건축주의 한마디가 더 중요하다. 요구사항이 꼼꼼할수록 시공사 입장에서도 견적을 낼 때 두루뭉술하게 어림잡지 않고 정확한 금액을 책정할 수 있다.”

    ―시공사 선정시 알아야 할 기준이 있다면.
    “입찰 참여 업체의 시공 경력과 재무 상태 점검은 기본이다. 다음으로 견적을 확인해야 한다. 총액 계약(공사·제조에서 총 가격을 대상으로 체결하는 계약)을 기본으로 하는데 평균보다 낮은 금액을 제시하는 업체는 의문을 가져봐야 한다. 필요 항목이 빠진 채 견적을 내면 총액으로 봤을 때는 저렴해도 착공 후 추가 비용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심하면 소송까지 각오해야 한다. 재무 상태도 건전하고 견적도 합리적이라면 그 업체는 꼭 잡으라고 하고 싶다.”

    2015 강남구 아름다운 건축물 작품상 수상한 업무 시설 시공 사례. / 트래콘건설

    ―잘 쓴 계약서는 무엇으로 판단하나.
    “건축주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 중 하나는 의도치 않게 ‘갑질 계약서’를 쓴다는 것이다. 정보력이 더 좋은 전문가를 상대한다는 생각에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본인에게 유리한 항목을 잔뜩 넣는다. 예를 들면 ‘터를 닦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는 모두 시공사가 책임진다’와 같은 내용이다. 문제는 불공평하게 작성한 계약서는 소송에서는 법적 효력을 잃는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납득할만한 계약서를 작성해야 공사 과정에서 의견 차이를 효율적으로 조율하고, 혹시 모를 분쟁에도 잘 대처할 수 있다.”

    ―불합리한 시공 계약을 중재할 수 있는 방법은.
    “시공 경험이 많거나 규모가 큰 업체라면 미리 건설산업기본법을 파악하고 건축주에게 안내한다. 그런데 소규모 업체는 그렇지 못할 때가 더 많다. 나쁜 의도를 갖지 않아도 서로 몰라서 결국 싸우는 일이 허다하다. 최선의 방법은 국토교통부가 고시하는 ‘민간건설공사 표준도급계약서’를 따르도록 권장한다. 수많은 민간 건설사와 개인 간 소송을 바탕으로 제3자 입장에서 작성한 내용이어서 객관성을 유지하는 만큼 가급적 원문을 준용(準用)하는 것이 좋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이노센스 빌딩' 시공 사례. 건물 전체를 감싸는 사선을 적용한 외관이 독특하다. 2015년 강남구 아름다운 건축물 작품상을 수상했다. / 트래콘건설

    ―예비 건축주에게 당부한다면.
    “시공은 결국 돈이나 기술이 아닌 사람을 다루는 작업이다. 기계와 공법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 손을 거치지 않고 건물이 만들어질 수는 없다. 설계부터 견적, 계약이 차근차근 선행되어야겠지만 최전선인 현장 작업자의 손끝에서 완성도가 결정된다. 큰 어려움 없이 준공까지 잘 마무리한 건축주들은 현장 소장을 포함한 기능공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표현하고 가까이 지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건설을 뜻하는 영어 단어 ‘Construction’는 함께라는 뜻의 ‘Con’이라는 어원을 포함한다고 한다. 그만큼 건축주와 설계자, 시공자가 모두 성실한 마음으로 대해야 좋은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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