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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형 건축물? 지금 서울에 필요한 건 '동네 문화'"

    입력 : 2019.01.31 04:07 | 수정 : 2019.02.01 08:13

    [인터뷰] '서울시 3대 총괄건축가' 김승회 서울대 교수

    서울시의 세번째 총괄건축가로 위촉된 김승회 서울대 교수. 지난 8일 서울시청 도시공간개선단 사무실에서 만난 그는 위성사진으로 찍은 서울시 지도 앞에서 "서울 곳곳의 점처럼 흩어진 문화적 자산을 연결해 스토리를 만드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상빈 기자

    “서울시에 ‘마을 건축가’라는 제도를 적극적으로 도입해 보려고 합니다.”

    땅집고는 최근 서울시 3대 총괄건축가로 위촉된 서울대 김승회 교수를 만났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공공건축물, 도시계획, 조경, 공공시설물 등 공간 환경 전반을 기획·자문한다. 서울시 총괄건축가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전반적인 방향성과 구체적인 모습을 결정한다. 재건축·재개발 사업에도 총괄건축가의 의견이 직·간적적으로 반영된다.

    김 교수는 땅집고 인터뷰에서 “서울은 이미 가득 채운 도시”라고 말했다. 이미 필요한 건축물이 가득차 있고, 여기에 또 랜드마크가 될만한 건축물을 짓는 것이 쉽지 않고, 그럴 필요도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그는 “지금 서울에 필요한 것은 시민들이 쉽게 이용하고,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작은 공간과 시스템”이라며 “마을 건축가 제도를 통해 이런 공간과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성남 이우학교, 세계장신구 박물관, 서울대 환경대학원 건물, 전국 각지에 20여곳의 보건소를 짓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지난 2년 동안은 서울시교육청에서 총괄건축가직을 역임하면서 아이들과 교실을 함께 짓는 ‘꿈담교실’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Q.서울은 어떤 도시라고 보는가?
    “600년 된 도시인 서울은 집단의 기억이 곳곳에 남아 있다. 흔적은 많이 없어졌지만 한강과 산, 궁궐, 성곽 등이 서울의 옛 기억을 담고 있다. 용산과 영등포, 종로와 을지로에는 근대 공간. 1970년대 도시계획으로 생긴 여의도와 강남, 1980년대 올림픽을 위한 공간들, 1990년대 이후 생긴 IMF의 상흔은 물론 홍대, 연남동, 성수동 등 동네 문화나 아이돌그룹과 한류 등 새 문화가 깃든 최신의 유산도 있다. 서울은 이런 여러 가치와 여러 시대가 공존하는 곳이다. 모두가 서울의 유산이다.”

    Q. 서울이 건축적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예전엔 우리 사회가 선진 문명을 받아들이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나라가 만든 물건이 전세계로 퍼져나가고 있다. 우리의 최첨단 기술이 들어간 휴대폰이 전 세계에서 팔리고 있지 않나. 우리나라의 문화와 도시도 세계로 전파될 수 있다. 우리가 축적한 시간과 그 시간이 쌓인 공간이 서울과 대한민국의 정체성으로 자리잡을 것이고, 이것을 외국인들에게 알려야 한다. 이를 위해 중요한 것은 ‘동네’다. 개성있는 문화가 자리잡기 위해선 동네 문화가 활성화돼야 한다.”

    서울 중구 다산성곽길에서 열린 한양도성 다산성곽길 예술문화제 현장. 조선시대에 지어진 성곽길과 근대 이후 지어진 집들의 풍경이 공존한다. /조선DB


    Q. 구체적으로 어떤 동네를 만들고 싶은 것인가? 아파트로 가득한 서울에서 옛스런 ‘동네 문화’를 떠올리긴 쉽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일상의 건축, 즉 우리의 생활을 돕는 시설과 장소를 개선해야 하는 시점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시민과 건축가들이 일상의 공간이 개선하는데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울시의 건축도 아이를 돌보는 어린이집, 학생들이 운동하는 체육관, 노인들이 여가를 보내는 마을회관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투자해야 한다.

    서울 송정초등학교 '꿈담교실'. /서울시교육청

    서울의 각 마을 공간을 기획하는데 도와줄 수 있는 마을건축가제도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 어린이 돌봄교실도, 동(洞) 주민센터도 마을건축가의 도움을 원하고 있다. 올해 안에 운영 체계를 확립하려고 한다.”

    Q. 올해는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년이 되는 해다. 프랑스와 미국은 각각 시민혁명, 독립선언 100주년이 되던 해에 에펠탑과 자유의 여신상을 지었다. 우리나라는 이런 상징적 건축물이 부재하단 지적도 나오는데.

    “정부 주도에 도시에 대형 상징물을 만드는 것은 지금 같은 시대에 맞는지는 좀 의문이다. 1990년대 정부 차원에서 새 천년을 상징하는 건축물을 짓겠다며, 상암동 한강변에 ‘천년의 문’이란 프로젝트를 진행된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무산됐다. 이런 대형 건축물을 짓는 것이 시대적인 흐름에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본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 새로운 천년과 2002 월드컵 대회를 맞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에 설치하려 했던 국가상징 조형물 '천년의 문' 프로젝트 당선작 사진. 파리 에펠탑에 버금가는 국가 상징물을 설립한다는 취지였지만 총사업비가 300억원에서 550억원으로 늘어나 재원확보 방안의 문제가 있었고, 안전성에 대한 의문 역시 제기되면서 백지화됐다. /조선DB

    에펠탑이나 자유의 여신상은 물론 도시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건축물이긴 하지만, 그 건축물을 세울 때 시대적인 상황과 사상이 반영된 것이다. 정부 주도로 초대형 건축물을 만드는 것은 지금 같은 시대에는 맞지 않다.”

    Q. 서울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까? 현재 기술 중에 어떤 것이 건축과 도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게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현재 논의되는 여러 신기술 중에는 자율 주행차를 꼽고 싶다. 자율주행차와 공유 방식이 결합하면 도시 건축의 많은 부분이 바뀔 것이다. 주차, 도로계획, 물류체계 등 많은 것이 바뀌면서 도시와 건축에서 큰 변화를 가져오리라고 생각한다.”

    경기 성남시 분당에 있는 대안학교인 이우학교의 ‘실험과 상상’ 공간. 코워킹 시대에 맞는 공간 실험을 하고 있다. 모든 시설에 바퀴를 달아 공간 사용의 성격에 따라 형태를 변경할 수 있다. 김 교수는 이우학교의 설계자다. /조선DB

    Q. 앞으로 계획은.

    “좋은 건축가가 공공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고, 건축가와 시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가 도시 건축 전반에 반영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려고 한다. 마을 건축가 시스템도 그 중 하나가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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