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학교·아파트·납골당…네모난 건물에 갇혀 사는 한국

    입력 : 2018.11.30 16:10 | 수정 : 2018.11.30 16:14

    [2018 조선일보 라이프쇼] 유현준 홍익대 교수
    ''폐쇄된 아파트 공화국'에 사는 시민들에겐 도시의 작은 공원이 중요"
    "획일적인 건물 모양, 아이들 사고방식에 악영향…건축 방식 돌아봐야"

    “크기로만 따지면 서울에 공원이 부족한 것도 아니죠. 하지만 집에서 한 시간 넘게 걸어야 공원이 있다는게 문제입니다. 회사원이 평일에 ‘반차’를 쓰지 않는 이상 찾을 일이 없는 공원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유현준 홍익대 교수. /조선DB

    조선일보가 최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개최한 ‘2018 라이프쇼’에 ‘어디서 살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한 유현준(49) 홍익대학교 교수는 “집 근처에 있는 작은 공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연세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한 유 교수는 미국 MIT와 하버드대에서 건축설계 석사를 받았다. 시카고 아테나움 건축상, 독일 디자인 어워드, 아시아건축가협회 건축상, 젊은 건축가상 등을 수상했고, 방송과 강연을 통해서도 유명해졌다.

    ■“아무리 좋은 공원도 집에서 1시간 걸린다면…”

    유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폐쇄된 ‘아파트 공화국’에서 살고 있는 시민들이 소통하고 교류하기 위해서는 도시의 작은 공원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우리나라 국민 60% 이상은 아파트에 산다. 이에 따라 멀리 외출하지 않아도 아파트 단지 내 상가와 모바일 쇼핑을 통해 웬만한 상거래가 해결되다 보니 다양한 이웃과 만나 소통할 기회가 사라졌다고 진단했다.

    서울 마포구 난지한강공원. /조선DB

    유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시민들을 연결해 줄 수 있는 공간으로 ‘공원’의 중요성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서울의 경우 공원 면적이 다른 나라 대도시에 비해 부족하지는 않다. 문제는 집에서 멀다보니 외출하려고 ‘결심’을 하지 않고서는 공원에 갈 일이 없다는 점이다.

    실제로 서울에는 남산공원(102만9300㎡), 서울숲공원(48만994㎡) 같은 초대형 공원이 있다. 도시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수변공원인 한강시민공원은 세계적으로도 찾아 보기 힘든 거대한 공원이다. 하지만 대부분 집에서 먼 것이 문제다.

    미국 맨해튼과 서울의 공원 분포도 차이. /유현준 홍익대 교수

    미국 뉴욕 맨해튼에 있는 공원과 공원 사이 평균 거리는 1.04㎞, 각 공원으로 이동하는 데 걸리는 평균 시간은 걸어서 13.7분 정도다. 하지만 서울의 경우 공원간 평균 거리는 4.02㎞로 맨해튼보다 4배 정도 길다. 평균 이동 시간도 1시간 1분 정도다.

    뉴욕 맨해튼은 공원 분포도가 높아 다양한 계층이 화합하고 소통하는 효과를 낸다. /조선DB

    아무리 좋은 공원도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으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유 교수는 “직장인이 평일에 공원에 한번 가려면 ‘반차’ 정도는 써야 하기 때문에 공원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는 1000평짜리 공원 1개를 만드는 것보다 100평짜리 공원 10개를 만드는 방식이 활용도가 높고, 계층간 화합도 이끌어낼 수 있다고 했다.

    ■학교ㆍ아파트ㆍ납골당까지…태어나 죽을 때까지 획일적 공간 많아

    우리나라 국민들은 천편일률적으로 설계된 주거 환경에 갇혀 있다. /조선DB

    유 교수는 이날 강연에서 우리 사회에서 소통이 부족해지는 원인 중 하나로 ‘건축의 획일화’을 꼽았다. 사는 공간이 사람의 특성을 규정하는데, 획일화한 건물에서 생활하다 보니 다양성을 무시하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국민들은 태어나 죽을 때까지 천편일률적으로 짜여진 공간 안에 머문다”며 “학교, 아파트, 납골당까지 똑같이 설계된 공간에 머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스 모양의 획일적 모양으로 지어진 한국의 전형적인 학교. /내정중학교 홈페이지


    획일적인 학교 건축 방식도 한번쯤은 고려해 봐야 한다. 우리나라 학교는 보통 5층 높이 박스형 건물이 많다. 교실 천장은 교육부에서 2.6m로 고정했고, 운동장은 전부 담장에 둘러쌓여 있다. 유 교수는 “획일적인 모양의 학교에서 생활하다 보니 아이들 사고 방식에 다양성이 부족해지고, 주거 형태도 모두 ‘비싼 아파트’를 최고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유현준 교수가 제안하는 새로운 학교 설계. /땅집고

    유 교수는 한국 사회가 어느 정도 발전한 만큼 학교 건축 방식도 바뀔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5층짜리 대형 건물 하나로 이뤄진 학교 대신 1~2층짜리 저층 건물 여러 개를 지어 마을 같은 구조로 가야 한다”며 “이런 구조라야 아이들의 창의력도 커지고, 쉬는 시간에도 건물 사이를 오가며 외부 환경과 접하는 시간도 늘어난다”고 했다.

    이어 “지속 가능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로 가기 위해선 우리가 사는 공간부터 다양해져야 한다”며 “학교와 집의 형태가 다양해져야 하고, 다양한 사람이 교류할 수 있는 작은 공원이 지금보다 더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sns 공유하기 기사 목록 맨 위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