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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이 뉴욕보다 파격적 건물 짓기엔 더 낫죠"

    입력 : 2018.10.29 05:00

    [젊은건축가상 수상자를 만나다] 김이홍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2018년 젊은건축가상을 받은 김이홍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 /이상빈 기자

    미국 뉴욕 맨해튼에는 6만동이 넘는 건물이 있다. 이 가운데 뉴욕 맨해튼 130번가엔 한국의 젊은 건축가가 직접 설계한 이색적인 건물이 있다. 주인공은 올해 문화체육관광부가 선정하는 ‘2018년 젊은 건축가상’을 받은 김이홍 홍익대 건축도시대학원 교수(38·김이홍 아키텍츠 대표).

    젊은 건축가상은 한국 건축의 미래를 이끌어갈 우수한 신진 건축가에게 수여하는 권위있는 상이다.

    그는 연세대 건축공학부, 미국 하버드 건축대학원을 나와 세계적인 건축가 스티븐 홀(Holl)과 함께 일했다. 이후 개인사무소를 열고 맨해튼에서 활동했다. 그의 이력 중 눈에 띄는 대목은 맨해튼에서 6층짜리 콘도미니엄(아파트)을 설계한 것.

    땅집고는 지난 12일 김 교수를 만나 그의 건축 세계와 그가 몸소 체험한 미국건축과 한국건축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그는 “재미있게도 서울이란 도시가 건축하는 사람에겐 더 좋은 환경인 동시에 진보적인 환경일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가 미국 뉴욕시 130번가에 설계한 '57E130 콘도미니엄'. /ⓒ이호경

    -서울이 더 건축하기 좋고 진보적 환경이란 것은 무슨 뜻인가?
    “뉴욕은 도시 건축의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건물 지을 때 역사적 맥락을 고려하는 것은 필수다.

    반면에 한국은 건물 앞에 마당을 둘 수 있고, 주차공간도 확보하는 등 설계 과정에 여러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일조권에 따른 사선(斜線) 제한이나 건물 이격거리만 지키면 대지 내에선 어디에 지어도 상관 없지 않나. 뉴욕보다 좀 더 실험적인 시도를 할 수 있는 것 같다.”

    -미국도 한국처럼 건축 규제가 까다로운가.
    “그렇다. 큰 규모의 프로젝트가 아니더라도 미국은 인허가 과정이 짧게는 6개월에서 최대 1년까지 걸린다고 봐야한다. 한국에서는 문제가 없으면 2~3주면 끝나는 것과 다르다.

    느린만큼 제도가 엄격하고 더 제대로 살펴본다. 인허가를 받으려면 만나야 하는 팀이 많고, 시스템도 많다. 짓는 것 자체가 까다롭고 인허가 받아 시공하는 게 쉽지 않다. 공사 중에도 현장에 수시로 나와 안전 문제를 확인한다.

    다만 설계 시간이 충분하게 주어지다보니 심사숙고할 수 있는 건 장점이다. 뉴욕의 건축 환경은 서울과는 너무 다르다.”


    김 교수가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본사 공사현장에 설치한 '진짜와 가짜 사이'. /ⓒ배지훈, 김이홍

    -건축 설계에서 어떤 점을 가장 중시하나.
    “‘개념 작업’을 중시한다. 한마디로 아이디어다. 머릿속 아이디어가 건축으로 구체화되는 과정에는 변수가 많다. 개념 작업을 확실히 하면 지형 지물 같은 변수들과 타협해야 하는 상황에서도 프로젝트가 가야 할 방향이 흔들리지 않는다.

    예를 들면 서울 종로구 신문로 2가에 지은 패션브랜드 사옥은 정육면체의 한 면을 4분의 1씩 계속 접어 생기는 ‘숨바꼭질’ 개념을 실제 적용한 사례다.

    머릿속에서 아이디어를 그릴 때 아름다움 뿐만 아니라 재치나 지적호기심도 많이 반영한다.

    서울 용산구 아모레퍼시픽본사 공사 현장에서 전시한 ‘진짜와 가짜 사이’가 이런 재치있는 감각과 지적 호기심을 표현한 대표적 사례다. 엘리베이터처럼 보이는 두 문은 알고 보면 서로 연결된 계단의 입구와 출구다.

    예상치 못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경험, 그리고 계단 중간에 있는 창을 통해 진짜 건물을 보여주는 방식으로 방문객에게 즐거움을 주려고 했다."

    뉴욕 130번가 57E130 뉴욕 콘도미니엄을 가까이서 바라본 모습. 자세히 보면 층별로 빛을 받아들이는 창문의 각도가 서로 다르게 나있는 걸 볼 수 있다. /ⓒ이호경

    -건축가는 공간의 제약 아래 자신만의 색을 드러내는 일을 한다고 하는데.
    “미국에서 개발했던 57E130 뉴욕 콘도미니엄이 대표적이다. 미국은 건물의 입면(入面, 건물의 출입구가 있는 면)을 옆 건물과 나란히 맞춰야 한다. 당시 콘도미니엄 부지는 도로에 닿는 가로가 짧고 세로로는 길쭉했다. 건축가의 미적 손길이 닿는 곳은 건물의 얼굴인 입면 뿐이었다. 미국은 마당을 뒤에 둬야 한다는 것도 제약 사항이었다.

    고심 끝에 건물 입면부의 창을 손댔다. 빛을 받아들이는 창문 개구부의 각도를 층별로 다르게 해 단조로운 입면에 깊이와 역동감을 준 것이다.

    서울에서 맡은 첫 프로젝트인 서대문구 북아현동 ‘코너스톤 1-532’의 경우 모퉁이의 좁은 땅이었다.

    대지가 안쪽으로 길쭉하고 건폐율은 40% 밖에 되지 않아 건축 조건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부지가 사거리 모퉁이라는 점을 활용해 남쪽에서 서쪽으로 연속되는 곡면을 만들어 건물 규모를 크게 보이는 시각적 효과를 살렸다.

    곡면에 의해 만들어진 내부공간은 임대 건물에선 흔치 않은 공간 경험을 제공해 임차인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들었다."

    김 교수가 설계한 '코너스톤 1-532'은 서울 서대문구 북아현동 이대 후문 인근에 있다. 그는 "자신의 작품 중 이 건물이 가장 정이 간다"고 말했다. /ⓒ신경섭

    -앞으로 계획은.
    “한국에만 머물고 싶지는 않다. 미국에 직접 건물을 설계한 경험도 있어 오히려 더 많은 걸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도 있다. 조금 더 다양하게 도전하고 싶다. 국내 건축가들이 해외에 도전하고 싶어하는데, 그런 꿈을 이어주는 역할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건축을 통해 대중에게 재치와 지적호기심을 발견할 수 있는 문화적 장치도 많이 만들고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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