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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17개 쌓아 만든 건물…폐공장촌의 대변신

  •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입력 : 2018.05.11 07:20

    건축은 인류 역사와 함께 수천년을 공존해 왔다. 건축이 없는 인간 삶은 상상 불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건축에 대해 잘 모른다. 땅집고는 쉽게 건축에 다가설 수 있도록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와 함께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담긴 국내외 건축물을 찾아간다.

    [양진석의 교양 건축] ⑩ 랜드마크는 형태가 아니라 스토리

    아름다운 스위스 취리히에도 산업 발전의 이면이 드러난 어두운 장소가 있다. 취리히에는 30여년 전만 해도 매연을 내뿜는 공장지대가 있었다. 맥주 양조장, 곡물회사 사일로, 비누공장, 조선소, 제철소 같은 각종 중공업 공장들이 모여 있는 약 139만㎡(42만평) 규모의 전형적인 도시 외곽 공업지대였다.

    이곳은 스위스 서부에 있어 ‘취리히 웨스트’라고 불렸는데, 1960년대까지 스위스 번영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면서 인건비가 상승하자 핵심 공장들이 하나둘씩 해외로 이전했다. 1990년에는 대부분의 제조업 공장이 문을 닫았다.

    2000년대 재개발 초기의 취리히 웨스트. /auric

    ■번영의 상징이던 ‘취리히 웨스트’의 몰락, 그리고 재생

    취리히 웨스트는 낡고 우중충한 공장 건물, 허름한 저소득층 아파트에 온갖 낙서가 가득한 슬럼으로 전락해 30년 넘게 방치됐다. 전 세계 사람들이 꿈꾸는 아름답고 살기 좋은 취리히에서 상상하기 어려운 곳이 됐다.

    취리히 시는 이 버려진 공장지대를 새롭게 바꾸기로 결정했다. 2000년대 들어 재개발이 시작되면서 이 공장지대는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시의 노력으로 문화예술·상업지구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것. 취리히시는 이곳을 깡그리 밀고 새 건물을 짓는 방법이 아닌, 공장지대에 있던 다양한 산업시설을 그대로 남기는 방법을 택했다. 이 공장지대는 재생에 성공했다. 취리히 웨스트는 20여년이 지난 지금 스위스의 ‘핫플레이스’가 됐다.

    폐조선소를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 '시프바우'. /Switzerland Tourism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 시프바우&풀스5, 임비아둑트

    취리히 웨스트에는 1860년대 증기선을 만들던 조선소가 있었다. 영업을 중단한 이 조선소 건물에는 극장과 레스토랑 등이 들어섰다. 바로 폐조선소를 리모델링해 만든 복합문화공간 ‘시프바우(Schifbau)’라는 곳이다. 건물 원형을 최대한 유지하며 리모델링해 노출된 배관 파이프나 녹슨 철근 같은 요소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시프바우 내부에 있는 유명 레스토랑과 재즈클럽으로 가려면 노출된 배관 파이프나 녹슨 철근을 지나쳐야 한다. /auric

    이곳에는 저녁이면 취리히의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몰려들고 가족이나 연인들이 멋진 식사와 술, 공연을 즐기러 찾아오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일부러 남겨 놓은 낡은 철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천장이 높아 탁 트인 공장 특유의 넓은 실내가 나타난다. 고급 프렌치레스토랑 ‘라살’이 먼저 방문객을 맞이하는데, 이 식당은 취리히 사람들도 인정하는 유명 레스토랑이다. 실내 중앙에 자리한 재즈클럽 ‘더 무드’는 배관 파이프와 철근이 그대로 노출된 콘크리트 기둥 등을 인테리어 요소로 활용한 모습이 인상적이다.

    제철회사 주조공장을 개조해 만든 복합문화공간 '풀스5'. /art-zurich

    시프바우 바로 옆에 있는 복합공간 ‘풀스5(Puls5)’도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제철회사 주조공장을 개조한 이 건물은 외관을 완전히 새로 고쳐 얼핏 보면 갓 지은 쇼핑센터처럼 보인다. 각종 고급 상점들이 내부 가장자리에 입점해 있고, 중앙에 위치한 넓은 공간에는 기획 전시를 주로 하는 전시공간을 배치했다. 1층의 레스토랑 ‘그뉘세라이’는 이곳이 옛 제철소였다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인테리어가 특징이다. 오래된 설비와 작은 용광로를 식당 홀 가운데와 벽 곳곳에 남겨둬 아주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버려진 철로 교각 아래에 만들어진 쇼핑 플레이스 '임비아둑트'. /Switzerland Tourism

    더 이상 사용되지 않는 철로 교각 아래에 2009년 새로 만들어진 ‘임비아둑트(Im Viadukt)’라는 장터는 인기있는 쇼핑 장소다. 아치형 철도 교각에는 세련된 그래픽디자인으로 번호가 매겨져 있는데, 그 안으로 들어가면 다양한 매장과 클럽들이 자리하고 있어 손님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가게 수만 해도 50여 개나 된다고 한다. 사실 교각 아래 공간은 길의 연장이라고 할 수 있다. 테마가 있는 상점거리와 비교했을 때 원래 용도만 다를 뿐이지 훌륭한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교각에 다채로운 조명을 설치해 밤이 되면 일대 분위기가 확 달라진다는 것도 임비아둑트의 큰 매력이다.

    취리히의 랜드마크가 된 글로벌 가방 브랜드 '프라이탁(Freitag)' 본사. /와이그룹 제공

    ■랜드마크가 된 컨테이너 건물: 프라이탁(Freitag) 본사

    특이함으로 따진다면 취리히 웨스트 중에서도 단연 으뜸인 곳이다. 겉보기엔 그저 컨테이너를 높이 쌓아둔 모습이다. 건물은 컨테이너 상자 17개로 만들어졌다. 어찌보면 아주 허름해 보이고, 화물을 선적하는 곳으로 착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곳은 폐자재를 리사이클링해서 친환경 가방을 만드는 ‘프라이탁’의 본사 사옥 겸 매장이다.

    프라이탁은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도 인기있는 글로벌 가방 브랜드로 스위스가 자랑하는 기업이다. 프라이탁 본사는 단순한 가방회사 건물이 아니라 건축으로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알리고 있다. 독특한 건축 디자인의 아이콘 같은 곳이면서 취리히 웨스트의 랜드마크 역할을 한다. 관광객들이 일부러 건물을 구경하러 찾아올 정도다.

    창업스토리가 담긴 프라이탁의 컨테이너 본사 건물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auric

    ■사랑받는 건물은 마음을 사로잡는 스토리가 있어야

    아무나 이렇게 컨테이너를 쌓아 두면 랜드마크가 돼서 사람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것일까. 물론 프라이탁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일 것이다. 프라이탁은 원래 컨테이너를 덮었던 방수천을 보면서 비를 맞아도 괜찮은 가방을 만들어 보자는 취지로 탄생한 브랜드다. 이 건물은 방수천과 컨테이너가 뗄려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는 프라이탁만의 스토리가 배경에 있기 때문에 만들어질 수 있었다.

    이런 프라이탁의 창업 스토리가 기반이 돼 컨테이너를 활용한 건물이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게 된 것이다. 어쩌면 재활용에 대한 사회적 관심 속에서 지극히 소박한 상징물이 탄생했고, 자연스럽게 유명해진 것일 지도 모른다. 프라이탁 본사가 거대한 랜드마크로 사람들에게 각인될 수 있었던 건 이런 건물을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건축의 규모와 형태보다 어떻게 방문객에게 사랑받고, 그들의 시선을 사로잡을 수 있는지, 그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다. 랜드마크가 꼭 초고층이거나 규모가 클 필요는 없다. 돈을 많이 들여 짓지 않아도 그 공간 안에 특별한 콘텐츠와 의미, 흥미로운 스토리가 잘 결합돼 있다면 많은 이들은 그 건축물을 사랑하게 된다.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양진석 대표는 일본 교토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파이포럼 주임교수,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객원교수, 와이그룹 대표건축가로 있다. 러브하우스 플랫폼을 개발해 대중을 위한 새로운 건축 서비스를 선보였다. 현재 강원도 양양 ‘설해원’ 리조트를 설계하고 준공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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