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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짝 바꿨는데…가고싶어 난리난 붉은 벽돌 창고

  •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입력 : 2018.04.07 07:15

    건축은 인류 역사와 함께 수천년을 공존해 왔다. 건축이 없는 인간 삶은 상상 불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건축에 대해 잘 모른다. 땅집고는 쉽게 건축에 다가설 수 있도록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와 함께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담긴 국내외 건축물을 찾아간다.

    [양진석의 교양 건축] ⑧ 현대 감성으로 다시 태어난 아카렌가

    과거의 산업시설이 재활용돼 새로운 공간으로 재탄생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이번 글에서는 재활용 수준을 넘어 디자인 등을 가미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업사이클링’(upcycling)을 건축에 적용한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벽돌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랫동안 건축 마감재로 자주 사용된 근대 건축의 산물이다. 벽돌 건축의 특징은 세월의 흔적을 많이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네모 반듯했던 벽돌은 시간이 흐르면서 마모되거나 부서지기도 하고, 손때도 많이 탄다. 이 벽돌의 특성을 잘 살리고 새롭게 바라볼 수 있다면 지금까지 몰랐던 숨은 가치를 끌어낼 수 있다.

    일본 요코하마 아카렌가. 세관창고를 상업시설로 개조해 큰 인기를 끌고 있다. /Huber Japan

    ■방치되던 아카렌가에 일어난 변화

    아카렌가(赤レンガ倉庫·Red Brick Warehouse)는 말 그대로 ‘붉은 벽돌 창고’라는 뜻이다. 일본 요코하마시(市) 미나토미라이에 위치한 아카렌가는 2개의 건물(1·2호관)로 구성돼 있다. 1910년대 초 지어져 1989년까지 세관창고로 사용됐다. 일본에 있는 건축 중 가장 서구적인 느낌의 상업시설이란 평가를 받는 곳이다.

    바다에 접해 조망이 좋은 아카렌가. /구글맵

    세관창고 기능을 상실한 아카렌가는 그대로 방치됐다. 1992년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21 정비’를 골자로 한 워터프론트 재개발 계획이 추진되면서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재탄생했다.

    요코하마시는 적극적이었다. 일본 지방자치단체 가운데서도 요코하마의 도시디자인 정책은 진보적인 것으로 유명한데, 바로 요코하마가 아카렌가를 일본 정부로부터 인수하면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요코하마는 건축가 치아키 아라이와 손잡고 창고의 새로운 얼굴을 계획했다.

    광장, 전시시설, 점포 등을 갖춘 새로운 상업 복합문화공간은 2002년 한일월드컵이 열린 해에 일반 공개됐다. 현재 아카렌가에는 해마다 600만명이 넘는 방문객이 찾아온다.

    요코하마를 대표하는 관광지가 된 아카렌가에는 개성있는 상점뿐 아니라 다양한 볼거리가 있다. 유명 음식점도 많아 하루 종일 먹고, 마시고, 쇼핑하고, 구경할 수 있다. 두 건물 사이 광장에서는 1년 내내 다채로운 행사도 열린다.

    요코하마 대표 관광지가 된 아카렌가의 광장. 일년 내내 다양한 행사가 열린다. /Yokohama Akarenga

    ■기존 이미지 살리면서 새롭게 디자인

    아카렌가는 얼핏 보면 그냥 오래된 창고에 새롭게 칠을 하고 환경 개선을 한 것쯤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세관 창고였던 외관을 깨끗하게 보존하고 유지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래된 창고 시설을 그대로 이용한 것은 아니다. 자세히 살펴보면 곳곳에 새로운 건축적 시도를 했다.

    사실 이 건물은 원래 층고가 아주 낮았다. 그래서 판매시설로 이용하기 부적합했다. 이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중간중간 개방감 있는 홀을 만들었다. 특히 계단실 디자인에 변화를 줘 답답함을 없앴다. 화장실과 출입문도 분위기에 맞게 새로 디자인했다. 동시에 예전 구조를 그대로 느끼며 건물 역사를 알 수 있도록 유리로 된 바닥과 계단실을 만들었다.

    아카렌가에는 도쿄의 유명 맛집들이 대거 들어와 있다. /Yokohama Akarenga

    1호관은 1층에 요코하마 기념품점, 2층은 전시공간, 3층은 다목적홀로 쓰고 있다. 2호관은 젊은이들이 많이 모여드는 상업 전용시설이다. 도쿄에서 유명한 가게들이 대거 입점해 많은 이들이 몰린다. 비싼 레스토랑이 아닌 도쿄 골목의 유명 맛집이나 소품 숍들이 입점한 것도 아카렌가의 매력 중 하나다.

    2호관 명물인 테라스는 유럽 노천카페 같은 분위기를 낸다. 주말에는 자리가 없다. /Yokohama Akarenga

    2호관 테라스는 외부에서 보면 정말 근사하다. 유럽의 노천카페 같은 분위기가 난다. 기존 벽돌 창고와 이질감이 들지 않도록 지붕과 바닥, 핸드레일까지 세심하게 잘 디자인해 인상적이다. 아카렌가는 유독 이 테라스의 식음시설 인기가 좋다. 주말에 가면 당연히 자리가 없고 오랜 시간 줄을 서야 테라스에 앉을 수 있을 정도다. 내부의 답답함을 없애고 1층부터 3층까지 테라스 외부공간을 적절히 활용해 분위기를 잘 연출했다.

    아카렌가 야경. 저 멀리 페리터미널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이 보인다. /Yokohama Akarenga

    아카렌가의 백미(白眉)는 역시 야경(夜景)이다. 기존 벽돌 건축의 이미지를 그대로 살리면서 조명 디자인으로만 외관에 포인트를 줬다. 요코하마 페리터미널 바로 옆 아카렌가의 조명은 요코하마 수변 마천루의 야경과 함께 환상적인 밤풍경을 만든다.

    페리터미널 바로 옆에 있는 아카렌가 모습. /Expedia

    ■명품 건축의 공통점은 ‘역사성’

    사람들은 왜 이런 낡은 벽돌 건물에 열광할까. 아마도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벽돌 건물 안에만 들어오면 묘하게 시간 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결국 명품(名品)이 되기 위한 여러 요소 중 ‘시간성’은 굉장히 중요하다.

    오랫동안 사랑받는 건축은 모두 역사성을 갖추고 있다.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예술과 문화, 상업적 요소가 적절하게 섞여 있으면 더 사랑받는다. 결국 벽돌 건축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역사성을 지닌 건물과 현대적인 감성으로 변신한 내부, 그리고 그 안에 녹아있는 흥미로운 콘텐츠가 결합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막대한 공사비를 들여 현대적인 소재로 마감한 건축만이 명품이 되는 것은 아니다. 새로 깎아 날이 선 대리석으로 뒤덮인 건축보다 낡고 닳은 옛 건축이 훨씬 더 인간미가 느껴진다. 게다가 스토리와 철학이 있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경우도 많다. 아카렌가처럼 새롭게 주목받는 업사이클링 건축이야말로 진정한 현대 명품건축이라고 할 만하다. 시간이 켜켜이 쌓여 있는 건축물로 사람들이 모여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양진석 대표는 일본 교토대학 건축대학원을 졸업하고 파이포럼 주임교수, 일본 리츠메이칸대학 객원교수, 와이그룹 대표건축가로 있다. 러브하우스 플랫폼을 개발해 대중을 위한 새로운 건축 서비스를 선보였다. 현재 강원도 양양 ‘설해원’ 리조트를 설계하고 준공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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