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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떡 주무르듯 맘대로 바꾸는 건 리모델링 아냐"

    입력 : 2018.02.16 06:50 | 수정 : 2018.02.16 07:56

    ‘부동산의 중심’ 조선일보 땅집고가 실패하지 않는 집짓기로 가는 바른 길을 제시하는 ‘제2기 조선일보 건축주 대학’ 문을 엽니다. 좋은 집은 좋은 건축주가 만든다는 말처럼 건축주 스스로 충분한 지식을 쌓아야 좋은 건축가와 시공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땅집고는 조선일보 건축주 대학 2기 과정을 이끌 교수진을 만나 그들이 가진 집짓기 철학과 노하우를 들어봤습니다.

    [집짓기 멘토]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 “건축은 시간이 축적된 풍경”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

    “훌륭한 건축주가 있어야 좋은 건물이 나옵니다.”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 큐레이터를 맡으면서 주목받았던 정이삭 에이코랩 대표는 건축가와 건축주 간의 만남과 소통을 강조했다. 건축은 일반적으로 의뢰를 받아서 하는 작업이어서, 믿고 맡기는 사람이 좋은 생각을 가져야 좋은 건축이 나온다는 것이다. 건물 가치를 경제적 합리성에 두고 기능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그 이상의 가치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 탓이다.

    정 대표는 “건축주는 전문가가 아니다. 상호 존중의 태도로 협력자 의식을 갖고 건축가와 서로 대화하고 상의해 좋은 판단을 내리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했다.

    실제로 건축 재료 선정에 있어서도 단순히 가격만 놓고 비교하지 말라고 강조한다. 왜 가격에 차이가 있는 지 서로 이해해야 작업이 효율적으로 진행된다는 것이다. 건축 과정에서 소통이 잘 될수록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서울 마포구 연남동 주택. 적벽돌 다세대 주택을 리모델링해 근린생활시설로 바꿨다. 정 대표는 그 건물의 최초 설계 의도부터 변형 등을 자세히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건축물이 가진 구조적 변화의 폭을 가늠하며, 새로운 용도의 적절성을 고민하기 위해서였다. /에이코랩 제공

    정 대표는 현재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사무실을 두고 있다. 이 건물은 얼마 전 정 대표가 직접 리모델링했다. 건물이 완공될 무렵 건축주 제안으로 주변 시세보다 싸게 입주하게 됐다. 건축 과정에 만족한 건축주의 감사 표시였다고 한다. 건축주와의 소통이 얼마나 잘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리모델링 공사 전 다세대주택(가운데). /에이코랩 제공

    정 대표는 건축뿐만 아니라 기획, 전시 등 건축과 관련된 모든 일을 한다. 최근엔 공공 건축물 같은 사회적 작업을 주로 해왔다. DMZ 평화공원 마스터플랜·연평도서관 등이 대표적이다. 올해에는 공공성과 리모델링을 결합한 프로젝트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 중 하나가 경기도 평택의 미군 험프리캠프 바로 앞에 ‘예술인 광장’ 조성 사업이다. 평택시가 추진하는 마을단위 리모델링 사업으로 문화·상업시설을 개발하는 것이다. 기존 건물 6채 가운데 3채는 철거하고 나머지는 리모델링한다. 철거해도 건물 자체의 의미를 기념하는 방향으로 설계할 계획이다. 경기도 과천시가 의뢰한 공유주택 임대사업 설계도 맡았다.

    정 대표는 “리모델링은 기존 건물 상태에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다. 기존 건물이 언제 지어져, 어떻게 바뀌고, 어떤 변형이 있었는지 알고, 그것을 추적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기존 상태에서 살릴 수 있는 것은 살려야 한다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그는 “신축도 마찬가지이지만 리모델링은 환경에 대한 이해와 주변과 조화가 필요하다”면서 “건물을 다시 쓰는 것이기에 더욱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리모델링에 대한 관심이 높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새로 만드는 단계를 지나 다시 쓰는 시대에 접어들었다. 급속한 경제발전 속에서 급조된 도시환경에 나름의 애정을 담아 재정비하고 소중히 사용하는 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사회적으로 안전에 대한 우려가 많다. 리모델링시 구조 계산이 중요하지 않나.
    “구조 계산보다는 내진(耐震) 설계 측면이 강조되는 추세이다. 하지만 계산과 계획은 지금까지 문제없이 해왔다. 더 중요한 것은 안전한 시공에 대한 의식과 실천이다. 구조 계산하고 계획대로 시공하는 것에 다소 소홀했던 것이 사실이다. 직접 설계한 건축가의 감리권이 중요하며 그 과정에 대한 중요성 인식이 필요하다.”

    -리모델링하면 외관 변화를 떠올린다. 보이지 않는 부분에서 유의할 점은.
    “외관은 말 그대로 껍데기다. 음식이 겉은 멀쩡해도 속이 썩어있으면 곧 부패한 냄새가 나기 마련이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의 뼈대와 그 형식에 대한 존중이 없는 리모델링은 건축의 수명을 줄인다. 그래서 리모델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기존의 것들에 대한 세심한 이해다.”

    작업 과정에서 건물의 구석구석을 자세히 기록했다. 방의 크기, 층고, 창문 위치, 창문 틀이나 지붕 처마의 몰딩 디테일, 난간 높이, 핸드레일의 두께, 증축한 샷시 구조물의 상세 형태와 구축 방식까지 관찰했다. /에이코랩 제공

    -리모델링에서 가치있는 내부 공간이란 어떤 의미인가.
    “건축이나 공간 모두에 해당되는 이야기이다. 근본적인 가치들은 시간이 지나도 잘 변하지 않는다. 변하더라도 그 속도가 매우 느리다. 건축은 인간이 만들어내는 것들 중에서 가장 수명이 긴 것 중 하나다.

    건축이 오래도록 잘 쓰여지려면 순간을 위한 것보다 긴 시간을 고려한 건축을 해야 한다. 또는 오랜시간 건축에 누적된 다양한 시간의 결과물들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 좋은 공간, 좋은 건축은 여러 시간이 축적된 풍경이다.”

    -성공하는 리모델링 건축주가 되기 위한 요건은.
    “비슷한 이야기인데, 기존의 것을 잘 들여다보고 건축물에 남아있는 나이테와 건축이 겪은 다양한 서사를 존중해야 한다. 그러면 기존 건축물을 하나의 반죽처럼 생각하고 떡 주무르듯이 마음대로 과도하게 수정하는 방식의 리모델링은 하기 어려울 것이다. 리모델링 역시 한번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다음을 예상하지 못하고 진행하는 리모델링 계획은 매우 무책임한 것이다.”

    기존의 설비들도 최대한 그대로 활용해 건물의 상처를 최소화했다. 다소 아름답지 못한 것일지라도 계단실 바닥이나 외장 적벽돌 같은 기존의 마감 재료들을 세척해 예전의 재료색을 찾도록 했다. /에이코랩 제공

    -대개 건축주와 예산 문제로 갈등을 빚지 않나.
    “솔직한 건축비를 얘기하는 것이 어려울 일은 없다. 정당한 대가와 정당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기본이다. 특히 계획 과정에서 현재 계획이 정해진 예산을 초과하는지 지속적인 점검이 필요하다. 건축주 입장에서 무리한 요구와 예산은 늘 비례한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건축가로서 리모델링 작업 시 최우선 고려사항은.
    “신축할 때는 주변이나 도시를 본다고 하는데 리모델링은 기존 건축물을 잘 이해해야 한다. 그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환자에 대한 올바른 진단이 옳은 처방을 내는 것과 같다.”

    불법으로 증축해 사용하던 발코니는 법정 면적에 산입시키고, 그 부분을 쇼윈도로 활용했다. /에이코랩 제공

    -리모델링 시 건축주가 꼭 알아야 할 법규가 있다면.
    “기본적인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 리모델링 법규는 신축보다 더 복잡하다. 우선은 용도변경, 대수선, 증축, 개축 등 리모델링을 표현하는 다양한 어휘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어떤 부분에 집중해서 강의할 계획인가.
    “건축주 대학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좋은 건축적 소양을 갖춘 건축주를 배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건축가와 건축주 모두 잘 준비되어 있어야 좋은 파트너십을 만들 수 있다. 건축을 대하는 태도, 경제적인 요소는 건축 과정에서 고려해야 할 여러 가치 중 하나일 뿐이다. 사회적 책임이나 윤리, 건강한 시민으로서의 건축주 등과 같은 주제가 핵심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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