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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물에 신음하던 작은 섬, '건축 천국'이 되다

  •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입력 : 2018.01.25 07:00 | 수정 : 2018.01.26 11:39

    건축은 인류 역사와 함께 공존해 왔다. 건축이 없는 인간의 삶은 상상 불가다. 하지만 많은 이들은 건축을 잘 모른다. 의외로 관심도 없다. 땅집고는 쉽게 건축에 다가설 수 있도록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와 함께 특별한 의미와 가치가 담긴 국내외 건축물을 찾아간다.

    [양진석의 교양 건축] ① 쓰레기 섬에서 건축과 예술 천국으로

    일본 시코쿠 가가와현 세토나이카이에 위치한 나오시마(直島)는 30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작은 섬이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구리제련소에서 나오는 산업폐기물과 오염 물질로 곳곳이 파괴돼 버려진 섬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 섬은 현재 매년 수십만명의 관람객들이 방문하는 최고의 관광지가 됐다. 도대체 왜 이렇게 유명해진 것일까.

    나오시마의 변신을 이끈 사람은 후쿠다케 소이치로 베네세그룹 회장이다. 아버지의 유언대로 나오시마를 문화·예술의 섬으로 변신시킬 방법을 찾던 그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와 운명적으로 만났다. 둘은 의기투합해 나오시마에 독특한 건물을 짓고 예술과 자연이 어우러진 새로운 공간으로 만들었다.

    사실 나오시마의 성공은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유명 건축가가 건물을 짓고 그 곳에 유명 작가의 작품을 전시했기 때문에 성공했다고 치부하기엔 나오시마의 성공에는 특별한 무엇이 있다.

    타카마쓰에서 북쪽으로 13㎞ 떨어진 나오시마섬. /조선DB

    나오시마에서 가장 먼저 주목해야 할 건물은 1992년 완성된 베네세하우스뮤지엄(Benesse House Museum)이다. 나오시마에 처음 선보인 제대로 된 건축물이다. 후쿠다케 회장과 안도 타다오가 오랫동안 공을 들여 만든 미술관 겸 호텔이다. 미술관 내부에 레스토랑이 있다. ‘자연과 예술에 둘러싸여 휴식한다’는 보기 드문 콘셉트의 공간이다.

    후쿠다게 소이치로 회장(왼쪽)과 안도 타다오. /조선DB

    평소 현대미술에 관심이 많았던 후쿠다케 회장이 직접 컬렉션에 참여해 아름다운 섬과 건축에 어울리는 작품을 선정했다고 한다. 특히 미술관 안에 있는 프렌치 레스토랑은 예약조차 힘들 정도로 인기가 높다. 외딴 섬에 자리한 고급 프렌치 레스토랑과 현대미술의 조합, 사실 처음부터 이런 발상을 했다는 것 자체가 놀랍다.

    산 정상에 자리한 오벌호텔 중정. /와이그룹

    베네세하우스뮤지엄에 이어 오벌(Oval)호텔을 지었다. 이 역시 안도 타다오 작품이다. 산 정상에 자리한 오벌호텔은 잔잔한 연못의 중정(中庭)이 인상적이다. 물이 있고, 위를 올려다보면 하늘을 조망할 수 있어 신세계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이 호텔에 가려면 모노레일을 타고 올라가야 해서 접근성이 좋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말 그대로 ‘힐링’을 위한 공간으로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다. 나오시마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건물답게 옥상은 나오시마의 전망대 역할도 한다.

    지추미술관 내부의 중정. 콘크리트 틈 사이로 석재 파편이 바닥에 깔려 있는 중정을 내려다볼 수 있다. /와이그룹

    나오시마에서 최고 인기 시설은 지추(地中)미술관이다. 지추미술관 개장 이후 나오시마 관광객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이 미술관은 외관을 보면 ‘지하에 묻힌 군사 벙커’처럼 보인다. 전체 형태가 외부에 노출돼 있지 않다. 안도 타다오의 역작으로 손꼽히는 지추미술관은 ‘나오시마의 경관을 해칠 수 없다’는 건축가의 신념이 녹아있다. 전시공간 역시 안도의 건축만큼이나 화제가 됐다. ‘최고의 예술 작품이 땅속에 묻힌 명상미술관’이라는 콘셉트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이 미술관은 안도 타다오 특유의 ‘회유(回遊)하는 동선(動線)’으로 구성돼 있다. 진입 공간부터 점점 빨려 들어가는 듯한 공간감을 느낄 수 있다. 지추미술관은 안도의 건축 역량이 전부 발휘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하학적인 건물 덩어리가 산 속 여기저기에 박혀 있다. 숨바꼭질하듯 미로(迷路)를 걸으며 공간 하나 하나를 경험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주말이면 몇 시간씩 기다려야 입장할 수 있을 만큼 인파가 몰린다.

    2010년 6월 이우환 작가가 이우환미술관 '만남의 방'에서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조선DB

    지추미술관에 이어 탄생한 또 하나의 명작이 바로 이우환미술관이다. 일본에서 활동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 이우환의 이름을 내건 미술관으로 2010년 6월 개관했다. 후쿠다케 회장은 2007년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이우환의 전시를 처음 보자마자, 나오시마 골짜기에 자리한 이우환미술관을 떠올렸다고 한다.

    이우환미술관에 들어가서 처음 마주치는 외부 전시공간. /와이그룹

    이 작품도 안도 타다오가 설계했다. 극단적으로 절제된 느낌의 이 미술관은 미니멀한 이우환의 작품과 잘 어울린다. 입구에서부터 안도 특유의 긴 동선을 따라 걸으며 이우환의 작품을 보게 된다. 특이한 점은 설계 당시부터 작품이 놓일 위치와 건축 공간을 이우환과 대화하면서 구성했다는 것이다. 이우환 역시 아예 섬에 거주하면서 전시될 작품을 만들었을 정도로 애정과 열정이 깊었다고 한다.

    나오시마의 성공 스토리는 한국에도 많이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도 나오시마와 유사한 프로젝트를 여기저기서 시도하고 있지만 아쉬운 점이 많다. 그렇다면 나오시마 예술 섬 프로젝트가 큰 성공을 이뤄낸 비결은 뭘까.

    쿠사마 야요이 작가의 호박. 높이 210㎝가 넘는 이 작품은 예술섬 나오시마의 최고 명물이다. /조선DB

    먼저 아티스트들이 직접 섬을 방문해 나오시마에서만 볼 수 있는 작품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작품이 아니라 ‘거기에만 있는’ 작품, 즉 ‘장소특정적 미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도쿄같은 대도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술 작품이 아니라, 꼭 나오시마와 그 주변 섬을 가봐야 하는 작품들을 전시한 것이다. 새로운 건축뿐 아니라 작가들도 직접 현지에 가서 작품을 만들고 전시한 점에서 차별화 포인트가 생겼다.

    둘째, 나오시마가 끊임없이 진화하는 예술 섬이란 인상을 심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안도 타다오의 작품으로 시작해서 최근에는 재능있는 건축가들이 계속 나오시마에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처음에 과도하게 투자한 뒤 수익이 나지 않으면 그냥 방치하는 일반적 리조트 개발과는 전혀 다른 행보다. 끊임없이 싫증나지 않도록 새로운 내용을 보여주려는 시도가 방문객을 계속 끌어들이고 있다는 평가다.

    나오시마 항구 근처에 있는 아이러브유 목욕탕 내부. 남탕과 여탕 경계에 코끼리상을 세워놨지만, 윗벽은 뚫려 있다. /조선DB

    셋째, 효율적인 투자다. 외딴 섬의 땅값은 비싸지 않다. 지자체와 협력만 잘되면 더 저렴하게 살 수도 있다. 베네세그룹은 섬의 빈집들을 인수해 예술을 접목하는 과정에서 비용 대비 주목도를 높이는 다양한 방법을 사용했다. 베네세그룹은 오로지 사회공헌을 위해 예술 섬을 만들지 않았다. 철저하게 경제적 효율성을 따진 것인데 이 전략이 적중한 것이다.

    넷째, 지역 주민들의 참여다. 실제 나오시마 주민들은 섬 재생 프로젝트에 직접 참여하기도 하고, 관람객 안내도 한다. 지역 주민을 배제한 개발이 아닌 적극적으로 개입시키는 프로젝트를 도입했다는 것이 성공의 최대 핵심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섬을 개발하는 것이 지역 주민과 절대 무관하지 않다는 등식을 보여준 것이다. 지역 주민들의 참여율을 높이는 방법, 모두 힘을 합쳐서 개발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나오시마 프로젝트는 증명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꼽는 성공 요인은 가장 비환경적인 곳을 친환경적인 곳으로 변화시켰다는 것이다. 바로 스토리텔링의 힘이다. 섬에서 단순히 예술 행위만 했다면 이렇게가지 성공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근대화의 상징으로 폐허가 된 구리제련소를 최고의 친환경 건축물로 재탄생시키는 등 나오시마를 아름다운 자연으로 다시 돌려놓았다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버려진 섬 나오시마를 예술의 힘으로 살렸다는 강력한 이야기가 뒷받침되면서 나오시마가 유명해졌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왜 그 곳에 다시 가고 싶은 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 명쾌한 해답을 줘야 성공적인 장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나오시마가 가르쳐 주고 있다.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
    양진석 대표는 성균관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안양대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와이그룹 대표이며 건축교육프로그램 NA21과 파이포럼 주임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교양건축’, ‘건축가 양진석의 이야기가 있는 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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