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9076개 각재로 엮어 만든 기묘한 3차원 공간

  • 국형걸 이화여대 교수

    입력 : 2017.12.15 06:56 | 수정 : 2017.12.15 11:09

    [국형걸의 건축 레시피] ‘부분’을 ‘집합’시켜 다양하고 효율적으로 건축하기

    건축물은 보통 규모가 크고 복잡하다. 건축의 원리는 ‘부분’의 서로 다른 반복을 통해 ‘전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두 가지 방법으로 건축의 형태와 공간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다. 첫째는 자연의 섭리처럼 ‘단위 모듈’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둘째는 움직임에서 나타나는 파노라마처럼 동일한 모듈의 ‘구성 방식’에 변화를 주는 것이다. 전자를 택하면 모듈 하나 하나를 제작하는 데 많은 비용이 들고, 후자의 경우 모듈 구성을 다르게 하기 위한 시공 비용이 꽤 든다.

    그렇다면 최소한의 가공을 거친 다양한 모듈을 재료로 해서 최소한으로 시공한다면 효율적이면서도 다채로운 건축 구조물이 탄생하지 않을까.

    ■목조 구조물 실험: Part to Whole

    부분과 전체의 속성 (왼쪽: 단위 모듈의 다양화 , 오른쪽: 구성 방식의 다양화). /HG-Architecture 제공

    2014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에 전시했던 목조 구조물 ‘Part to Whole’은 이런 건축적 실험에 가장 적합한 사례다. 전시회명은 [매트릭스: 수학_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이다. 건축으로 알아보는 수학과 건축가로서 바라보는 수학이 테마다. 따라서 부분의 집합으로서 ‘전체’, 그리고 전체를 이루는 요소로서 ‘부분’을 가장 효율적으로 표현하는 건축 구조물을 만들었다.

    가장 효율적인 다변화 구조물을 위한 단위 모듈의 재료로 '각재'를 택했다. /HG-Architecture 제공

    하나의 모듈을 가장 쉽고 효율적이면서도 다양하게 제작하고자 했다. 재료로는 ‘각재’가 선정됐다. 각재는 인테리어 내장 틀로 많이 쓰이는 가장 저렴한 부재로, 단 한 번의 커팅으로 길이 단위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재료다.

    컴퓨터 분석과 실험으로 기하학적 공간을 설계했다. /HG-Architecture 제공

    순수한 하나의 덩어리에서 많은 부피를 덜어내 실험적이면서도 중성적인 공간을 만들기로 했다. 컴퓨터 작업을 통해 9076개의 전체 각재를 73가지 길이 유형과 63개의 x-y 레이어로 모듈화했다.

    최소한의 가공과 최소한의 시공을 통한 목조 구조체 제작 과정. /HG-Architecture 제공

    단 한번의 커팅으로 최소화한 가공 공정은 국립산림과학원 목공소의 도움으로 정확히 4일만에 완료됐다. 9076개의 부재는 현장에서 서로 물리고 엮어지면서 3일 간의 최소 시공을 통해 조립됐다. 이는 3D 프린팅과 로봇 등을 활용한 최근의 건축 생산 방식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 <매트릭스: 수학_순수에의 동경과 심연>이란 전시회에 출품된 'Part to Whole'. /사진=신경섭

    시공 결과 바닥, 벽, 지붕이 흘러가는 듯한 3차원 공간이 만들어졌다. 전체가 곧 부분의 합이며, 내부와 외부의 경계, 시작과 끝이 모호한 추상적 공간이다.

    시작과 끝을 알 수 없는 추상적 공간이 된 'Part to Whole'. /사진=신경섭

    정해진 형태가 없는 이 구조물은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지면서 여러 모습을 보여준다. 때로는 통로가 되고, 때로는 휴식 공간이 되면서 부수적인 구조체 없는 독립적 구조물이자 공간이 됐다.

    한옥의 처마를 연상시키는 'Part to Whole'. /사진=신경섭

    3차원적 행렬 상의 수많은 ‘점’들은 ‘선’이 되고, ‘선’은 ‘면’을 이루고, ‘면’은 ‘볼륨’을 이루어 수학적 형태와 공간을 이룬다. 이렇듯 가로축과 세로축이 번갈아 쌓이고 엮인 목구조는 우리나라 전통 목구조의 기본 원리와 맥을 같이 한다. 자연스러운 한옥 처마를 닮은 구조물은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친근감을 선사한다.

    점이 선이 되고, 선이 모여 면을 이루는 원리가 투영된 'Part to Whole'. /사진=신경섭

    모듈 하나 하나가 엮인 3차원 패턴은 일관된 원리로 전체를 다변화시킨다. 이 프로젝트는 ‘2014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에서 본상을 받은 최초의 건축 구조체다. 현재는 국립산림과학원 로비에 영구 전시돼 있다.

    ■일상에 적용된 목재 실험: 홍은1동 동주민센터, 고운미소치과 강남역점

    목재를 활용해 따뜻한 분위기로 변신한 홍은1동주민센터. /사진=신경섭

    이 목재 실험은 2016년 서울시 ‘찾아가는 동주민센터’ 사업 일환인 ‘홍은1동 동주민센터’ 공간 개선 프로젝트에도 적용됐다. 효율적인 목재 가공과 시공으로 천장과 벽, 가구를 만들자 따뜻하고 새로운 분위기의 실내 공간이 조성됐다.

    각재로 스크린 효과를 낸 고운미소치과 강남역점. /사진=신경섭

    잘라진 개별 각재들로는 다변화하는 패널을 만들었다. 패널을 반복적으로 전시해서 벽과 천장의 스크린적 요소로 활용했더니, 생산적인 인테리어 산업 자재로서 목재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세포가 모여 조직을 만들고, 조직이 모여 기관을 만들고, 기관이 모여 몸을 구성하는 것처럼 건축에서 부분의 집합인 ‘전체’와 전체의 구성 요소인 ‘부분’은 단순한 구성 재료가 아니다. 단위 세대들이 모인 공동 주거, 공동 주거들이 모인 동네, 동네들이 모인 도시에 이르기까지, ‘부분’과 ‘집합’이야말로 인간 삶에서 기본적인 환경을 조성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다.

    국형걸 이화여대 교수.
    국형걸은 미국건축사(AIA)로 이화여대 건축학전공 교수다. 연세대 건축공학과 학사를, 미국 컬럼비아대학원 석사를 마쳤다. 뉴욕 와이스/맨프레디 아키텍츠에서 실무를 쌓았다. 2012년부터 HG-Architecture 건축디자인 연구소를 운영 중이다. 2016년 대한민국 목조건축대전 본상을 수상했고 2017년 젊은건축가상을 받았다. 서울시 공공건축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이전 기사 다음 기사
    sns 공유하기 기사 목록 맨 위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