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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와 베트남 장모가 함께 사는 대가족…25m 복도에 담긴 뜻은

  • 양진석 건축가

    입력 : 2017.11.27 06:40

    집을 짓는다는 건 가족에게 맞춤옷처럼 딱 맞는 주거공간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그런 공간으로부터 온전한 가족의 삶이 시작되는건 아닐까요. 가족과 집은 뗄수 없는 키워드입니다. 땅집고는 예능프로그램 ‘러브하우스’로 국내 인테리어, 건축 대중화에 앞장섰던 양진석 와이그룹 대표가 지난해 지은 집 여섯 채와 그 안에 담긴 건축철학,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양진석의 여섯 채의 집] ⑤포도송이를 닮은 무지개하우스

    한국과 베트남 양국이 만나 탄생한 다문화가정 주택이다. 양가 부모님과 부부, 그리고 아이들까지 총 7명이 사는 대가족을 위한 주택으로 비교적 면적이 큰 집이었다. 골조에 사용한 중목(中木) 자재만 해도 다른 집보다 2배 이상 많이 들어갔지만 가장 낡고 위험한 집이기도 했다.

    양가 부모의 동선(動線)을 고려해야 했고 그동안 부부만을 위한 공간이 없던 탓에 부부 공간도 마련해야 했다. 아이들 욕실이 없어서 공간을 배치할 때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구식 가옥이 지닌 특성상 본채와 별채가 분리돼 활용 면적이 컸기 때문에 건축적으로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었다.

    충북 보은의 일곱식구를 위한 단독주택. /사진=이남선 작가

    주택 단면도. /와이그룹

    주택 평면도. a 출입구, b 아이들놀이터, c 테라스, d 주방/거실, e 다용도실, f 테라스, g 정자, h 건물 안 복도, i 외할머니 방, j 욕실2, k 안방, l 테라스, m 아이들 방, n 욕실1 ,o 할아버지·할머니방. /와이그룹
    ■식물 줄기같은 복도, 잎처럼 뻗은 방

    집 안에서도, 집 밖에서도 다양한 내·외부 공간을 경험할 수 있도록 다채로운 동선을 만들었다. 공간이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의 마음을 이어준다는 개념을 생각하며 집에 줄기와 잎의 개념을 적용했다. 25m 길이의 복도는 식물로 보자면 줄기와 같고, 각 방의 공간들은 잎의 형상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상징적인 긴 복도는 여러 공간을 이어주는 매개이면서 집의 기본 동선 역할을 한다.

    이 집은 세대와 공간을 잇고 있는 25m의 복도가 특징이다. /사진=이남선 작가

    출입구에서 바라본 복도. 복도 오른쪽에는 방과 욕실 등이 있다. /사진= 이남선 작가

    바로 이 복도 때문에 집이 커 보이는 것인데, 알고 보면 각각의 방이 아주 작은 대신 복도와 주방, 거실 공간은 일체형으로 계획해 개방감을 강조했다. 위에서 보면 집 형태가 긴 복도에 매달려 있는 포도송이 같은데, 식물 개념에서 출발한 유기적인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매스(mass)와 매스 사이에 틈을 둬 외부 공간을 접하게 해 채광 면적을 확보했다. 바람 길을 열어 주는 공간을 만드는 것은 집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행위이자 집이 오랜시간 숨 쉴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방법이기도 하다. 거실 동측과 서측에는 시원한 베란다 창을 두었고, 북측 주방 창 남측으로는 뒷마당으로 나가는 창을 두어 중앙에 서면 십자형 바람 길 통로를 느낄 수 있다.

    ■베트남 외할머니 배려한 공간 계획

    가장 안쪽에 있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방은 남향과 동향으로 시원하게 창을 냈고, 바닥을 조금 높인 툇마루에서 바깥을 조망하며 손자들이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했다. 편백나무 칠 마감 방은 건강을 테마로 한 방이다. 외할머니 방은 입구에 위치시켜 가능한 한 멀리 떨어지게 했다. 아이 엄마와 함께 모국어인 베트남어로 자주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하는 차원에서 외할머니와 아이 엄마가 같이 사용할 수 있는 욕실도 만들었다.

    집의 가장자리에 있는 할아버지·할머니방에는 큰 창을 냈다. 베트남에서 온 외할머니방은 출입구 쪽에 있어 두 공간은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사진= 이남선 작가

    욕실. /사진= 이남선 작가

    아이들 방과 부부 방은 서로 마주보게 배치했다. 결혼 후 처음으로 갖게 되는 부부만의 방은 프라이버시(사생활)를 중요하게 생각했고, 2층 침대가 있는 아이들 방은 뒷마당으로 바로 나갈 수 있도록 했다. 아이들과 목욕할 때나 가족이 함께 목욕할 때,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목욕을 즐길 때도 편안하고 쾌적하게 할 수 있도록 욕실을 크게 만들었다.

    대가족 구심점이 되는 공간이 필요했다. 동서측 외부 마당과 연결되고, 정자(亭子)로도 나갈 수 있는 집의 핵심 공간에 주방과 거실 공간을 배치했다. 바로 이 공간이 커뮤니케이션 키친 기능을 수행한다.

    아이들 방에서 뒷마당으로 바로 나갈 수 있다. /사진=이남선 작가

    아빠·엄마는 처음으로 둘 만의 오붓한 공간을 갖게 됐다. /사진= 이남선 작가

    부엌과 거실. 일곱 식구 대가족의 소통 공간이다. /사진= 이남선 작가


    ■마을정자와 감나무가 포인트

    베트남 정서를 느낄 수 있는 파스텔 톤으로 외벽을 마감하고 지붕에도 적용했다. 인테리어에도 다양한 컬러를 적용했다. 낯선 문화에 적응하느라 힘든 베트남에서 건너온 가족이 고향의 색채를 느끼며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게 배려했다. 이 다채로운 색채는 마을 경관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는 기능도 하고 있다. ‘무지개하우스’라는 개념을 도입한 이 집에는 깔끔한 화이트 톤 대신 집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파격적인 핑크 컬러(프렌치 핑크, 핑크 브라운, 적갈색)를 외관 색으로 선택했다.

    베트남의 노천 카페를 연상시키는 정자는 다문화가정 구성원과 동네 주민들을 위한 곳이다. 이국적이면서도 한국 고유의 정서가 묻어 있는 이 공간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 문화가 사이좋게 공존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이 공간 만큼은 마을 사람들의 공용 공간으로 사용되길 바라고 이국땅에서 외로운 생활을 하는 베트남 모녀에게 마을 사람들의 훈훈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공간이 되었으면 하는 기대를 품어 본다.

    50년 전 할아버지가 손수 심었다는 감나무를 살리기 위해 몇 차례나 주택 배치를 바꾸었다. 감나무야말로 이 집이 자리한 땅의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나 나무에 감이 풍성하게 달렸을 때 마을 풍경은 더욱 다채로워질 것이다.

    집 앞에 정자를 세워 마을 사람들과 소통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게 했다. /사진= 이남선 작가

    마당에서 바라본 거실. /사진= 이남선 작가

    [보은 단독주택 건축 개요]

    대지 위치 : 충청북도 보은군
    지역 용도 : 계획관리지역
    용도 : 단독주택
    건축 면적 : 152.88㎡
    연면적 : 146.68㎡
    조경 면적 : 32㎡
    건폐율 : 22.576%(법정 40%)
    용적률 : 20.357%(법정 100%)
    공사 기간 : 93일 (2016년 11월–2017년 2월)
    구조 : 철근콘크리트 매트기초 위 중목구조
    외부 마감 : 드라이비트 공법
    내부 마감 : 석고보드 위 도배・도장, 스톤베니어, 메토도 히노키 도장
    지붕 마감재 : 컬러강판
    외벽 단열재 : 비드법 보온판 2종 2호
    천장 단열재 : 수성연지롤리우레탄폼
    난방 : 기름보일러
    창호재 : PVC 이중 창호마감, 인테리어 필름
    바닥재 : 강마루, 특수 모르타르
    양진석 건축가(와이그룹 대표)
    양진석 대표는 성균관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에서 석사와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안양대에서 공학박사를 받았다. 와이그룹 대표이며 건축교육프로그램 NA21과 파이포럼 주임교수로 있다. 그의 저서 ‘집 짓다 담다 살다’(컬쳐그라피)는 방송을 통해 지은 6채의 집을 그 계획부터 설계, 완성에 얽힌 이야기와 방송에서 만날 수 없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를 담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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