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1.16 06:45
“동네가 좀 어수선하죠? 원래 허름했던 곳인데 최근 몇 년 동안 새 건물이 계속 들어서고 서울역 고가공원(서울로 7017) 만든 다음에는 관광객들까지 찾아오면서 더 북적거리죠.”(서울 중구 중림동 주민 A씨)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에서 서울역 뒤편에 이르는 중림로를 따라 형성된 동네가 바로 서울 중구 중림동이다. 조세희씨의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했을 만큼 불과 2~3년만해도 도심의 대표적 낙후지역으로 꼽혔다.
하지만 중림동은 최근 각종 호재가 몰리면서 부동산 시장을 이끄는 핫 플레이스 중 한곳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서울역 주변 지역의 대대적 정비 계획 발표와 서울로 7017 개장에 따른 유동 인구 증가, 도시재생 활성화 등이 맞물린 결과다. 실제 중림동 일대 집값은 불과 1년새 최대 2억원 뛰었다. 중림동 일대 상가 역시 임대료가 30% 이상 치솟고 땅값은 2배로 올랐다.
■중림동 아파트값, 1년새 최대 2억 급등
땅집고 취재팀이 지난 10일 중림동을 찾았다. 현지 부동산 공인중개사들은 8·2부동산 대책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의 기대감은 여전히 높다고 말했다.
이 일대 집값을 이끄는 대장주는 손기정체육공원 남서쪽에 맞닿은 ‘서울역센트럴자이’다. 서울역센트럴자이는 올 8월 입주한 1341가구 규모 아파트인데, 중림동에서 유일하게 1000가구가 넘는다.
서울역센트럴자이 84㎡(이하 전용면적) 분양권은 지난달 2건이 8억9500만원에 거래됐다. 지난 8월(9억5000만원)과 비교하면 다소 낮아졌다. 하지만 지난해 10월(7억1270만원)보다 2억원 가까이 웃돈이 붙은 셈이다.
중림동 J공인중개사사무소 관계자는 “이 아파트 59㎡는 전부 조합원에게 분양됐는데, 당시 6억원대에서 이젠 8억5000만원까지 오를 만큼 인기가 많다”며 “서울역센트럴자이 입주 효과로 근처 아파트들 역시 호가가 5000만원 정도 올랐다”고 했다.
중림동 중림삼성사이버빌리지도 강세다. 현재 시세는 59㎡가 6억원대 중반, 84㎡는 8억원대로 각각 1억원쯤 올랐다. LIG서울역리가 84㎡도 6억원대 중반에서 7억원대 초반으로 상승했다. 내년 1월 입주할 서울역한라비발디센트럴는 지난해 84㎡ 분양권이 6억5000만원 정도였는데, 올 9월 8억원 중반으로 1억5000만원 정도 뛰었다.
중림동 일대 다세대 빌라 가격도 오름세다. 빌라는 3.3㎡(1평)당 2500만~3000만원 선에서 거래된다. 1년전보다 1000만원 정도 올랐다. 중림동 J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아직 확정된 것은 아니지만 중림동도 곧 재개발된다는 이야이가 계속 나온다”며 “아파트보다 상승세가 약하긴 하지만 빌라 시장도 더 오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했다.
그는 이어 “중림동은 시청과 서울역 근처라 입지가 좋은데도 저평가됐다. 새 아파트들이 들어서면서 이제야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라며 “동네가 본격적으로 정비되기 시작하면 집값이 오를 일만 남았다고 보면 된다”고 했다.
■달동네에서 ‘힙한’ 상권으로 급부상
중림동 일대 상권도 들썩거리고 있다. 이태원 경리단길에 중림동을 합쳐 ‘중리단길’이란 별칭으로 불리며 신흥 상권으로 떠올랐다. 지하철 2호선 충정로역 5번출구에서 서울역 방향으로 곧게 뻗은 2차로가 중리단길이다.
원래 중리단길 상권은 동네 주민을 상대하며 자급자족하던 곳이어서 골목을 따라 각양각색의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하지만 지난 5월 서울로 7107 개장 이후 동네 분위기가 급격하게 변모하고 있다.
중림동에서 수십년간 순대국집을 운영한 A씨는 “여기가 원래 속된 말로 ‘후진 동네’였는데, 요즘엔 젊은 사람들이 꽤 많이 와요. 특히 강남에서나 봤던 젊고 예쁜 여성들이 주로 온다니까요”라고 말했다.
중림동 주민 B씨도 “서울역 고가도로 밑은 노숙자들 캠프나 다름없었는데, 서울로 7017이 생기면서 이젠 찾아볼 수 없게 됐죠”라고 했다.
중리단길에 가장 많이 생긴 업종은 단연 카페다.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도 ‘중리단길’ 연관 검색어로 ‘카페 거리’가 가장 먼저 뜬다. 중림동 카페 주인 C씨는 “요즘 젊은 친구들이 흔한 프랜차이즈보다는 ‘힙한’ 곳을 선호해서 생소한 중림동을 많이 찾는다”고 했다. 편의점 주인 D씨는 “외지인과 외국인도 중리단길을 알고 찾아온다”고 했다.
■땅값·임대료 껑충…밀려나는 자영업자들
상권이 활기를 띠면서 중림동 일대 상가 임대료와 땅값도 천정부지로 뛰고 있다. 중림동 F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상가 권리금과 임대료가 작년보다 30~50% 오른 곳이 수두룩하다”고 했다. 상가 매매가는 현재 3.3㎡당 6000만~7000만원 정도다. 지난해 3000만~4000만원대에 거래되던 것과 비교하면 2배쯤 오른 것이다.
문제는 임대료 급등으로 오랫동안 터를 잡고 장사했던 기존 상인들이 쫓겨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도 심화하고 있다는 것. 실제 중림동 일대 상가에서는 재계약하기 몇 달 전부터 월세를 올린다고 미리 엄포를 놓거나, 감당할 수 없으면 나가라는 눈치를 주는 건물주들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림동에서 13평짜리 떡카페를 운영하는 E씨는 서울로 7017 효과를 기대하고 지난해 장사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 권리금이 3700만원에 월세 180만원으로 센 편”이라며 “그런데 건물주가 월세를 10%나 더 올려달라고 요구해서 고민”이라고 했다.
일부 상인들은 오른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해 동네를 떠나고 있다. 실제 E씨가 운영하는 떡카페 주변 주변 가게들 일부는 셔터가 닫힌 채 새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중림동에서 식당을 운영중인 G씨는 “바로 옆 삼겹살집 주인은 비싼 월세 때문에 홍대에서 중림동으로 옮겨온 것인데, 이 동네도 월세가 슬슬 오르는 추세라 난감하다더라”고 했다. F공인중개사무소 관계자는 “동네가 유명해지면 건물 값이 오르는 것은 당연하지만, 오랫동안 같이 지내온 상인들이 하나 둘 장사를 접으니 마음이 짠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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