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10.01 06:33
1947년 태동한 한국 근대 건설 산업이 올해 70주년을 맞았다. 하지만 건설 산업에 대해서는 긍정보다는 부정, 발전보다는 쇠락하는 이미지가 더 강한 게 현실이다. 조선일보 땅집고(realty.chosun.com)는 한국건설산업연구원과 공동으로 지금까지 인류 문명과 과학 발전에 기여한 기념비적 건축·구조물들을 발굴,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 건설산업의 미래를 생각해보는 기획물을 연재한다.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오스만제국을 폐망으로 이끈 돌마바흐체궁전
[세상을 뒤흔든 랜드마크] 오스만제국을 폐망으로 이끈 돌마바흐체궁전
터키 이스탄불의 보스포러스는 총 길이 31km로 지중해와 흑해를 연결하는 좁은 해협이다. 해협 입구에는 돌마바흐체 궁전이 자리잡고 있는데, 이 궁전은 아름다운 만큼이나 볼거리와 얘깃거리도 많다. 현재의 돌마바흐체는 1856년에 완성된, 외곽이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궁전으로 해변을 메워서 지었다. ‘돌마’는 채운다는 의미이고 ‘바흐체’는 정원이란 뜻이다.
1614년에 처음 건설됐던 돌마바흐체는 이름 그대로 술탄들이 즐기는 정원 중심의 목재로 된 작은 궁전(당시 이름은 ‘베쉭타쉬’)이었다. 터키는 목재로 쓸 만한 나무가 없어 100% 수입에 의존한다. 반대로 대리석은 무한대로 구할 수 있어 목재보다도 건축비가 싸게 든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이 자리잡고 있는 곳은 오스만투르크족이 이스탄불을 정복할 때 닻을 내린 지점이라고 한다.
■19세기 중반의 건축, 화려함의 극치
궁전의 면적은 25만㎡(약 8만3000평)이고 건축 연면적은 1만4600㎡(약 4500평)이며, 건물은 2층이다. 바닥에는 난방장치가 있고, 2층이지만 엘리베이터도 있다. 궁전 안에는 285개의 방이 있는데 모두 다르게 디자인돼 같은 방이 하나도 없다. 회의나 의전을 하는 홀이 43개나 있으며 1427개의 창문, 6개의 발코니(이 중 2곳은 보스포러스해협에서 바로 접근하여 출입가능)와 목욕탕이 있다. 장식용시계 156개, 화병 280개, 장식용 촛대 58개로 치장되돼 있고 바닥을 장식한 131개의 큰 카펫, 99개의 카펫은 전부 실크로 된 수공예 작품이다.
궁전의 중앙 홀(훈카로 카맘)은 해협에서 바로 접근할 수 있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중앙 홀의 면적은 ‘40m×50m(약 600평)’인데 1, 2층을 텄기 때문에 더 높고, 더 넓게 보인다. 중앙에는 이 궁전의 화려함을 상징하는 무게 4.5t의 샹들리에가 사람들의 시선을 압도한다. 천장36m 높이에 매달린 이 샹들리에는 750개의 크리스탈 촛대가 달려있다. 무거운 샹들리에를 지탱하기 위해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별도의 철제가 천장에 매립돼 있다. 천장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면 마치 건물이 돔 모양으로 되어 있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 원근법을 사용한 그림을 그려 놓았기 때문이다. 천장과 닿은 4면의 벽에도 원근법을 사용한 그림을 그렸다.
지금의 궁전은 1839년 제31대 술탄 압듈메지트가 아르메니아 건축가인 카라바트 발얀을 지명해 1843년부터 건축했다고 한다. 궁전 정문 입구에는 높이 17m 시계탑이 있는데 영국 왕실에서 선물한 것으로서 아직까지 작동되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건축 공사비만 1조원(평당 2300만원)이 들어갔을 정도로 화려하다. 중앙 홀을 둘러싸고 있는 발코니 바닥의 별 모양 모자이크는 3가지의 다른 색상을 가진 나무 조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수천 개의 별 모양을 조립했지만 마치 최신 기술로 만든 것으로 착각할 만큼 정교하다. 작은 흠집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중앙 홀에서 발코니로 올라가는 계단 손잡이들은 모두가 크리스탈이다.
내부 치장에 사용된 14t의 금(현 시세로 7500억원)과 40t의 은(시세로 420억원), 수제 실크 페르시아 카펫과 실크 커튼은 150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 걸려 있다. 화려한 궁전의 내부만큼이나 보스포러스해협에서 배를 타고 보는 야경도 아름답다고 한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해협 제1의 유람선 야경 코스이다.
■버킹검과 베르사이유 모방
돌마바흐체 궁전의 건축에 들어간 공사비 1조원은 당시 오스만제국의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이었다. 전쟁과 사치로 제국의 힘이 약화되어 가는 것을 감추기 위해 화려한 궁전을 건설한 것이 오히려 제국을 폐망하게 만든 원인이 됐다. 건축비만 1조원이지만 내부 장식에 들어간 돈은 상상하기 힘들 만큼 제국의 힘에 부쳤다. 술탄은 샹들리에나 카펫, 시계 등을 독일이나 영국, 이집트로부터 선물받았다고 국민들에게 자랑했지만 제국의 국민들은 믿지 않았다고 한다.
제국이 유럽을 지배할 당시에는 이집트와 게르만 국가 등으로부터 조공에 가까운 선물을 받았지만, 이미 제국의 힘이 쇠퇴할 대로 쇠퇴한1850년대에는 선물이 아닌 돈을 주고 구입했다는 게 오늘의 터키인들이 믿고 있는 정설이다.
이 궁전은 재정난으로 제국을 파국으로 인도한 원인을 제공했지만 오늘날에는 지구촌으로부터 관광객을 끌어모으는 효자 역할을 하고 있다. 관광 문화 상품인 궁전은 국고에 상당한 보탬을 주고 있고, 효자 상품을 보호하기 위해 하루 입장객은 1500명으로 제한하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오스만제국이 술탄 왕실로 사용했던 인근의 토프카피 궁전의 국운을 되찾고자 새롭게 건축했다는 얘기가 있다. 토프카피는 철저한 이슬람식으로 외관을 중시한 반면 이 궁전은 유럽식으로 내부 장식을 중요시한 것도 차이다. 이슬람 세계인 아시아와 기독교 세계인 유럽의 지리적 경계에서 제국은 유럽식을 택했다고한다. 이스탄불의 면적은 국토의 3%에 불과하고 아시아가 대부분이지만 제국은 이를 거부하고 유럽식을 선택했다. 궁전의 외부 모양은 영국의 버킹검궁을 모방했고 내부 정원과 건물은 프랑스 베르사이유 궁전을 모방해 화려하게 치장했다.
하지만 건물 배치만큼은 남자들의 거주와 행정 공간인 셀람특과 여자들의 공간인 하렘으로 나누어 철저하게 차단했다. 이슬람식 내부 공간 구조는 단순하지만, 이 궁전은 화려함 자체로 불릴 만큼 의자와 책상, 그리고 각종 장식품들로 가득하다. 하렘에 사는 여자들의 서열을 알 수 있는 의자 크기와 화려함도 돋보인다.
■오스만제국의 저력 투영
터키의 원조인 오스만제국은 1600년에 걸쳐 유럽과 아시아를 지배했을 만큼 강한 군대를 가졌다. 돌마바흐체와 같은 화려한 궁전을 건설할 정도로 힘과 재력을 가진 국가이기도 했다. 아직도 발굴 중에 있거나, 지진과 전쟁으로 파괴돼 산재한 건축물들은 번성했던 제국의 영광을 보여주고 있다. 터키는 로마와 그리스, 이집트에서 번성했던 문화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순수하게 터키식 건축물이나 문화, 종교를 볼 수 없는 융합 문화국가이기도 하다.
남아 있는 주요 건축물이나 수로, 저수조 등에 동원된 건축 자재들은 주변국들의 조공으로 얻어진 것으로 터키에서는 단지 조립만 했을 뿐이다. 1500년 전에 만들어진 지하 물 저장고 예라바탄(지하 궁전으로 별칭)을 받치고 있는 돌기둥 336개는 그 모양이 모두 다르다. 남아 있는 주요 건축물의 돌기둥이나 바닥재가 모양은 같지만 재질이 다르거나 형식에 약간씩 차이나는 것도 생산지와 가공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 해석된다.
1500년 전에 이미 건축 공사에 사전 조립 방식을 사용했다는 사실도 놀랍다. 돌마바흐체 궁전에 깔린 카펫 하나하나에 역사가 있는 것도 이런 이유이며, 중앙 홀 샹들리에의 750개 크리스탈 촛대도 크기는 같으나 모양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러한 미세한 차이는 또 다른 관광 상품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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