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7.08.25 06:55 | 수정 : 2017.08.28 09:39
조선일보 땅집고(realty.chosun.com)가 실패하지 않는 집짓기로 가는 바른 길을 제시하기 위해 국내 최초로 『조선일보 건축주 대학』을 개설합니다. 좋은 집은 좋은 건축주가 만든다는 말처럼 건축주 스스로 충분한 지식을 쌓아야 좋은 건축가와 시공사를 만날 수 있습니다. 땅집고는 조선일보 건축주 대학 1기 과정을 이끌 교수진을 만나 그들이 가진 집짓기 철학과 노하우를 미리 들어봤습니다.
[집짓기 멘토] ①유현준 교수 “악조건에서도 아름다움 찾아야”
[집짓기 멘토] ①유현준 교수 “악조건에서도 아름다움 찾아야”
유현준 홍익대 건축학과 교수는 웬만한 강연장은 가득 채울 수 있는 대중성을 갖춘 스타 건축가로 손꼽힌다. 2015년 펴낸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은 인문학 분야 스테디셀러 반열에 올랐다. 대중강연과 신문 칼럼, TV를 넘나들며 건축과 도시에 대한 대중들의 인문학적 지평을 넓혔다. 조선일보에도 ‘도시 이야기’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그가 설계한 집은 각종 매스컴에 단골로 소개된다.
유 교수는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를 겸하고 있다. 홍익대에 둥지를 튼 계기도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시행하는 ‘겸직 프로그램’에 매력을 느꼈기 때문이다. 강단과 현장을 ‘전쟁터’처럼 누비던 초창기 시절에 대해 유 교수는 “풀뿌리를 캐먹는 심정으로 일했었다”며 “그런 시기가 누구에게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땀냄새나게 뛰는 과정에서 유 교수는 2009년 젊은 건축가상을 필두로 2010년 건축문화공간대상 대통령상, 2013년 김수근건축상 프리뷰상, 2017년 독일 디자인 어워드, 시카고 아테나움 건축상 등을 수상했다.
유 교수는 좋은 집에 대해 “지어진 집이 다른 곳으로 옮겨졌을 때 완전히 엉뚱한 느낌이 난다면 잘 지은 집”이라며 “그만큼 원래 있던 위치에서 주변과 조화를 잘 이뤘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건축디자인과 다른 디자인의 차이점은.
“사람들은 밖에서 쳐다보는 모양을 중시하죠. 건축물은 안에서 밖을 본다는 점도 중요해요. 그래서 주변 풍경이 보이게 되고 환경에 대한 이해도 필수적이죠. 집은 방향을 한번 정하면 바꿀 수 없어 대지(垈地)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집을 다른 곳에 놨을 때 완전히 엉뚱한 느낌이 난다면 잘 지은 집이죠. 그만큼 주변과 조화를 이뤘다는 뜻이니까요.”
-대지에서 중점적으로 보는 것은 무엇인가요.
“채광이 기본인 만큼 향(向)을 보게 됩니다. 뷰(view)가 좋은 곳이 잘 보이도록 디자인하려고 해요. 문제는 이렇게 되면 외부 시선에 노출되기 때문에 ‘프라이버시(사생활)가 보장되는 외부 공간’으로 꾸미려고 합니다. 옥상 정원, 발코니, 중정(中庭) 등 사적인 외부 공간을 많이 쓰려고 합니다.”
-도심 건축시 주변 영향을 더 받게 되나요.
“도심에선 건폐율·용적률·사선(斜線) 제한 등 건축 법규가 건축 디자인을 결정하는 요소나 다름없죠. 외형은 이 틀 안에서 결정됩니다. 건축가의 역할은 제약된 조건에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일이에요. 좋은 건축가는 여러 제약 속에서 아름다움을 만들어 냅니다.”
-단독주택의 대지는 다들 비슷하지 않나요.
“같은 대지라도 미묘한 차이가 있죠. 향(向)에 따라, 옆 건물 배치가 어떻게 됐느냐에 따라 집에 영향을 미칩니다. 요즘은 건폐율 20%인 자연녹지에 집짓는 분도 많아요. 이럴 경우는 자연환경에 영향을 많이 받죠.”
-대지 조건이 까다롭다면 어떻게 대처하나요.
“예를 들어 녹지도 가깝고 교통도 편리해서 입지적으로 아주 좋다고 하죠. 그런데 집에 이르는 도로 폭이 좁고 사선 제한도 많고 땅이 좁다면 제약에서부터 시작해야 해요. 건물을 높여 뷰를 확보하고 뷰가 좋은 꼭대기에 부엌과 식당을 놓고, 옥상 정원을 만들어 마당처럼 쓰는 거죠.”
-건축주가 가장 많이 하는 실수는.
“공사비 절약하려고 너무 싼 시공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죠. 좀 더 싼 곳을 찾다가 결국 사기꾼한테 걸리는 경우가 많아요. 골조(骨組) 공사를 마치고 애초 계약과 달리 더이상 못 짓겠다고 버티는 식이죠. 집을 볼모로 공사비를 더 받아내려는 것인데, 결국 웃돈을 얹어주고 짓게 됩니다. 제일 싼 곳에 맡겼다가 최고액으로 짓게 되는 셈이죠. 제대로 된 건축가들에겐 공유되는 시공사 정보가 있어요.”
-또 다른 악수(惡手)를 꼽는다면요.
“(건축가가 아닌) 시공사를 먼저 찾는 경우가 그렇습니다. 이렇게 되면 시공사에서 자기 말을 잘 듣는 건축가를 섭외하고 공사하려고 합니다. 건축가에게 공사비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설계에 개입하기도 하죠. 주객이 바뀌는 겁니다. 사무장이 주도하는 병원이랄까….”
-왜 그럴까요.
“집지을 때 건축가를 먼저 찾아야겠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 않아요. 90% 이상의 건축주는 시공사를 먼저 찾아가 집을 짓고 있죠. 서울 강남에 짓는 15층짜리 빌딩들도 시공사가 수주하는 경우가 많아요.”
유 교수는 시공사가 건축가를 고용해 설계하면 아무래도 시공사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했다.
-건축가를 만나기 전에 해야 할 일은.
“건축가의 디자인 성향을 미리 알아봐야 해요. 이 과정을 거치지 않고 엉뚱한 스타일을 요구하는 경우가 가끔 있어요. 일식집에 와서 중국 음식 달라는 식이죠. 젊은 건축가라면 작품이 많지 않아 어려움을 겪을 수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스타일은 파악해야 합니다.”
-거꾸로 건축가가 선호하는 건축주는요.
“본인 취향이나 스타일에 대해 구체적이고 정확히 알고 있는 분이죠. 건축가의 제안을 무조건 좋다고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다 좋은 건 아니에요. 나중에 변심하면 골치 아파요. 건축가를 신뢰하는 분을 만나면 더욱 좋죠. 스타일은 맞아도 설계에 간섭하려고 하는 분을 만나면 난감합니다.”
-건축가와 커뮤니케이션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라이프스타일을 구체적으로 얘기해야 합니다. ‘밥은 꼭 같이 먹어야 한다’ ‘가족 각자가 작업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식으로요. 집안이 들여다보이는 걸 극도로 싫어하는 분도 있죠. 필요한 방, 화장실 갯수를 말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방과 방의 관계는 어땠으면 좋겠다고 의견을 말하면 좋습니다. 1층은 침실, 2층은 식당을 넣어달라는 구체적인 의견도 좋습니다.”
-예비 건축주에게 당부의 말을 한다면.
“건축가에게 쓰는 돈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건축가가 공사비를 줄이거나 고품질로 보답할 겁니다. 세상에 무조건 싸고 좋은건 없습니다. 현명하게 돈을 써야 합니다. 대리석에 돈을 쏟아붇지 마세요. 400원짜리 벽돌을 쓰더라도 멋지게 지을수 있죠. 재료가 비싸면 좋은 것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저렴한 재료에서도 좋은 공간은 얼마든지 나올 수 있습니다. 그것이 건축가의 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