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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저 인테리어 들여다보기]속살 공개한 주한 영국대사관저…120년의 무거움 벗고 모던한 변신

    입력 : 2017.05.02 03:03 | 수정 : 2017.05.02 08:57

    대사관은 타국에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얼굴이다. 대사관저(大使館邸) 역시 해당 국가의 문화와 전통, 인테리어 트렌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땅집고(realty.chosun.com)는 각국 주한 대사관저 안주인들의 안내를 받아 대사관저의 속살을 들여다보는 시리즈를 기획했다.

    [대사관저 인테리어 들여다보기] ① 120년 무거움을 벗어던진 영국대사관저

    “영국인은 변화무쌍함을 좋아합니다. 이런 점은 인테리어에서도 찾아볼 수 있죠. 우리는 과감한 색상을 시도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요. 그렇다고 영국 스타일만을 고집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지금 한국에 있고, 그래서 한국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관저의 테마로 잡았죠.”

    서울 중구 덕수궁과 성공회성당 사이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면 크고 검은 철문이 눈에 들어온다. 이 철문으로 들어가 회벽색 건물을 지나면 서울 광화문 한복판에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요하고 평화로운 공간, 한국에서 가장 영국스러운 공간, 주한 영국대사 가족이 거주하는 대사관저가 자리잡고 있다.

    1890년 지어진 주한 영국대사관저는 지금까지 120여년 동안 외관을 그대로 유지한 채 관저로 사용돼 왔다. 빅토리아 양식에 당시 영국 식민지였던 인도 스타일까지 함께 엿볼 수 있다./최지혜 인턴

    영국 대사관의 17번째 주인,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의 부인 파스칼 서덜랜드는 시종 호탕한 웃음으로 땅집고(realty.chosun.com) 취재진을 안내했다. 영어·불어·이태리어 동시통역사이기도 한 그는 역동적인 에너지를 내뿜었다. 대사 부인과의 만남에는 관저 인테리어 총괄 책임자인 헬렌 훅웨이 영국 외무부 소속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배석했다.

    주한 영국대사관저는 1890년 주한 영국공사관저로 건축돼 120여년 동안 관저로 사용됐다. 이 건물은 독립문, 명동성당 등과 함께 우리나라에 몇 안되는 19세기 건축물이다. 19세기 말 조선 왕조와 수교하면서 지은 외국 공사관 내 건물이 원형을 간직한 채 처음과 같은 용도로 사용되는 곳은 영국대사관저가 유일하다.

    대사관저는 지상 2층 건물이다. 1층은 손님을 맞이할 수 있는 3개의 응접실이 있다. 2층은 대사 가족의 생활 공간으로 쓰인다. 내부 역시 옛 구조를 간직하고 있지만 인테리어는 시대에 맞게, 주인에 맞게 변화를 거듭해 왔다. 최근 리노베이션을 마친 대사관저는 오늘날 모던한 영국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었다.

    파스칼 서덜랜드 대사부인은 2015년 찰스 헤이 주한 영국대사의 부임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대사관 직원들과 허물없이 편안하게 지내는 그녀는 시종일관 밝은 에너지를 내뿜었다. /최지혜 인턴

    ■이번엔 ‘모던’…모노크롬 조합 탄생

    “지금의 대사가 취임하고 난 뒤 인테리어도 크게 바뀌었다. 디자인 팀은 영국의 역동적이면서 현대적인 면모가 대사관저에 반영되길 원했다. 런던에 있던 디자이너가 직접 한국으로 날아왔고, 색상표와 재질 등을 놓고 계획을 세웠다. 그 결과 현대적 감각을 불어넣기 위한 모노크롬(단색) 계열의 색 조합이 탄생했다.”

    서덜랜드 부인은 스콧 와이트먼 전 주한 영국 대사가 떠나고 난 뒤 대사관저 인테리어의 변화를 이렇게 설명했다. 입구와 가장 가까운 응접실의 경우, 이전엔 붉은 커튼과 카펫으로 자칫 무거워 보일 수 있는 빅토리아풍에 충실했다. 그러나 지금은 밝은 그레이 색상의 소파와 연한 크림색 커튼으로 한결 밝고 모던한 느낌을 자아낸다.

    주한 영국 대사관저의 첫번째 응접실. 스콧 와이트먼 전 대사 시절 전체적으로 붉은 빛을 띠는 전통적인 빅토리아풍이었던 이 방은 실버 그레이 계열의 모던 브리튼 스타일로 바뀌었다. /최지혜 인턴

    영국대사관을 비롯해 전 세계 대사관의 인테리어는 각국의 외교 담당 부처가 직접 담당한다. 자국을 대표하는 곳인 만큼, 각 나라 최고의 전문가들이 모여 색상, 섬유 재질, 가구는 물론 작은 소품까지 모두 세팅한다. 그림은 영국 정부의 아트 컬렉션 중에서 주기적으로 교체한다.

    그렇다면 영국 고유의 인테리어 특징은 무엇일까. 서덜랜드 부인은 “영국 인테리어 디자인은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도, 전통에 얽매이지는 않는다. 지나간 시대의 특징을 참조하지만 현대적인 영국 디자인과 조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영국인은 변화무쌍함을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과감한 색 조합을 시도하고, 전혀 다른 스타일의 가구를 배치해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거실 한 가운데엔 한국의 전통 가구와 색색의 실로 짜인 의자가 함께 놓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관저 곳곳에 의자가 놓인 것은 영국 전통이다. 서덜랜드 부인은 “하나의 큰 소파보다는 2개의 작은 소파를 두는 것이 좋다”며 “대화 공간을 쉽게 마련하고, 의자가 많으면 많은 이가 대화에도 쉽게 참여할 수 있다”고 했다.

    영국인의 특징은 변화무쌍하다는 점이다. 이 점은 인테리어에서도 드러난다. 각기 다른 스타일의 가구를 배치하는데 거리낌이 없다. 한국 전통 가구와 영국에서 가져온 의자가 함께 놓여있다. /최지혜 인턴

    ■곳곳에 녹아있는 한국의 자연 사랑

    그러나 무조건 영국 스타일만을 고집하는 것은 아니다. 서덜랜드 부인은 “주변 환경과 우리가 체류하는 국가를 존중하고 반영하는 것 역시 중요하다. 이러한 점을 디자인에 반영했다”고 강조했다.

    훅웨이 디자이너 역시 “한국의 경우 자연을 사랑하고, 자연스러운 것을 추구한다. 우리 디자인 팀은 자연에 대한 한국의 사랑을 대사관저에 반영하고 싶었고, 이 때문에 모던하면서도 자연 친화적인 기분을 느낄 수 있도록 꾸몄다”고 했다.

    자연를 배려한 세심함은 곳곳에서 드러난다. 바닥에 깔려 있는 카펫의 경우 자세히 보면 꽃망울이 피어나는 형상이 새겨져 있다. 영국에서 건너온 작은 소품들은 모두 도자기 또는 원목 재질이다.

    최근 리노베이션을 끝마친 주한 영국 대사관저는 '자연'을 테마로 했다. 한국인의 자연에 대한 사랑을 반영한 것이다. 이를 위해 환경 파괴 없이 지속 가능함을 추구하는 세바스찬 콕스의 수납장을 들였다./최지혜 인턴

    최근 대사관저를 리노베이션하면서 교체한 가구들도 마찬가지다. 거실 복도 끝에 놓인 원목 서랍장이 대표적. 환경 파괴 없이 지속가능한 오브제를 만드는 영국 디자이너 세바스찬 콕스의 작품으로 나무를 가공하지 않아 표면이 거칠거칠하다.

    훅웨이 디자이너는 “한국이 자연을 사랑하기도 하지만, 환경 파괴를 최대한 지양하고 되도록이면 지속 가능한 디자인과 가구를 사용해야 한다는 것은 영국 정부의 규율이기도 하다”며 “이미 버렸거나 잘린 나무를 사용한 소품, 재활용이 가능한 소재를 사용한 소품 등을 배치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했다.

    주한 영국 대사관저의 두번째 응접실. 첫번째 응접실보다는 영국적 느낌을 살렸다. /최지혜 인턴

    ■“관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벽난로”

    서덜랜드 부인이 관저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 중 하나는 벽난로 앞이다. 그는 “한국의 겨울은 굉장히 춥고 길어서 우리 가족은 벽난로 앞에서 자주 시간을 보내곤 한다”고 했다. 올해 11살, 8살이 된 두 딸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 등 전자기기가 하나도 없어 부모님과 더욱 자주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파스칼 서덜랜드 대사부인이 관저 내에서 가장 사랑하는 공간, 벽난로. 장작은 관저 정원에서 자라는 나무에서 공수한다. /최지혜 인턴

    서덜랜드 부인은 영어·불어·이태리어 동시통역사로 활발한 대외활동을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화여대에 출강하며 학생들을 가르친다. 채식주의자인 만큼 한국의 절 음식을 굉장히 좋아하며, 한지로 만든 제품을 사랑한다.

    한국 단편소설을 발굴하는 것이 취미인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는 황석영과 한강이다. 그는 “할 수 있을 때 황석영과 한강의 많은 작품을 읽고 싶다”며 “다른 한국 작가들을 더 많이 발굴하고, 멋진 단편소설도 새로 발견하고 싶다”고 말했다.

    주한 영국 대사관저 거실 내 위치한 그랜드 피아노. 그 위엔 찰스 헤이 대사 가족의 사진이 놓여있다. 계단 위로 올라가면 대사 가족의 개인 생활 공간이다. /최지혜 인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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